남루한 옷차림의 여자는 급히 검은색 자동차에 올라탔다. 고급스런 자동차와는 어울리지 않는 여자는 머리카락이 늘어져 더 초라해보였다. 여자가 차에 올라 탈 때 차 문을 열어준 남자에게 무언가 이야기 할 때 남자가 짧게 ‘하이’라고 하는 것 보니 일본인 같았다.
달빛이 힘을 잃어 어스름했다. 낡았지만 붉은 빛이 선명한 벽돌 건물 앞에 여자는 멈추어 섰다. 여자는 차 안에서 머리를 빗었는지 아까보단 단정해보였다.
차마 붉은 벽돌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 문 밖만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러더니 여자는 다시 자동차에 올랐다.
다음날 오전은 유난히 볕이 따가웠다. 선글라스나 모자 없이는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힘들도록 쾌청한 하늘은 뜨거운 여름을 실감나게 했다. 어제 본 검은색 자동차가 다시금 붉은 벽돌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오늘은 여자 혼자가 아니라 웬 꼬마아이와 함께였다. 아마 여자의 아들이라 생각했다. 여자는 어제보다 단정한 차림이었다. 검정색 투피스를 차려입은 여자는 아이의 손을 잡고 붉은 벽돌 건물로 들어섰다. 표정이 사뭇 비장했다.
“타케이. 잘 봐. 오늘을 잘 기억해둬.”
여자는 한국말을 곧잘 했다. 아이는 짧게 응, 하고 대답하더니 경건한 표정으로 들어섰다.
여자가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간 곳은 독립을 위해 싸운 애국지사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붙어있는 방이었다. 여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는 아이의 손을 더욱 꼭 잡았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가벼운 목례를 했다. 방을 나오고 나서는 인형으로 고문하는 장면을 재현해 놓은 곳을 들어갔다. 실제와 가까운 비명소리와 인형의 모습에 타케이는 제법 놀란 모양이었다. 무서웠는지 여자의 뒤로 숨으며 나가고 싶어 했다.
“타케이. 무섭니? 하지만 기억해야해. 잊어버리면 안 돼.”
무서워하는 타케이의 손을 잡고 건물 건물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날이 쾌청해서 그런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들렸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음에도 소란스럽지 않았다. 그 중에서는 이들과 같은 외국인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그들은 다른 나라의 뼈아픈 역사의 한 페이지에 엄숙함을 표했다.
타케이는 여전히 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한 곳을 응시하더니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유관순 열사의 사진이 붙어있는 곳이었다.
“타케이. 유관순 열사 알지? 이분이 여기에서 돌아가셨어.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을 하다가 돌아가신 분이야.”
타케이는 그러고도 한참을 멍하니 사진만 바라보았다.
아마 감옥이라는 곳은 죄가 있는 사람들이 가는 곳인데 나라를 위해 싸운 사람들이 왜 감옥에 갇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여자는 다시 한 번 가볍게 고개를 숙인 채 아이와 함께 검은 차에 올라탔다. 조용한 발걸음이라 다녀간 흔적도 없이 고요하게 사라졌다.
차안에서 여자를 모시고 가는 남자가 물었다.
“이곳을 이렇게 자주 찾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타케이까지 데리고.”
“당연히 와보아야 하는 곳이니까요. 당연히 알아야 하고.”
“그래도…….”
“유타, 여기에 계신 분들은 자유와 평화를 위해 그리고 빼앗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사람들이에요. 우리는 그들의 뼈아픈 외마디 비명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의무가 있어요. 잇몸이 문드러져 이가 으스러져도 소리 한번 힘껏 지르지도 못한 분들이라고요.
지나간 시간이고 흘러버린 역사라고 해서 모른 척 눈을 돌리는 건 비겁해요. 좁고 어두운 무서운 곳에서 두꺼운 철제 창이 열리기만을 바라던 사람들의 핏물 섞인 소리를 들어야 해요.”
