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불안하다. 내가 로버트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3년 전. 로버트는 우리 학교의 교환학생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외국인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온 나이기에 괜히 더듬더듬 말을 붙여 본 것이 인연이 깊어졌고, 우리는 어느 새 연인이 되었다.
창밖으로 로버트의 모습이 보였다. 성큼성큼 다가와 내 앞에서 환히 웃는다. 카페 안의 시선이 일순간 모두 나에게로 쏠리며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로버트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로버트 또한 그렇다. 우리 둘만 행복하면 다 괜찮은 거라 생각은 하고 있지만, 평생을 함께 헤쳐 나갈 수 있을지, 나는 불안하다.
우리 둘은 아직 한 번도 다퉈 본 일이 없었다. 성격이 잘 맞아서이기도 하지만, 로버트가 상상 이상으로 나를 배려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남들의 시선이다. 영국 남자와의 연애에서 결혼생활까지를 그리고 있는 웹툰이 큰 인기를 끈 이후로 젊은 사람들의 시선은 눈에 띄게 부드러워 졌지만, 우리가 손을 잡고 길을 걸을 때면 어르신들이 눈을 흘기며 혀를 차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오랜만에 보는 정장 입은 모습이 낯설었다. 오늘 저녁에 로버트는 처음으로 우리 집을 방문하게 될 것이다. 2년 넘게 사귀어 온 남자친구를 소개하겠노라 선언하고 집을 나왔는데, 그 남자친구가 미국인이라는 것은 아직 말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혹시 거리의 사람들처럼, 우리들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으실까.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내 선택에 불만이 없다. 행복하게 살 자신도 있다. 로버트는 나와 결혼 한 후에도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말했으므로, 지금 내 생활에서 많은 것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아이가 이런 시선을 견딜 수 있을까. 내가 눈 앞의 행복 때문에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테이블에 놓인 커피에는 입도 대지 않고 입술만 물어뜯고 있자, 불안한 마음을 눈치 챈 듯 로버트가 내 손을 잡았다.
“걱정, 안 돼.”
‘그럼, 안 되지. 우리 둘은 잘 헤쳐가 갈 수 있을 거야.’하고 나는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다.
“점심으로는 뭐가 좋을까.”
잠시 고민하던 로버트가 좋은 생각이 났단다. 그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부대찌개 집이었다. 정장을 입고 부대찌개를 파는 식당에 올 줄은 몰랐는데, 로버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기세 좋게 이모를 부르며 부대찌개 2인분을 시킨다.
아직 한국어가 서툴지만, 그는 어디에 가서도 기가 죽지 않는다. 자라온 환경의 차이 탓일까. 나도 내향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걱정이란 게 없어 보이는 로버트를 보면 부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찌개가 끓자 로버트가 내 앞의 접시를 가져가 찌개를 덜어 주었다. 그런데 내 몫의 접시에는 햄만 가득 담겨 있었다. 건너다보니 로버트의 접시에는 김치만 담겨 있다. 의아한 내 표정을 본 로버트가 웃었다.
“혜연은 햄을 좋아하고, 나는 김치를 좋아해. 그래서 나는 부대찌개가 맛있어.”
문득 한국 전쟁 이후 이곳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부대에서 나온 햄을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고추장이나 김치 등의 재료를 넣어 끓인 것이 부대찌개라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로버트는 마냥 즐거워 보였다.
처음에는 김치는 물론이고 라면도 잘 먹지 못하던 로버트인데, 매일같이 나와 함께 있다 보니 어느 새 김치 국물에 밥도 비벼 먹을 정도로 매운 맛에 익숙해졌다. 김치에 파를 얹어 먹는 모양새가 이제는 제법 한국인 같기도 했다.
“맛있을 거야, 앞으로도.”
달빛이 그대로 비치는 물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가 옆에 턱 와서 앉았다. 희끗하게 센 턱수염을 거칠게 깎은 박 씨 아저씨였다.
“강 씨, 오늘도 나왔네 그려.”
“박 씨 아저씨도 여전하시네요.”
오늘도 한적한 동네 냇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았다. 냇가라는 표현이 어색할 정도의 큰 지류여서, 우리 동네의 숨은 낚시꾼들에게는 아주 중한 장소였다.
퇴직 후에 전원생활을 즐기고 싶어 수도권 언저리의 한 동네로 내려 온 것이 이래저래 좋은 선택이 된 셈이다.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 이사를 온 뒤에도 한동안 동네 사람들과 소원하게 지냈는데, 달밤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나란히 앉으니 자연스레 이야기꽃이 피는 것도 이 밤낚시의 묘미 중 하나였다.
