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되자 남자와 여자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함께 맞는 크리스마스가 처음은 아니지만, 그래서 더욱 떨리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둘은 처음보다 서로에게 더욱 소중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송이 나오자 남자와 여자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다시 한 번 함께 보낼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며 설레는 데이트를 꿈꾸기 시작했다.
“삼청동 어때? 삼청동은 언제 가도 마음이 편안한 것 같아.”
여자가 남자에게 먼저 제안했다. 크리스마스 당일이었다. 남자는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볼을 꼬집어주고 싶어졌다.
“삼청동은 걸으면서 구경할 때 제일 재밌대.”
남자가 여자에게 말하자 여자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마스 당일 해질녘, 남자와 여자는 삼청동으로 갔다. 삼청동은 ‘차 없는 길’인 감고당길 등에서 시작해 좁은 길과 큰길가를 번갈아 걸으며 구경하는 방법이 있다. 풍문여고에서 시작해 돌담길로 된 감고당길을 걷다 보면 정독도서관 사거리가 나온다. 정독도서관을 지나쳐 더 좁은 안쪽길로 걷다 보면 떡꼬치와 식혜를 먹을 수 있는 풍년방앗간과 기타 크고작은 로드숍을 볼 수 있다. 삼청동은 사람들 사이에‘핫 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유명 외국 화장품 가게 등이 입점하기도 했는데, 그렇다 해도 삼청동의 묘미는 묵묵히, 그러나 아기자기한 매력을 풍기며 영업 중인 크고 작은 가게들일 것이다. 이곳을 걸으며 남자와 여자도 그런 생각을 했다.
“저것 좀 봐. 크리스마스 장식을 팔고 있어.”
둘 다 똑같은 생각을 했던 걸까. 한 로드숍은 관광객을 겨냥한 크리스마스 소품을 거리에 내놓고 팔고 있었다. 신이 난 여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가게로 가자, 남자도 덩달아 환한 얼굴이 돼 함께 구경했다. 오랜만에 본 겨울 소품이 마음에 든 여자는 딱히 살 마음은 없었지만 오랫동안 요모조모 살펴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삼청동에는 식당이 곳곳에 많은데, 맛집도 많대. 청와대 방면으로 우리 걸어볼까?”
해가 져 어두워지자 남자가 먼저 말했다. 비록 데이트지만 행여나 여자가 추울까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남자는 여자를 앞으로 이끌었고, 여자도 설레는 마음으로 남자의 뒤를 따랐다. 만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서로를 향한 둘의 마음은 이럴 때 더욱 깊어지는 것 같았다.
“전구를 보니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아.”
밤이 되자 삼청동 거리에는 겨울 전구들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고, 따뜻한 전구를 보자 남자와 여자의 마음도 한결 더 포근해지는 기분이었다. 불켜진 전구 덕분에 삼청동 거리는 온통 노랗게 빛났고, 여자와 남자의 마음에도 노란 희망이 비치는 기분이었다. 그 희망은 바로, 서로 믿고 의지한 지금까지의 시간이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믿음과 기대에서 비롯된 거라고 둘은 생각했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식당이 있을 거야. 그곳에서 우리 크리스마스 만찬을 즐기자.”
남자의 말에 여자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조금 추위가 느껴지려 했다. 아침부터 무척 추운 날이라고 누군가 그랬는데, 하루종일 밖에 있어도 춥지 않았던 건 옆에 있는 남자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야. 들어가자.”
남자가 여자를 식당으로 이끌었다. 레스토랑의 매니저로 보이는 준수한 남자가‘예약하셨나요?’라고 물었고 남자는 정돈된 말투로 ‘네’라고 했다. 여자는 그런 남자가 더욱 든든하게 느껴졌고 믿음직스러웠다. 이윽고 둘만의 식사가 시작됐다.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은 아마 ‘더욱 깊어진 사랑’이 아닐까, 하고 여자와 남자는 생각했다.
“너 상사화가 왜 상사화인줄 알아?”
“글쎄”
“에이, 그것도 몰라? 상사화는 말이야. 잎이 져야 꽃이 피고, 꽃이 져야 잎이 나는 꽃이야. 세상에, 꽃하고 잎이 만나지를 못해. 그래서 서로를 평생 그리워만 한다나? 이 얼마나 궁상맞은 꽃이냐. 내 인생하고 아주 똑같아…….”
“또 내 얘긴 듣지도 않고 하고 싶은 말만 하지. 아, 엄마! 방에 들어가서 자! 아유, 술 냄새!”