여자는 자신이 말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낡은 지갑 속 흑백사진을 말없이 꺼내볼 뿐이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뒤, 일곱 살 터울의 우리 남매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왔다. 친척집에서 독립한 뒤로는 오빠가 밤낮없이 아르바이트를 하여 생활비를 충당했고, 둘 다 무사히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뒤에는 몇 년을 더 일하여 작은 카페 하나를 차릴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다툰 기억이 거의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서로를 이해하려 무던히도 노력해 왔고, 기쁜 일이 있어도 고민이 있어도 가장 먼저 서로에게 말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오빠와 말다툼을 하는 일이 많다. 아마 내가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여느 가정의 오빠들처럼, 우리 오빠도 내 동갑내기 남자친구를 덮어두고 싫어했다. 하지만 나도 이제 스물여덟이었다.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어도 될 나이에 여전히 보호받고 있다는 것은 때로 나를 갑갑하게 만들었다.
“다희야, 너 또 걔 만나고 늦게 들어온 거야? 오빠가 말했잖아. 걔는 안 된다니까?”
나는 오빠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거실에서 오빠가 한숨을 쉬는 소리가 방 안까지 들렸다.
오빠의 마음을 아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빠가 성인이 되었을 무렵에도 나는 초등학생이었으니, 오빠가 나를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빠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누구보다 잘나게 살길 바라고 있었다.
내 남자친구는 잘 생기지도 않았고, 집안에 돈이 많지도 않으며, 돈을 많이 벌지도 못한다. 오빠가 바라는 내 신랑감이란 내 남자친구와는 정 반대의 인물이었다.
어느 날은 오빠가 남자친구의 험담을 심하게 하는 바람에 내가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를 지른 적이 있었다. 오빠는 마치 사춘기의 딸을 처음 대하는 아버지처럼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는 나대로 감정이 상하여, 그대로 방문을 걸어 잠가 버렸다. 자기가 잘못했다며, 이 문 좀 열어보라는 오빠의 말이 계속 들렸지만 안 들리는 척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일어나보니 오빠가 오랜만에 나들이나 가자며 도시락을 싸고 있었다. 나는 나대로 오빠에게 미안하여 슬그머니 도시락 싸는 것을 도왔다. 그런데 오빠가 뜻밖의 말을 전해 왔다. 내 남자친구도 함께 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얼떨결에 도착한 곳은 벽화마을이었다. 얼마 전에 조성된 마을이라고 들었는데, 다른 벽화마을들이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는 데에 비해 이 마을의 분위기는 완전히 시골이었다. 토담이나 돌담 위에 지게, 황소, 저고리를 입은 아이들, 단풍과 꽃 같은 것들이 그려져 있으니 말이다. 그 분위기가 너무 따스하여 홀린 듯 골목들을 걸었다.
오빠는 남자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를 잠시 따로 데리고 나왔는데, 오빠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가니 이상하게 생긴 나무가 서 있었다.
“어, 이게 뭐야? 연리지는 봤는데 뿌리가 얽힌 건 처음 보네.”
우리나라에서 한 그루밖에 없는 귀한 나무라고 했다. 오빠는 나무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사실 네가 죽을 때까지 나랑 함께 살았으면 했어. 솔직히 네가 나한테 동생이겠냐, 딸이지. 엄마랑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그 때는 나도 중학생이었어. 초등학교에도 못 들어간 네가 엄마 보고 싶다고 울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더라. 넌 그 때 어렸으니까 기억나지 않겠지만 고모도 우릴 많이 싫어하셨어. 너도 이제 시집 갈 나이이고 하니까, 네가 갑자기 결혼해서 집을 나가겠다고 하면 내가 누굴 보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더라.”
나는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말을 마친 오빠는 ‘데이트 재미있게 해.’라며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어렸을 때라고는 해도 여섯 살 무렵의 일인데 왜 기억나지 않겠는가. 나도 다 기억하고 있었다. 불쌍한 우리 오빠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바로 일을 하러 갔다. 고모에게 제 손으로 번 양육비를 드리고, 몰래 저축을 하여 나와 함께 도망치듯 고모 집을 나왔다. 내가 잠든 뒤에 집에 들어오고, 내가 잠에서 깨기 전에 집에서 나갔기에 나는 제대로 된 우리 집이 생긴 뒤에야 오빠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자친구가 멋쩍게 웃으며 ‘내가 더 잘해야지.’라고 했다. 아무래도 자기가 많이 부족한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오빠는 그냥 투정을 부리고 있을 뿐이야.”