나는 낚시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전문적으로 파고들 정도는 아니었는데, 알고 보니 다른 사람들도 그랬다. 다들 혼자 집에 있기가 심심하니 그저 소일거리 정도로 생각하며 낚싯대 하나를 챙겨 냇가에 나왔는데, 어느 새 이 ‘낚시꾼 모임’이 만들어진 것이다. 나이가 고만고만한 중늙은이들이 전문적인 장비도 없이 나란히 낚싯대를 내리고 있으니, 고기를 잡는 일도 드물었다.
“옛날에는 물속으로 그냥 뛰어들어 손으로 잡아 올려도 월척이었는데 말이야.”
박 씨 아저씨의 농담에 다들 말문이 트였다. 아마 우리가 몇 번이고 터뜨리는 웃음소리에, 잡힐 고기들도 다 도망치고 말았을 것이었다. 처음에는 다 재밌자고 하는 일인데 아무려면 어떤가 싶었다.
그래도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니 조금은 고기 잡을 욕심이 생기는 것 같기도 했다. 낚싯대를 바꾸고 미끼를 바꿔가며 애를 써 봐도 소득이 없더니, 어느 날은 항상 웃음을 주도하시던 박 씨 아저씨가 물골에서 손바닥만 한 붕어를 낚아 올리셨다. 박 씨 아저씨는 제가 고기를 잡고도 놀라신 모양이었다. 매일 농담만 주고받느라 낚시는 뒷전이었던 우리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진 것은 물론이다.
다음 날, 낚시꾼 모임 멤버들이 나만 빼 두고 무슨 계획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실상 나만 빼 두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나, 가장 늦게 이사 온 나는 모르는 이야기였다. 엿듣는 모양새가 되어 한참을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다가, 성이 나서 나도 무슨 이야기인지 좀 알자 했더니 모두가 껄껄 웃었다.
“그래, 강 씨는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으니 모르는 이야기겠네. 여기, 김 씨 아저씨 고향이 저어기 부산에 있는 가덕도인데 말이야. 거기 숭어들이가 아주 유명하다고 해서 작년부터 한 번 가 볼까 하고 있었지.”
“며칠 전에 박 씨 아저씨가 붕어를 낚았잖아? 그거 보고 이야기로만 들었던 숭어들이가 생각 난 거야. 마침 가덕도 숭어 축제가 얼마 남지 않았다기에, 거기나 한 번 가 볼까 하고. 강 씨도 갈 거지?”
먼 길 여정이 달가운 나이는 아니었기에 처음에는 조금 꺼려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조금 들어보니, 배 수 척으로 바다를 둥그렇게 싸고, 숭어가 지나 갈 때에 그물을 들어 올려 잡는 것이 숭어들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예전에는 다들 고기를 이렇게 잡았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전통적인 방식으로 고기를 잡는 것은 가덕도가 유일하다는 말도 덧붙여졌다.
“사실 우리가 하고 있는 낚시도 고기를 찾아 가서 잡는 게 아니라, 고기가 바늘을 물어 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니 우리에게 딱 맞는 축제지. 안 그런가?”
박 씨 아저씨의 말에 또 다들 웃음보가 터졌다.
축제 날짜에 맞추어 부산으로 떠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박 씨 아저씨가 남긴 마지막 말이 귓가에서 자꾸 어른거렸다. 숭어들이는 어류장이라는 분이 있어, 그 분이 한 평생 동안 고기가 가는 길을 알려주신다 하였다. 망망대해를 보고 있다가도 숭어 떼만 지나가면 기가 막히게 바다 위의 배들에게 신호를 보내 주신다는 것이었다.
나는 낚싯줄을 곱게 감아도 보고, 낚싯대를 행주로 박박 문질러 닦아도 본 끝에 전화기 앞에 섰다. 저녁만 되면 낚시를 하러 나온 것은, 저녁만 되면 울리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나는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한 번 들었다 놓아 보았다.
내일 낚시꾼 모임은 하루 쉬어야겠다. 내일도 숭어가 올 터이니, 내가 그 고기를 한 번 낚아보아야겠으니 말이다.
입맛이 어쩜 이렇게 토속적이야?