연례행사다. 상사화가 만개할 때마다 엄마에게 끌려 영광에 오기를 벌써 사 년째. 엄마는 항상 저녁 무렵에 영광에 도착해서 술을 진탕 마시고는 다음날 몽롱한 상태로 불갑사에 갔다. 그리고 잎도 없이 새빨간 상사화 속에 파묻혀 기도를 했다. 혹시 엄마가 독실한 불교 신자라서 상사화가 만개한 것을 부처님 공으로 돌리는 거 아니냐고? 아니, 우리 엄마는 나만 믿는다. 신보다도 내가 더 낫단다. 하긴, 엄마는 살아생전 아빠도 믿지 않았다.
아빠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우리에게 믿음을 준 적이 없었다. 잠수 타다 빚만 안고 돌아오기를 수십 번. 그래도 엄마는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아빠의 빚을 갚았고, 마지막으로 빚 대신 병을 안고 돌아온 아빠를 임종직전까지 극진히 간호했다. 나는 평생 애정 없는 남자를 뒤치다꺼리하며 살아온 엄마가 가여워서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아빠가 돌아가신 후, 엄마가 흠모했던 다른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반갑기까지 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엄마에게도 엄마의 인생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엄마, 남자친구 만들어도 돼. 이제 아빠도 없으니까 자유잖아. 결혼 직전까지 좋아하던 딴 남자 있다며? 나 신경 쓰여서 머뭇거리는 거야?”
“아냐. 그런 거. 그 사람 출가했으니까.”
엄마가 좋아하던 사람은 어느 절의 스님이 되었다고 했다. 출가 전날, 훌쩍이던 엄마에게 잎이 없는 상사화 한 송이를 주며 이승에서 흠모했던 걸로 만족하니 저승에서 보자고 했다나? 하여간 아빠가 돌아가신 다음해부터 엄마는 해마다 상사화를 보러 나섰다. 그 스님의 소식은 알 수 없으니, 스님 대신 상사화가 있는 절이라도 가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검색 끝에 영암의 ‘불갑사’가 상사화 최대 군락지라는 사실을 알아냈고, 엄마는 더 묻지도 않고 영암가는 차표를 샀다. 그리고 매년 9월, 나는 내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 없이 상사화 축제에 참여하게 되었다. 해마다 엄마의 간접 연애를 훔쳐보는 기분으로 말이지.
다음 날, 눈을 떠 보니 엄마가 먼저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아직 술 냄새도 가시지 않았는데, 의욕 충만한 모습이었다. 이국적인 모양의 불교 테마 공원을 지나 붉은 다리를 지나니, 붉은 꽃이 바다처럼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이뤄지지 못하는 인연에 반발하듯 붉게 타오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잎도 없이 홀로 화려하게 피어난 것을 보니 고고한 한편 처연하게 보이기도 했다.
엄마는 상사화가 살아있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귀하게 쓰다듬고, 곱게 보듬었다. 그리고는 화소 낮은 폴더 폰을 꺼내어 요리조리 다른 각도에서 사진을 쉼 없이 찍었다. 나는 예년처럼 그런 엄마에게서 조금 멀찍이 떨어져 꽁무니를 쫓아다닐 뿐이었다.
“소녀 같으시네요.”
정신없이 사진을 찍으시는 엄마에게 웬 사내가 말을 걸었다. 민머리에 승복을 입을 걸 보니 스님인 듯 했다. 엄마는 얼굴이 붉어졌다.
“예, 예? 환갑이 다 되어 가는데 소녀라니요…….”
“상사화 이야기에 나오는 소녀 같으세요. 스님에게 반해 속앓이 하다가 죽어 무덤에 상사화를 피웠다는 그 아가씨 말이에요.”
스님의 이야기에 엄마와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야말로 엄마의 이야기가 아닌가. 입을 쩍 벌린 엄마를 보며 스님이 말을 이었다.
“어떤 스님이 상사화 소녀가 오면 전해 달라 하셨어요. 그동안 고되게 사느라 고생 많았고, 남은 인생 자유롭게 살라고요. 그리고 앞으로도 상사화 철엔 꼭 불갑사를 찾아 달라 하셨습니다.”
엄마는 두 눈이 그렁그렁해진 채로 서 있었다. 나는 엄마의 뒷모습에서 처음으로 작은 소녀를 보았다. 붉게 일렁이는 상사화 사이에서 어느새 엄마도 꽃처럼 흐느끼며 일렁이고 있었다.
후회라는 것은 언제나 지나고 난 다음에야 든다. 내가 그렇고 다른 사람이 그렇듯 언제나 동일하게.
“따님이 어머님을 많이 닮았어요.”