나는 웃으며 눈을 감았다. 가족처럼 정겨운 분위기로 물들어 있던 마을, 그 한 구석에 같은 땅을 붙들고 서 있던 연리목이 꼭 우리 남매의 모습 같았다.
남자는 언젠가 여행지에서 뿌리가 얽혀있는 괴기한 나무를 떠올렸다. 그 나무는 가여울 정도로 뿌리가 훤히 드러나 있었고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뿌리를 밟고 다녔다. 그렇게 뿌리를 드러내고 있는 나무를 본 뒤로는 가로수 길이나 공원에 뿌리가 드러난 나무는 슬쩍 돌아가거나 슬쩍 흙으로 덮어 주곤 했다.
남자에게 내릴만한 뿌리는 없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족보나 성씨, 가문 등의 이야기는 꽤나 먼 과거의 이야기로 여겼을 뿐 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도 이름이 있었으나 그는 이름은 그저 name. 그러니까 견출지에 붙어있는 식별 가능하기 위해 세워둔 표식 정도로만 여겼다. 이름의 뜻은 물론 성에 대한 집착도 하지 않았다. 남자의 이름은 송태식이였다. 남들은 그를 송씨 혹은 태식씨라고 불렀고 남자도 그에 별다른 의의가 없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동네 고아원에서 자랐다. 원장님 말로는 잠시 위탁식으로 맡겨 둔 것이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도록 부모는 나타나지 않았고 원장님은 그저 둥지에서 자식들을 떠나보낼 뿐이었다. 원장님이 혹시나 해서 맡겨두실 때 남겨놓은 주소와 부모님의 이름을 알려주셨지만 고아원을 나와서도 그는 부모님을 찾거나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남자는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기술을 배웠다. 홀몸이라고 해도 입에 풀칠은 해야 했기에 짬짬이 아르바이트를 병행해가며 열심히 일을 했다. 태식은 열심히 일 한 대가로 집도 장만하고 남들처럼 윤기 좔좔 흐르는 양복도 몇 벌 장만하였다. 태식은 어렸을 때 돈을 많이 벌면 꼭 그렇게 양복을 사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런 태식도 어느덧 나이가 서른 즈음에 들어섰기에 주변에서 선자리가 많이 들어왔고 한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서로 호감을 가지며 몇 달을 만났고 드디어 여자의 집에 처음으로 인사를 가게 되는 날이었다.
남자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양복을 하나를 꺼내 입고 머리까지 단정히 손질했다. 비록 옆에서 챙겨줄 식구는 없었지만 모자라는 것 없이 반듯하게 자란 그였다. 그런데 그것이 남자를 혼란에 빠뜨릴 첫 단추가 될 줄은 몰랐다.
“처음 뵙겠습니다! 송태식이라고 합니다. 어머님, 아버님.”
꽤나 당차고 씩씩하게 첫 인사를 나눈 그는 여자의 부모님을 처음 대면했다. 부모가 없이 자란 그라 그는 집 안에 부모님이 있는 따뜻한 가정에 약간을 이질감을 느꼈으나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저 처음 가보는 집이라 그런 것이라 생각할 뿐이었다.
“반갑네. 여기 좀 앉게. 그래. 송태식이라고. 이름이 참 멋있군 그래. 무슨 뜻인가? 아니지 송씨면 여산 송씬가? 아님 은진 송씨? ”
남자의 등줄기에서는 돌연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렸다. 뜻하지 않은 질문이었고 자신도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여자친구가 태식의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 저 그게. 실은 어릴 때 고아원에 맡겨져 지금까지 쭉 혼자 지냈습니다. 아버님. 그래서 이름만 원장님께 들었을 뿐 가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태식은 조금 풀이 죽었다. 당차던 목소리도 어느새 말끝이 흐려졌고 처음으로 부모에 대한 생각과 말을 내뱉고 있음에 자신이 없었다.
“그런가. 음. 그렇구만. 그럼 그 이름은 누가 지어주신 줄도 모르고? 혹시 원장님이라는 그 분이 그냥 지어주신 게 아닌가?”