남자친구와 함께 밥을 먹어본 사람들이면 의례적으로 이런 말 한마디씩 꼭 한다. 하긴 금발의 외국인이 청국장, 김치찌개, 불고기 백반을 즐겨먹으니 그럴 만 했다.
그런 것이 외국인에게 갖는 첫 번째 편견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외국인이라고 다 햄버거나 빵을 좋아할 것이다 라는 편견. 남자친구는 처음에 토속적이라는 뜻을 몰라 물은 적이 있다. 한국적이고 좋다는 거라고 이야기 해주니 대번 웃으며 나는 토속적이에요 한다.
남자친구를 처음 만난 곳은 이태원의 한 음식점에서였다. 친구의 소개로 만난 것인데 외국인과의 소개팅이라고 해서 나는 일부러 이태원에서 보자고 한 것이다. 일종의 외국인을 위한 내국인의 배려랄까. 처음 본 남자친구의 첫인상은 단정한 금발머리에 피부가 하얀 유럽풍 사람이었다. 평소 영어는 스펙을 쌓으며 만들어진 회화정도였기에 처음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지 고민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처음 보자마자 안녕하세요? 라고 정중히 인사를 하는 그의 모습에 네에. 라며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나는 맛도 예상하기 힘든 그리스식 샐러드와 파스타를 주문했다. 그도 평범한 파스타에 쁘띠 피자를 시켰다.
남자친구는 나에게 한국음식 중 무엇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외국인에게 이런 질문을 받으니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더 당황스러웠던 건 내 입에서 삼겹살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였다. 삼겹살이 뭐 어떠냐고 생각하겠지만 처음만난 소개팅자리에 그것도 외국인 앞에서 비빔밥이나 김치볶음밥이 아닌 삼겹살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남자친구는 반가워하며 자기도 삼겹살 좋아한다며 ‘삼겹살 좋아! 삼겹살 좋아!’라며 서툰 한국말을 했다. 거기에 ‘소주 한잔까지!’를 빼먹지 않았다. 남자친구가 외국인인지 내가 외국인지 헷갈릴 정도로 우리는 어색하지 않은 시간을 보냈었다.
남자친구는 친구들을 만나러 이태원을 자주 가는 편이었다. 나는 이태원이 조금 무섭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마 낯선 사람들과 낯선 문화가 혼동되어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남자친구에게 한 적이 있는데 남자친구는 꽤 현명한 답을 했다.
“낯선 사람들과 낯선 문화가 있어서 무섭다고? 왜?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서울 전체가 다 낯선 사람들뿐이고 낯선 문화인데? 난 하나도 무섭지 않아! 오히려 즐거운 걸.”
정답이다. 조금 다르게 생기고 조금은 낯선 문화라고 겁부터 내는 내가 참 바보 같았다.
나는 이태원에서 프랑스식 요리나 커리, 케밥 등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 했다. 남자친구는 나를 많이 배려했고 이태원 맛집 지도라며 귀엽게 그림을 그려 온 적도 있다.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저 멀리 한 카페에서 남자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뭐 하고 있었어?”
“응, 오늘 파티가 있다고 해서 재미있는 옷들 좀 같이 구경하려고.”
“파티? 우와 재미있겠다. 할로윈 같은 건가?”
역시 외국문화 집결지답게 각 나라의 전통의상이나 만화 캐릭터들의 의상이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남자친구의 나라 스위스의 전통의상을 골랐다. 남자친구는 알프스 소녀처럼 귀엽다고 했다.
의상과 액세서리를 치장하고 간 파티자리엔 역시나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였다. 세계 갖가지 맛있는 음식들이 놓여있었고 술도 종류별로 있었다. 언어와 생김새가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였지만 이질감이나 거리감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배려하면서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고 궁금증도 많아졌다.
이태원, 역시 자유로움 속에 정돈된 질서가 숨어있는 곳이다.
희뿌연 듯 하면서도 선명하고 어질러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깨끗한 곳. 언제나 또 언제나 새로운 곳, 그곳은 이태원이다.
이태원 프리덤!
진녹색 군단이 한차례 지나간 자리에는 희미하게 짭조름한 냄새가 났다. 고된 훈련으로 나는 땀 냄새인지 순식간에 불어온 습한 바람 때문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남자는 오늘도 구부정한 모습으로 연필을 깎는다. 그가 연필을 깎으면 늘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흑심이 길쭉하게 솟아오를 때까지 사각사각 말없이 연필만 깎는다.