미용사가 엄마의 머리를 빗으로 다듬으면서 살갑게 말을 걸어왔다. 어쩌면 지금껏 엄마를 봐온 나보다 엄마를 처음 본 미용사가 더욱 살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엄마는 참 오랜만에 미용실을 찾았다.
“우선 희끗한 저 흰머리 좀 염색해주시고 머리는 가볍게 파마해주세요.”
엄마는 온순한 양처럼 가만히 앉아있다. 바로 앞에 마주하고 있는 큰 거울이 어색해서 인지 자꾸만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다.
“엄마, 고개 좀 들어봐. 그래야 머리가 예쁘게 되고 있는지 알지.”
내 말에 그제야 고개를 살짝 들어 거울을 본다. 여전히 어색한 표정은 남아있지만 그런 어색함이 낯설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따님이랑 이렇게 시내 나오시니 좋으시죠?”
“네”
엄마의 단답형 대답에도 미용사는 여전히 수다스럽게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아무래도 직업병이 아닌가 싶었다.
“점심은 맛있는 거 드셨어요? 따님한테 오늘은 맛있는 거 사달라고 하세요. 예를 들면 스파게티라던지 경양식도 좋고요.”
“네”
미용사는 친절히 메뉴까지 들어주었지만 여전히 엄마는 무뚝뚝했다. 미용사도 조금은 지쳤는지 머리손질에 신경을 두었다. 두어 시간 지나자 엄마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희끗했던 흰머리는 단정한 자연갈색으로 물들었고 헝클어져있던 머리칼은 가벼운 펌으로 탄력이 생겼다.
“이야. 누구 엄마인지 정말 예쁜데?”
엄마는 피식 웃었다. 엄마도 마음에 드신 듯 웃음을 보이셨다.
엄마는 얼마 전 자궁근종 수술을 받았다. 암은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자궁을 들어낸다는 것에 엄마는 여자로서의 삶이 끝난 것처럼 많이 우울해 하셨다. 수술은 잘 되었고 건강관리만 잘 하시면 일상생활에도 큰 문제가 없을 거라 했다.
“엄마,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한동안 죽만 먹어서 좀 질렸을 텐데. 엄마가 좋아하는~”
순간 엄마가 좋아하는 하고 말문이 막혔다.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엄마는 내가 자취집에서 집에 가는 날이면 우리 딸 좋아하는 순두부다 갈비찜이다 한상 떡 벌어지게 차려놓고 계셨는데 나는 이렇게 많은 식당이 있음에도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 하나가 떠오르지 않아 엄마 손을 잡고 계속 걷기만 하고 있다.
“칼국수 먹자. 칼칼하고 시원한 게 먹고 싶네.”
엄마는 내가 당황한 것을 알아챘는지 칼국수를 드시고 싶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엄마는 입맛이 없다고 하는 날이면 국수를 말아 드셨던 기억이 났다.
등촌동 칼국수는 뽀얀 국물에 바지락이 들어가 있는 모양이 아니었다. 버섯 매운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얼큰한 국물에 버섯과 미나리 그리고 칼국수 면을 넣어 칼칼하게 먹는 방식이었다. 한여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먹다보면 땀이 나면서 몸에 원기가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음, 국물 시원하다. 엄마 여기 와 본적 있어?”
“응, 저번에 네 아빠랑. 국물이 칼칼하고 시원한 게 좋더라고.”
“아빠랑? 언제?”
“엄마 수술하기 전에. 여기에서 답답하던 속 다 풀고 가라고.”
무뚝뚝하던 아빠는 수술 전에 엄마를 모시고 나온 적이 있으셨나보다. 엄마의 갑작스런 수술에 아빠도 적잖이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다. 평소 말 한마디 선물 하나 제대로 해본 적 없으셨던 아빠가 먼저 외식을 하자고 했다는 것에 엄마도 아빠의 마음을 조금은 느끼셨으리라 생각한다.
국수를 다 건져먹고 갖은 채소와 계란까지 풀어 볶음밥까지 싹 비우고 나서 음식점을 나왔다.