그러자 과일을 깎고 계시던 여자의 엄마가 옆구리를 꼭 찔렀다. 한순간에 분위기는 냉랭해졌다. 그래도 차려주신 저녁밥까지 먹고 나오는 배짱을 보였으나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 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그날 이후 남자에게 자신의 이름 그리고 부모에 대한 물음표가 항상 드리워져 있었다. 몇 번이고 자신의 이름을 되뇌어 보기도 했고 그 자리에서 그냥 아무런 송씨나 댔더라면 그렇게 싸늘한 저녁식사를 하지는 않아도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매사에 당당하게 살았으며 고아원 출신이라고 해서 특별히 기가 죽은 적도 없었다. 물론 여자네 부모님의 반응도 아주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실망하지도 않았다.
남자는 아주 잘 열어보지 않던 수첩을 하나 꺼내었다. 거기에는 옛날 고아원을 나올 때 원장님께서 적어주신 부모님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있었다. 아주 오래전 주소이기에 이사를 가셨겠다라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마음이 크게 울렁거렸다.
남자는 그날 이후 다시금 얽힌 뿌리를 훤히 내놓고 있던 나무가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요즘 시에서 가장 크게 투자를 하고 잘 꾸며 놓았다고 소문난 뿌리공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그곳에서는 뿌리를 내놓고 있는 나무들이 많이 있을 것만 같았다. 주말에 뿌리공원을 찾은 그는 꽤나 넓은 공원을 천천히 걸었다. 나무들은 단장이 되어 깔끔한 차림을 하고 있었으며 넓은 공원엔 저마다 어떤 비석이 있었다. 족보박물관 앞에 선 순간 남자는 문득 여자 친구 댁에 인사갔을 때를 떠올렸다. 송태식, 자신의 이름을 되뇌며 말이다.
그리고는 낡은 수첩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아버지 이름을 들여다보았다. 송현식. 남자는 불현 듯 자신도 뿌리를 내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드디어 뿌리를 내릴 곳을 찾았다는 중얼거림과 함께.
백설공주가 한입 베어 물고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렀던 독사과. 세 번이나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던 그녀가 또 모르는 사람이 내민 사과를 덥석 받아 물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빛깔이 좋았던 것일까 향이 치명적으로 달콤하였을까? 마녀가 백설공주에게 사과를 내민 것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주었던 것처럼. 그래서 다들 사과를 할 때 손을 내민다고 하나. 손을 내밀면 아니 사과를 하면 받아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승희는 딸에게 명작동화 백설공주를 읽어주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딸아이가 그 다음 이야기를 말해달라고 보채지 않았다면 그녀의 머릿속은 수만 가지 질문들로 가득 채워졌을지도 모른다.
승희는 정신없이 떠올리던 생각들을 더듬어보았다. 사과를 내민다. 사과를 받아준다. 그것이 백설공주의 목숨을 앗아갈 뻔할 만큼 치명적이든 아니든. 사과하고 싶은 사람에게 정말 사과를 내밀면 사과를 받는 사람도 문득 이런 생각을 하며 받아줄 수 있을까? 유치하다.
삼 년 전 승희와 다툰 그녀의 친구 A와의 일이 떠오른다. 전혀 관계없는 세계 명작 백설 공주를 읽으면서 왜 A가 떠오른 걸까. 그녀와 A는 쌍둥이처럼 생각이 잘 맞곤 했다. 그래서 대학 캠퍼스 시절엔 늘 A와의 추억이 가득했다. 그런 그녀들이 다시는 얼굴을 마주하지 않기로 다짐하던 그 순간, 4년간의 우정이 모래성이 쓰러지듯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하지 말아야 하는 걸 알면서도 승희는 A에게 못된 말을 쏟아 부었고 A도 울부짖으며 다시는 만날 일 없을 것이라며 관계를 끝내버렸다.
둘은 울고 있었고 서로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로가 서로에게 서운했던 마음이 물밀 듯이 몰아쳐 오면서 폭풍우처럼 상대방의 가슴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 후 승희는 결혼을 했고 귀여운 아이도 낳았다. 간간히 또 다른 친구를 통해 A의 소식을 들었으나 관심 없는 척 했다. A도 승희의 소식을 들었겠지만 감감무소식인걸 보니 그녀의 마음도 아직 인가 보다.