나는 엄마에게 뭐 해보고 싶은 것이 없는지 물었다. 엄마는 내손이랑 엄마손을 비교해보더니 “나도 이런 거 해보고 싶다. 이걸 뭐라 하더라? 네일아트?” 엄마는 생각도 못한 네일아트를 해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 엄마. 이제 엄마 해보고 싶은 거 다 하면서 그렇게 사세요.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엄마와 걸어가는 데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소복소복 눈이 내리던 날. 인애는 코끝이 빨개지도록 민준을 기다렸다. 수업이 끝날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민준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자 인애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장갑을 낀 손은 따뜻해질 줄 몰랐고 몸도 점점 으슬으슬 떨렸다. 민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
인애와 민준은 같은 학교 선후배로 만났다. 인애는 긴 생머리에 항상 음악교재를 들고 다니며 뭇남성들의 마음을 뒤흔들어놓곤 했다. 민준도 그 중 하나였다. 인애는 학교생활도 열심히 했다. 피아노 연습이 없는 날이면 동아리 활동으로 학교 방송실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학생들은 신청곡이나 사연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인애에 대한 연애편지를 보내기 일쑤였다. 그런 인애가 민준을 만난 곳은 뜻밖의 장소였다.
법학과 학생이었던 민준은 인사관 건물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음료수 캔 하나를 뽑아 마시려 오백 원짜리 동전을 자판기 동전투입구로 밀어 넣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동전을 집어삼킨 자판기가 고장이었는지 꿈쩍도 안하는 것이었다. 민준은 자판기를 손으로 쿵쿵 쳐보다가 그래도 아무런 낌새가 없자 발로 쾅쾅 걷어차 보았다. 그때였다.
“저기, 지금 거기서 뭐하는 거예요? 자판기를 그렇게 걷어찬다고 음료수가 나오겠어요? 돈이 없으면 마시지를 말던가.”
민준의 행동을 본 인애의 가시 박힌 말이었다. 민준은 순간 당황하였고 부끄러운 마음에 손에 들고 있던 법학개론 책을 슬쩍 뒤로 숨겼다.
“저기요, 그게 아니라 돈을 넣었는데 이 자판기가 먹어서 잠깐 쳐본 거거든요? 알지도 못하면서 왜 남의 일에 오지랖 넓게 참견이에요?”
“뭐라고요? 오지랖이요? 자판기가 돈을 먹었으면 연락을 하면 될 것을 그것도 법을 공부한다는 학생이 그래도 된다는 말씀이세요?”
인애가 민준의 책을 본 모양이었다. 민준은 얼굴이 홍당무보다 더욱 벌개져서 마른기침을 한 번 내뱉더니 황급히 자리를 빠져나왔다. 살면서 특별히 죄를 짓는다거나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이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낯 뜨겁고 황당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인애 앞에서라니. 민준은 책으로 머리를 세게 내려쳤다.
민준은 오해를 풀고 싶어서였는지 아니면 인애에 대한 정면승부인지 방송실에 사연을 보내기로 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전 자판기에 대한 화풀이도 아니었고 그저 동전을 집어삼킨 자판기에 대한 작은 하소연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오해는 하지 말아줬으면 해서요. 신청곡은 없고 이 사연 들으면 정문 앞으로 4시까지 나와 줄래요?’
일을 저지르긴 했으나 정말로 인애가 나와 줄지 걱정이었다. 드디어 4시. 정문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인애가 나왔다. 둘은 그렇게 만났다.
*
조금 더 있다가는 추위에 인애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뒤를 돌아서 가려는데 민준의 친구가 인애를 불러 세웠다. 지금까지 민준을 기다린 거냐며 민준이 오늘 열병이 나 학교에 못나왔다는 것이었다. 그저 서프라이즈로 일부러 전화기도 꺼놓고 기다린 것이었는데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전화를 많이 했을까 하고 전화기 전원을 켜보니 수십 통의 전화와 문자가 남겨져 있었다. 인애는 곧바로 민준에게로 달려갔다.
민준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워보였다. 그 와중에도 코끝이 빨개진 인애에게 얼마나 기다린 거냐며 감기걸린것 아니냐고 물었다. 인애는 바보같이 아픈 사람이 누굴 걱정 하냐며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부엌으로 향했다. 달그닥 달그닥 소리가 들리더니 한참 뒤 죽을 끓여왔다.
“그냥 편의점 죽 하나 사다주지 뭐 하러 이렇게 만들어. 그런데 이건 무슨 죽이야?”
“게살죽! 대게 살 발라서 이렇게 죽에 비벼먹으면 힘이 불끈불끈 솟는다니까.”
“게살죽? 맛있겠다. 네가 살 다 바른 거야?”
“그럼! 나 아팠을 때 우리엄마가 항상 영덕대게 푹 삶아서 다릿살이랑 내장이장 참기름 한 방울 넣어서 쓱쓱 비벼줬거든. 그러면 한 그릇 뚝딱이었어. 그러니까 한 번 먹어봐.”
“맛있다. 정말, 힘이 불끈 솟는데? 고마워.”
다음날 방송실로 한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인애는 시계를 한 번 들여다보더니 자판기에서 음료를 하나 뽑아들고 정문으로 향했다. 누군가에게 달려가는 사람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어느 날, 후배 한 명이 미리 주는 생일 선물이라며 김광석의 베스트 앨범 한 장을 건네 왔다. <서른 즈음에>라는 곡명에 형광펜으로 체크가 되어 있는 것을 보니 나를 곯리려 작정을 한 것이 분명했다. 괘씸하기는 했지만, 명곡은 명곡이었다. 신세대라고 하기에는 구세대이고, 구세대라고 하기에는 신세대인 어정쩡한 나이가 된 나는 이수영이나 성시경의 노래보다는 김광석의 노래를 더 사랑했다.
헤어진 전 여자 친구이기도 한 후배는 ‘술 좀 줄이시고요.’라는 말을 덧붙였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또 마침 소주 안주로 제일인 것이 김광석의 노래라 하지 않았는가.
결국 과음을 한 탓에 다음 날 수업에 나가지 않자, 후배가 뺨을 붉히며 숙취 해소 음료 하나를 건네 왔다. 후배의 복잡한 표정에서, 그 애가 못다 한 말들이 읽혔다. ‘선배님, 장난 치고는 좀 심했죠. 여러모로 머리가 복잡하실 걸 모르는 게 아닌데. 기분 전환이나 하시라고 드린 선물이었는데,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하고 말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고맙다는 말 대신, 뜬금없이 대구에 있다는 김광석 길에 함께 가주지 않겠냐는 말을 했다. 술이 덜 깨서일까, 아니면 김광석의 달콤하고도 쌉쌀한 노래들을 어제 하루 종일 들어서였을까. 아차 하는 마음에 미안하다고 말하려 하는데, 후배가 그러자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배가 다음 수업이 있다며 인사를 하고 강의실을 나간 뒤에도, 나는 좋아해야 하는 것인지 후회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머리만 긁적이고 있었다.
술은, 정말로 마시지 않을 생각이었다. 헤어진 후로 몇 달이나,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가 오가지 않았었다. 그러던 와중에 선물로 받은 것이 김광석의 앨범이요, 몇 달 만에 들어보는 따뜻한 말이 술을 좀 줄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김광석의 노래가 내 방을 가득 채우니 술이 고픈 것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사랑이라는 이유로>에서 <이등병의 편지>를 거쳐 타이틀곡인 <변해가네>까지는 그럭저럭 견뎠지만, <서른 즈음에>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냉장고를 열고 소주병을 꺼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랬다. 농담처럼, 내게도 서른이 왔다. 철부지 새내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몇 번의 작은 성공과 몇 번의 연애, 그리고 몇 번의 쓰린 실패 끝에 내게도 서른이 오고야 만 것이다. 잦은 휴학에, 아직 대학 졸업장도 받지 못했는데 말이다.
안주 없이 소주잔을 비우며 몇 방울의 눈물을 떨궜던 것 같기도 하다. 서른이라는 막막한 숫자 앞에, 그리고 서른이 되도록 무엇 하나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 거울 앞의 내 모습에 말이다. 내 인생의 역할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계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며, 내 안의 어떤 것이 같이 죽어버렸다. 울고 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아버지의 시신을 보았을 때, 영영 무너지지 않을 아버지의 철옹성 같던 어깨가 실은 작은 새처럼 여린 것이었음을 알게 되어 버린 것이다. 내가 가장 크게 믿던 사람이 그렇게 한 순간에 한 줌의 재가 되었다.
“현석아, 네가 이제 우리 집의 기둥이여.”
나는 어머니의 그 말이 싫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에 대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어머니와 여동생의 버팀목 역할을 맡아야 했고, 그 자리가 두려워 계속 뒷걸음질만을 치다가 끝내 주저 앉아버리고야 말았다. 우스운 노릇이었다.
다가온 주말에 나는 정말로 후배와, 아니 내 전 여자 친구와 함께 대구행 기차를 탔다. 여전히 조금은 어색한 사이였기에 애초에 많은 대화가 오가지도 않았고, 삼십 분이 채 되지 않아 간간히 오가던 대화마저 완전히 끊겨 버렸다. 서로 감정이 상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연애는 이미 지난 일이었다.