딸아이가 자꾸만 보챘다. 이번엔 밖에 나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복잡한 생각들을 했던 승희는 몸이 천근만근이라 나가기 싫었지만 딸아이는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승희는 하는 수없이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볼 심산이었다.
“엄마! 사과다 사과. 오늘 우리가 책에서 읽었지? 사과!”
목요일이었지. 오늘은 우리 동네 장이 열리는 날이다. 딸아이는 그새 과일을 파는 곳을 본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신이 나서 과일아저씨가 하는 말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아주 달고 맛있는 장수 사과입니다. 당도가 높고 몸에 좋은 장수사과입니다.”
승희는 순간 사과를 보내면 A가 받아줄까요? 라는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질 뻔했다. 순간 얼굴이 달아오른 승희는 사과 한 박스를 주문하는 걸로 질문을 대신했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사각사각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아까 시식용 사과를 집어 들더니 여전히 사각사각 잘도 베어 먹는다.
누군가에겐 큰 상처가 될 만한 일을 그런 유치한 사과를 보낸다고 해서 받아줄 수 있을까?
나 같으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받아줄 수 있을까?
사과를 보내본다.
빛깔 좋고 치명적인 달콤한 향이 나는 사과를 받아든 A. 상처가 아물지 않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백설공주처럼 한 입 베어 물어본다.
초조한 마음에 소식 없는 문 앞만을 지키고 서있다. 나올 시간이 지났는데 깜깜 무소식이었다. 그때 아기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들렸고 남자는 자리에 멈추어서 소식을 말해줄이를 두손 모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문 안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 뒤로 안도의 한숨과 함께 산모는 아이의 성별을 물었다. 아들인가요? 딸인가요? 돌아오는 대답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하. 여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산모들 같으면 손가락 발가락 다 있나요? 혹은 아이는 어떤가요? 라는 말을 물었을 텐데 아이의 성별을 먼저 묻는 걸 보니 한참을 기다렸던 아들인가보다 했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나왔다. 아이의 성별을 말해주기 위함이었다. 방금 나온 아이가 아들이라는 것을 들은 남자는 털썩 주저앉았다. 기뻤다. 딸이었어도 기뻤을 것이었지만 아들이라는 말에 조마조마했던 시간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남자는 한참 만에 시골에 전화를 할 수 있었다. 감격에 찬 목소리로 전화를 걸고 아이가 아들임을 당당히 말했다.
“그게 정말이가? 고추가 나왔단 말이지? 아이고, 장하다. 장해.”
“어머니도 참. 아무튼 그렇게 아세요.”
“그래, 마. 아가한테도 수고했다고 전해주고. 알긋나?”
남자의 엄마는 수화기 주변으로 모여 앉은 사람에게 아들이라는 단어 대신에 또 고추라는 단어를 쓰며 아들이 태어났음을 알렸다. 그리고 며느리에게 아가라는 말을 단어를 쓴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게 아들을 기다렸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이제 시골집에 금줄에 고추를 매달아 놓을 것이다. 그리고 마을 잔치를 벌이시겠지.
요즘은 많이 사라졌다고 해도 시골에 계신 시부모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실 아들귀한 집안에 줄줄이 딸을 낳았으니 애가 타는 마음을 아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넷째를 가졌다는 말에 시골에서는 아들 낳기 좋다는 한약재들과 각종 음식들을 보내왔다.
그 중에서도 고추로 만든 음식들이 많았다. 여자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아무리 아들을 바라왔던 이들이지만 너무 노골적이지 않은가 생각했다. 고추를 많이 먹는다고 아들을 잘 낳게 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인구비율이 제대로 맞춰질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부담가지지 말라며 보내온 음식들을 꼬박꼬박 챙겨먹으며 여자는 온몸으로 모든 시선과 부담을 감수해야 했다.
의사는 양수와 분비물로 뒤섞인, 마치 핏덩어리 같은 갓난아이를 품에 안아주었다. 뱃속에 있다 나와서인지 따뜻했다.
“아들을 많이 기다리셨나봐요.”
“네. 많이 기다렸어요. 제가 그동안 고추를 얼마나 많이 먹었는데요.”