그 나른한 봄의 정적 속에서, 나는 잊고 있었던 풍경 하나를 기억해 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아버지의 서른 즈음에 있었던 일을 말이다. 만취하여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는 김광석의 노래를 열창하셨다. 다른 어떤 노래도 아닌, <서른 즈음에>를. 그것도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라는 부분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부르셨다. 비어가던 서른 살 아버지의 가슴을 다시 차오르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툭, 하고 내 어깨 위로 고개 하나가 기울었다. 그 애가 봄기운에 취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것을, 나는 서른 즈음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어색한 사이를 메우는 공간이 문화예술의 공간이 되었을까? 그곳에는 보이지 않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있다. 미술작품을 보면서 작품을 바라보는 안목을 확인하고 취향이 우회적인지 노골적인지를 확인한다. 젊은이들은 그곳에서 문화를 나누고 한숨을 돌린다.
그리고 티켓 단 두장만으로 두 사람의 마음이 움직일 수 공간이다.
“효진씨,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요?”
“오늘 저녁이요? 야근만 없다면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런데 왜요?”
“다른 건 아니고, 저한테 뮤지컬표 두 장이 생겼거든요. 혹시 안보셨으면 같이 보실래요?”
“우와, 그거 엄청 빨리 매진 된 거라 구하기 힘든 건데. 갈래요!”
민수는 효진이 일하는 곳 상사이다. 효진이 이곳에 입사한 후로 가까이에서 가장 많이 도와주는 사람이었다. 민수의 컴퓨터 모니터로 효진이 보낸 매신저가 날아왔다.
‘대리님! 이따 퇴근하고 정문 앞에서 봬요. 저녁은 제가 쏠게요^^’
민수는 그 메시지 하나로도 충분했다. 어렵사리 친구놈에게 구걸하다시피 표를 산 것이, 거의 표 두 배 가격을 주고 산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순간이었다.
모처럼 칼퇴를 하고 나서니 멀리서 효진이 보였다. 하늘높이 손을 들어 내 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간단한 샌드위치와 커피를 들고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효진은 정말 보고 싶던 뮤지컬이었다며 재차 기쁨을 표했다. 공연이 끝나고 둘은 근처에서 간단히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서울의 밤은 여전히 화려했고 잠들지 않았다. 공연장을 빠져나오는 사람들은 저마다 공연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아 공연의 이모저모를 이야기했고 그중에 효진과 민수도 속해있었다.
효진은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키더니 화려하게 반짝이는 불빛을 보면서 말했다.
“가만 보면 서울은 참 희한한 동네인 것 같아요. 동네라고 하기도 좀 그렇지만.”
“어떤 점에서?”
“음, 사람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잖아요. 이렇게 건물들에 불이 켜져 있는것도 다 밤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일 테고. 그런데 그 속에서 이렇게 숨 좀 돌려보겠다고 공연도 보고 미술도 관람하고 하는 걸 보면 참 딱해요. 서울사람들도.”
“그런가? 듣고 보니 그러네. 서울이라는 동네가.”
“그렇죠? 서울에 야경이 멋있다는데 보면 다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인데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해요.”
효진은 자기감정에 취해있는 듯했다. 회사에서는 효진과 특별하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음으로 효진의 생각과 가치관을 들어볼 기회가 좀처럼 없었다. 그냥 어린 신입사원이라고 생각했는데 꽤 진지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 같아서 속으로 살짝 당황스러웠다.
효진은 맥주를 홀짝홀짝 마셨다. 취기가 올라서인지 불빛 때문인지 아니면 공연의 흥분감이 채 가시지 않아서인지 효진의 두 볼이 약간 발그레 했다.
“전 예술의 전당이 참 좋아요. 여기에선 숨통이 좀 트인 달까? 친구와도 좋고 연인도 좋고 가족도 좋고. 누구와 와도 좋은 곳인 것 같아요. 지금 우리처럼 직장 상사와도 좋고!”
효진은 빙그레 웃었다. 효진의 말대로 서울의 문화 예술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의 전당은 그랬다. 누구와 와도 즐거운 곳이었다.
민수는 겉옷을 벗어 효진의 어깨에 슬며시 걸쳐주었다. 효진도 나쁘지 않은 듯 배시시 웃었다. 예술의 전당에서는 희미하게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저녁 오페라 공연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 희미한 노랫소리에 맞춰 예술의 전당 앞 분수가 춤을 추었다. 분수에 오색빛이 비춰지자 환상적인 느낌을 연출했다.
효진이 자그마한 허밍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희미한 노랫소리 그리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반짝이는 서울의 밤은 그렇게 잠들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암시하기에 충분했다.
결혼을 앞둔 여자의 목소리는 한껏 흥분과 설렘이 적절히 섞여 있었다. 그녀에게 세상은 핑크빛일 테고 파스텔 톤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상견례와 결혼 날짜까지 한 큐에 끝내버리고 요즘은 친정엄마와 혼수를 보러 다니고 피부숍을 다니며 생애 한번 있을 아름다운 날을 위해 온 신경을 쏟았다.
서른둘의 나이. 요즘으로 치면 적지도 많지도 않은 나이라지만 먼저 결혼한 친구들의 훈수 덕에 그녀의 머릿속은 적잖이 복잡해졌다. A는 근사한 카페를 통째로 빌려 피아노를 치며 영화의 한 장면처럼 프러포즈를 받았다더라. 친구 B는 청담동으로 시집간다더니 몇 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몇 세트를 받았다더라 하는 말들이 자연스레 들렸고 친구들은 며칠 굶주린 하이에나들처럼 여자의 결혼에 관심을 기울였다.
여자는 신경 쓰지 않고 남자친구에게 내색하지 않기로 마음먹고도 내심 신경이 쓰였고 기대가 되었다. 여자라면 누구나 그럴 거라며 자신은 속물이 아니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남자친구에게 대뜸 나 어디서 어떻게 프러포즈해줄 거냐. 몇 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워줄 거냐고 따져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무엇보다 남자친구의 형편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여자의 얼굴엔 점점 그늘이 드리웠다.
오늘 예쁘게 입고와. 일 끝날 때 맞춰서 데리러 갈게.
남자친구의 문자다. 여자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예쁘게 입고오라니, 왜? 혹시 프러포즈하려고 그러나? 그렇담 뭘 입어야 하지? 야외에서 하면 좀 쌀쌀할 텐데 겉옷을 준비해갈까? 눈물을 흘려야 하나? 여자는 30초간의 짧은 순간에 몇 가지 생각들을 흘려보냈다.
귀여운 것. 조금 무뚝뚝하긴 했어도 예쁘게 입고 오라는 힌트까지 주다니. 여자는 한껏 들뜬 마음을 즐겼다. 언제 또 이렇게 행복하겠느냐며 이 순간을 즐기자고 생각했다.
여자는 자신이 아끼던 옷을 꺼내 입고 싱글벙글 하며 남자를 기다렸다. 남자는 칼같이 여자를 데리러 왔다.
“어디 가는 거야? 어디로 가는 건데? 응? 왜 예쁘게 입고 오라고 했어? 어?”
여자는 남자의 차에 타자마자 콧소리를 내며 남자에게 질문을 쏟아 부었다. 남자는 가보면 안다며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았고 여자의 기대감은 극도로 높아졌다.
그런데.
남자는 카페를 빌리지도 근사한 곳에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지도 않았고 무릎을 꿇으면서 눈물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무심히 스윽 건네는 반지케이스 하나.
이게 뭐야. 여자는 기쁨과 감동의 눈물을 준비해왔으나 서러움으로 흘릴 줄은 몰랐다. 여자는 기쁨도 감동도 하지 않은 채 말없이 반지케이스만 바라보았다.
“실망했어?”
그걸 말이라고. 여자는 이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으나 차마 내뱉지 않았다.
“어떤 반지인지 궁금하지 않아?” 라고 말하며 반지케이스를 열었다.
붉은빛이 선명한 반지다. 루비인가. 동시에 남자가 말한다.
“루비 아니야. 빨간색을 띄는 희귀 다이아몬드도 아니고.”
“내가 하늘에 떠있는 별을 따다 달래 달을 따다 달래. 그냥 말 한마디 아니 말 한마디가 어려우면 꽃이라도 아니 꽃도 어려우면 노래라도. 그만하자.”
“알아. 네 마음. 섭섭하겠지 속상하겠지. 그런데 반지 꽤 의미 있는 거야. 이게 1월 탄생석으로 만든 거거든. 당신 생일이자 우리 결혼기념일이 될 1월.”
여자는 애써 침착하게 반지를 바라보았다.
“다음번 결혼기념일에는 근사한 카페도 빌리고 백송이 꽃도 준비하고 피아노도 배워서 노래도 불러줄게. 더 예쁜 반지와 함께.”
좀 전에 남자가 내민 보석은 가넷이었다.
선농제는 농업 신인 신농과 후직에게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다. 선농제는 제왕의 왕도정치를 실천적인 권농책으로 강조해 일찍이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다. 예전에는 음력 1월인 맹춘에 지냈다고 했는데 지금은 너무 추워 파종을 못하기 때문에 개구리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 뒤의 좋은 날을 골라 시행하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경칩이 지나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임금님께서 곧 친경(임금님이 직접 참여하는 행사)하시는 날이 가까워졌다는 이야기다. 올해는 음력 2월 9일 춘분에 맞춰 친경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어 궁궐에서는 임금님 행차에 앞서 이것저것 준비에 바쁘다.