“아, 네. 참, 아이도 산모도 건강해서 다행입니다.”
의사는 마무리 말을 하고 간호사에게 뒷마무리를 넘긴 뒤 자리를 벗어났다. 의사에게 괜한 소리까지 한 것을 알면서도 여자는 감격의 눈물인지 슬픔의 눈물인지 모를 눈물을 흘렸다.
이 아이가 딸아이였다면 아니, 또 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생각을 했다. 맵기도 정말 매웠던 고추를 그렇게 씹어 먹으며 눈물로 기다리던 아이였다. 막상 기다리던 아들이라는 소식을 들었는데 왜 이렇게 슬픈 건지 몰랐다.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데 눈가가 매웠다.
남자의 걸음에 여자는 자꾸만 뒤쳐진다. 벌써 몇 번이나 천천히 걷자고 했으나 남자의 걸음은 자꾸만 빨라진다. 여자는 헤어짐이 아쉬워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느리게 걷고 있는데 남자는 여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꾸만 재촉이다. 하지만 남자의 속마음은 헤어짐이 아쉬워 좀 더 많은 곳에서 여자와의 추억을 남기고 싶은 것이었다. 이렇게 서로의 속마음이 어긋난 채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얼마나 남았지?”
여자는 남자에게 시간을 물어보았고 남자는 자동적으로 자신의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지만 언제인지 남자의 시계가 멈춰있었다.
“시계 약이 다 달았나보다. 이 근처 시계가 있을 텐데.”
남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멀리서 은은한 노랫소리가 울렸다. 여자와 남자의 시선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했다.
“여기 이런 것이 생겼어? 못 보던 새에 여기도 많이 변했네.”
“그러게. 다른 나라에 와 있는 것 같아.”
남자와 여자는 어느새 아찔한 높이의 시계탑 앞에 도착해있었다. 때마침 카리용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선율이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여자의 긴 생머리가 바람에 따라 살며시 흔들렸고 여자의 머리카락이 흔들릴 때마다 좋은 향기가 났다. 남자는 문득 이 향기가 그리울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시계의 분침이 12를 가리킬 때 남자는 떠나야했다. 둘은 헤어짐을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이미 수차례 생각하고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잠시 동안만 떨어져 지내는 것일 뿐 영영 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여자는 몸이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것이 아니겠냐고 답했다. 누구의 의견이 맞는지는 여자도 남자도 몰랐다.
“2년이야. 군대 갔다 생각하고 봐주면 안돼?”
“2년 후면 나 서른다섯이야. 군대 간 남친 기다리는 거 20대도 아니고 못해 난,”
“나 곧 가. 정말 이대로 헤어질 거야? 우리 아직 사랑하잖아.”
“그래. 아직 사랑한다면서 왜 가려는 거야? 그만하자 벌써 이 얘기만 며 칠 째야. 가. 잘 가고 행복했으면 좋겠어. 시간 없잖아.”
여자가 돌아서려는데 카리용의 노래가 절묘하게 멈췄다. 뒤돌아서려는 여자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여자는 남자를 쿨하게 보내주기로 하였기에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그 때 남자가 여자의 팔목을 잡았다.
여자는 팔에 힘을 뺐고 남자는 그대로 돌아섰다.
그렇게 계절이 두 번 바뀌고 각자의 삶속에서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남자는 기계에 몰두하여 밤낮없이 일을 했고 가끔씩 여자를 떠올렸다. 여자를 떠올리는 이유가 단순히 고향을 떠나온 외로움일 것이라 여겼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라며.
여자도 나름대로의 생활에 바빴다. 주변에서는 얼른 다른 남자를 만나보라고 재촉도 하고 권유도 했지만 여자는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남자를 무작정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직 준비가 안 된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남자가 파리의 시계탑 앞에 서있다. 시간은 12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었고 여자도 우연히 혜천타워 앞에 서있다. 시계를 보고 있었다. 그날 남자가 손을 잡았을 때를 떠올렸다. 남자가 그리웠으나 별 도리가 없었다.
둘은 그렇게 한참을 그 앞에 서있었다. 그때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남자의 손에는 인천행 비행기티켓이 들려있었다.
왠지 경상도 남자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것은 시골아이가 서울깍쟁이 여학생을 동경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멋들어진 사투리를 쓰고 무뚝뚝한 말투와 행동 속에 배어 있는 세심함이랄까? 한껏 부푼 기대를 안고 떠난 첫 경상도 여행길이다. 포항에 있는 친구에게 내가 내려가니 환영의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으라고 큰소리를 쳤다.
버스에 몸을 싣고 유유히 안내팜플랫을 열어보고 있는데 친구한테 문자가 왔다.
‘미안, 나 갑자기 세미나가 잡혀서 나대신 내 친구 보냈어. 남자애야.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소개팅이라고 생각해! 이 언니의 예기치 않은 깜짝 선물이다. 좋은 시간 보내!’
소개팅? 좋은 시간? 이걸 말이라고. 황급히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전화는 무심하게 신호음만 연결할 뿐이었다. 다시금 차를 되돌릴 수도 없고 1박 2일을 혼자 보내기도 겁이 났던 나는 일단 남자가 나와 있을 것이라는 포항터미널에 도착했다.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왔다.
“김수정씨?”
“아, 네.”
이 남자인가보다.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포항터미널에서 갑작스럽게 만난 남자라니.
“연주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경상도 남자한테 관심이 많으시다고 에스코트 좀 잘하고 오라고 하던데요?”
“아. 연주가 그래요? 아. 뭐..”
연주 이 기집애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나보다. 그리고 이 남자. 낯도 안 가리고 싹싹한 면이 있다.
“배 안고프세요? 포항 오셨으면 과메기 정도는 먹어줘야 되는데, 드셔보셨나 모르겠어요.”
“아. 한번인가? 자주 먹어보지는 못했어요.”
“그래요? 그럼 제가 제대로 먹는 법 알려줄게요. 가요.”
그렇게 처음 본 남자와 처음 와본 곳에서 점심을 먹으러 앉아있다. 죽도시장에서 가장 맛있는 집이라며 남자의 추천으로 들어온 집이다. 주문한 과메기가 나왔고 남자는 김과 과메기, 갖가지 채소들을 얹더니 ‘아’ 해보라고 했다. 괜찮다는 대도 자꾸만 ‘아’해보라고 했다. 쌈이 풀어진다나. 그렇게 수줍게 받아먹은 과메기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비리지도 않았고 고소한 맛이 감돌았다.
“어때요? 맛있죠?”
“네. 비리지도 않고 생각보다 고소하네요.”
“그렇다니까요. 제가 황금비율로 싸드려서 그래요.”
남자는 그러면서 싱긋 웃는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후 일일 가이드로 일임한 남자를 따라 포항 이곳저곳을 다녔다. 남자는 경상도 남자답게 말이 많지는 않았지만 다정하고 세심했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붉은 노을이 하늘을 수놓았다. 일출 명소인줄 알았는데 해가 저무는 모습도 아름다웠다.
“저,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이렇게 일일 가이드도 해주시고. 이제 그만 들어가 보세요.”
“뭘요. 저도 포항 여행 제대로 했는데요. 참. 내일 오전에 해돋이는 보시고 가셔야죠? 아침 일찍 여기로 나올게요. 해돋이 보고 가세요.”
“네? 아. 괜찮은데.”
“무슨 말씀이세요. 호미곶와서 일출 안보고 가면 여기 왔다고 명함도 못 내밀어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내일 6시 10분까지 나오겠다며 내일 보자고 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쓸데없는 호의인가. 아니면 무엇일까.
다음날. 약속했던 시간이 약 30분이 남았음에도 모든 준비를 끝냈다. 애꿎은 시계만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드디어 6시. 호텔 로비를 서성이는데 남자가 나와 있다. 언제부터 와 있던 건지 코끝이 살짝 빨갛다.
남자는 곧 해가 뜬다며 슬며시 내 손을 잡고 일출 명소로 뛰었다. 호미곶의 상생의 손 사이로 붉은 해가 솟아올랐다. ‘와.’ 속으로 감탄을 삼키고 있는데 남자가 말을 걸었다.
“멋있죠?”
“네. 멋있네요.”
“그럼, 나는 어때요?”