임금님께서는 지난해 춘경을 하시며 상언과 격쟁을 열어 이야기를 직접 들으셔 백성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상언은 일반 백성들이 왕에게 직접 억울함을 글로 호소하는 것이고, 격쟁은 임금의 행차 중에 징이나 꽹과리를 쳐서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는 것인데 임금님께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문제 해결을 지시하기도 했다.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가뭄과 홍수를 겪고 있어 백성은 백성대로 굶주리고, 임금은 임금님은 그 모든 것이 자신의 부덕 때문이라며 눈물을 보이시는 날이 많다. 그럴 때마다 임금께서는 신하들에게 거리낌 없이 말하라며 직언을 요청하는 한편, 자신이 직접 민생을 살피기 위해 궁을 나서기도 하신다고 한다.
드디어 선농제의 날이 다가왔고 임금께서는 선농단이 있는 제기동으로 행차 하셨다. 올해도 가뭄이 심했다. 임금께서 하문하시길 “가뭄이 너무 심하다. 소나기가 내렸지만 안개가 끼고 흙비가 왔을 뿐이다. 기후가 이렇듯 순조롭지 못하니 벼농사 형편이 걱정되는구나.”라 셨다.
청계천을 따라 행차가 이어지고 동대문을 지나심에 들녘을 돌아본 뒤 말문이 막히신 듯. “날이 가물어 지력이 약해진 것을 보니 눈물이 날 지경이다. 원래 이 땅은 비옥한 편인가, 메마른 편인가?”라면 대언에게 물었다. “원래 이 땅은 메마른데다가 가물어서, 작년 홍수로 농사가 잘 안됐습니다.” 그러나 대언을 거짓을 고한 것이다. 원래 비옥한 땅인데 침통한 임금님의 용안을 본 그가 거짓을 아뢴 것이다.
선농단에 도착하신 임금님께선 풍요를 비는 선농제를 지내시고 하늘을 우러러 비를 내려 주십사 기우제를 지내셨다. 임금께서는 이농기의 가뭄과 여름철 홍수로 고통 받는 백성들을 생각하시며 눈물을 흘리시며 하늘에게 비를 내려 달라 빌고 또 빌었다. 선농제가 있는 오늘도 봄 가뭄으로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선농제, 기우제가 끝나고 어느덧 많은 시간이 흘러 임금께서 서둘러 환궁해야 할 시간이 됐다. 임금님의 가마가 움직이는 순간, 거짓말처럼 하늘에서는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내 메마른 땅을 적셔주는 굵은 빗방울로 바뀌어 있었다. 모든 백성과 신료들이 뛸 듯이 기뻐하며 너나 할 것 없이 춤추고 흥에 겨웠다. 하지만 많은 비로 땅이 질어져 임금님의 가마를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불상사가 생겼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 환궁하기로 했고 임금님의 수라상을 올릴 시간이 됐다.
하지만 임금님과 대신들 이외에 먹거리가 부족해 군관들이나 궁녀, 의원 등과 같은 궁인들은 먹을 게 없었다. 수라상을 받은 임금께서는 작년 흉년으로 고통받는 백성과 궁인들이 배를 곪고 있는데 어찌 혼자만 수저를 들 수 있느냐며 수라상을 물리라 하셨다. 어의와 대신들은 임금님의 하면을 거둬 달라 간청했다. 임금님께서는 모두가 같이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셨지만 인근 백성들도 배를 곪고 있는 춘궁기로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이때 임금님은 선농제에 풍년을 기원하며 쓴 소를 보시고는 그럼 소를 잡아 물어넣고 끓여 다 같이 허기를 달래자 하셨다. 이윽고 대신과 많은 궁궐 사람들, 굶고 있는 백성들을 대접하기 위하여 쇠뼈와 고기를 삶아낸 국물에 밥을 말아 많은 사람들이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
이 일이 있고 백성들은 임금님에 대한 칭송이 더 높아졌다. 그 후 백성들을 생각하며 선농제를 지내고 경작에 쓰인 소를 잡아 선정을 베푼 임금님의 높은 애민정신을 생각하며 그 음식을 선농탕이라고 불렀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설렁탕이 됐다. 어떤 사람들은 소를 잡아 설렁 설렁 끓여 설렁탕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하지만 설렁탕은 끓는 물에 뼈와 고기가 오랫동안 우러나야 진한 맛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설렁탕은 임금님의 백성을 굽어 살피신 마음이 베여있어 더욱 진한 향기가 나는 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