남자가 여자의 손을 잡고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는 수줍게 따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에 놀러가는 거 좀 멀리 갈 것이지, 이게 뭐야?”
열 살짜리 동생은 신이 났지만, 올해 중학생이 된 지훈이는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방학을 맞아 처음으로 나선 가족 나들이인 만큼 해수욕장 같은 떠들썩한 곳으로 갈 것을 예상했는데, 아버지가 서울에서 한 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여주의 신륵사로 템플 스테이를 하러 가자고 하셨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부터 결사반대를 외쳤지만, 어머니와 동생이 아버지 편을 드는 바람에 지훈이가 다수결에서 밀리고 말았다.
“우와, 형! 저것 좀 봐!”
시무룩한 얼굴로 휴대전화만 내려다보고 있던 지훈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찻길 옆으로 돌연 바다가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마음에 드냐? 네가 계속 토라져 있어서 잠깐 들렀다. 꿩 대신 닭이라고 저수지라도 좀 봐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다가 아니라 바다처럼 커다란 저수지였다. 지훈이는 아버지가 고갯짓으로 가리키신 곳을 보고 저수지 구경을 하다 말고는 환호성을 질렀다.
“저게 한 이백 미터 정도 되는 미끄럼틀이야. 아마 우리나라에서 제일 길다고 하지? 한 번 타 보고 갈래?”
“네!”
“다 큰 척 하더니 아직 애는 애구나.”
어머니가 웃음을 터뜨리셨다. 자세히 보니 저수지만 휑하니 있는 게 아니라, 광장도 있고 체육 시설도 꾸며져 있었다. 지훈이도 동생도 미끄럼틀에 잔뜩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에, 지훈이네 가족은 잠시 저수지변에 차를 대고 쉬다 가기로 했다. 지훈이는 동생과 함께 몇 번이나 미끄럼틀을 탔다.
“아, 이렇게 재밌는 것만 많으면 좋을 텐데.”
다시 길을 떠나게 되자 지훈이가 아쉬운 목소리로 투덜댔다.
“녀석, 가보기도 전에 그러면 안 되지. 거기 가면 염주도 만들 수 있고, 연꽃도 만들 수 있어. 어디 보자. 이 근처에 세종대왕릉도 있고 주록리도 있지. 오늘 하루 절에서 자고, 내일은 요 근처를 좀 돌아다녀볼까?”
“주록리? 그건 그냥 마을 아니야?”
“그냥 마을이라니. 사슴 마을이야.”
사슴 농장이 있는 마을인가 했더니 그건 또 아니었다. 주록리는 달릴 주 자에 사슴 록 자를 쓰는데, 사슴이 달릴 정도로 깨끗하고 맑은 곳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마을이 생기며 사슴은 전설 속으로 사라져버렸지만, 주록리는 여전히 가재가 잡힌다고 한다.
“가재뿐이냐? 반딧불도 볼 수 있다, 반딧불도. 게다가 여기 이 금사저수지는 팔뚝만한 잉어가 잡혀서 낚시꾼들이 아주 좋아하는 곳이야. 박물관도 있고 이 근처가 볼거리가 아주 많아서, 나라에서 아예 나들이길 코스를 짜 놨을 정도라니까?”
결혼하시기 전까지 여주에 사셨다는 아버지는 명성황후 생가며 금싸라기 참외, 목아 박물관 등등 여주의 자랑거리들을 잔뜩 늘어놓으셨지만, 지훈이의 머릿속에는 계속 사슴이 맴돌았다. 사슴은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마을 이름이 될 정도로 사슴이 많이 살던 곳이 근처에 있다니!
“아빠, 그 주록리에 살았다는 사슴 말이야. 아직도 있을까?”
아버지는 고개를 갸웃거리셨다. 사슴이 전설 속으로 사라진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 사람들을 피해 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간 거라 아직 사슴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확실한 건 나도 잘 모르지만 말이야.”
신륵사에 도착해서도 지훈이는 뒷산을 계속 힐끔거렸다. 남한강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풍경도 멋졌지만, 산 너머로 사슴 한 마리가 갑자기 고개를 내밀 것만 같았다. 아까 아버지가 하신 말이 떠올랐다.
“혹시 모르지, 신륵사 뒷산으로 가서 살고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