남자와 나는 미군부대 PX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남자는 초상화를 그렸고 나는 그 옆 화방에서 그림에 필요한 물건들을 팔았다. 물론 손수건이나 비상약, 껌 등 잡다한 물건을 팔기도 하였다. 사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담배나 껌, 손수건을 찾는 군인들이 많았고 대부분은 손수건이나 액자에 여자 친구 사진을 담기 위해 들르는 사람들이 많아 가게의 정체성을 잃은 지는 오래다. 하지만 꼬박꼬박 남자는 이곳을 화방이라고 불러주었다.
남자는 항상 뭉뚝한 연필을 들고 그림을 그렸다. 남들이 벙어리 환쟁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니 그의 무심함은 말 안 해도 그만이다. 하지만 그는 꽤 자상한 성격이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미군들이 자신의 여자 친구 사진을 들고 와 초상화를 부탁하면 늘 사진보다 조금 더 예쁘게 그려주었으니까.
남자는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졌다. 그래서일까 남자는 갈색 빛을 닮았다. 그는 초상화를 그리고 시간이 남을 때면 틈틈이 나무를 그렸다. 남자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왠지 아무도 찾지 않는 늙은 나무를 보는 것 같았다. 초라하지만 굳은 심지가 느껴진 달까. 남자가 그리는 나무는 잎이 없고 푸르지 않은 발가벗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를 닮은 아주 진한 갈색 빛으로 나무를 단장했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나면 꾸부정하게 앉아 붓을 빨았다. 그를 보면 그가 그리던 고목이 떠오른다.
내가 남자에게 초상화는 예쁘게 그려주면서 나무와 여인들은 투박하게 그리느냐고 핀잔을 주면 특유의 서글서글한 웃음만 짓는다. 얇은 종이가 구겨지듯 그의 눈 주위에 주름도 함께 구겨진다. 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림이나마 좀 화려하면 어때? 원래 글이나 그림이나 다 환상 아닌가? 꿈도 꼭 그렇게 소박하게 꾸어야 겠냐는 말이야. 기왕 나무를 그릴 것이면 잎도 무성하고 큰 정원도 있고 정원을 가꿔주는 정원사도 있으면 좋겠지. 그리고 큰 나무 앞에 서있는 여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여자가 부드러운 실크로 만든 옷을 입고 서있으면 더 좋고!”
나는 제법 똑부러지게 말했다고 생각했지만 남자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나를 쳐다보지 않은 채 말했다.
“아기 업은 단발머리 소녀. 조잘대는 말들이 피어오르는 빨래터. 개울을 건너는 소년.
주변의 사람들을 보고 선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 그것뿐이지.
내가 생각하는 인간상이 그런 것이고 내가 생각하는 나무는 그런 것이야.”
남자는 늙은 나목과 함께 할아버지와 손자, 광주리를 이고 가는 여인들을 그렸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했다. 고무신을 신은 단발머리 소녀와 소녀의 등 뒤에 업힌 아기. 그것이 남자의 그림이다.
남자의 연필이 다 되어갈 쯤이었다. 그가 돌연 이곳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나는 왜 이렇게 갑자기 결정해서 통보 하냐고 섭섭한 마음을 어조에 담아 강하게 말하였으나 남자는 갑자기 결정한 것도 통보하는 것도 아닌 것을 알고 있다.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그는 어디로 간다고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 것만 같았다. 그는 한 그루의 초라한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갈 것이다. 그곳에서 무심히 연필을 깎을 것이다.
그가 다시 돌아올 때쯤엔 새로운 연필과 지우개 그리고 붓을 선물해야겠다. 저만치 떨어져 한사코 거절하겠지만.
잠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 앉은 친구가 나를 툭툭 쳤다. 진동이 울려 휴대 전화를 확인 해 보니 메시지 한 통이 도착 해 있었다.
‘절대 잠들면 안 돼. 잠드는 사람이 돼지국밥 쏘는 거야.’
알았다니까 그러네. 나에게도 잠들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오랜만에 타는 기차가 신기할 뿐이었다.
서울역에서 테이크아웃 해 온 아메리카노 컵에는 물기가 맺혀, 홀더까지 눅눅해졌다. 기차 여행 기분을 제대로 내기 위해 사 온 김밥과 삶은 달걀도 껍데기만 남은 지 오래. KTX가 아닌 무궁화호를 탄 지라 부산까지는 다섯 시간. 부산역에 도착하기까지 이제 한 시간 정도가 남았다. 오랫동안 기차를 타니 피곤한 듯 잠든 승객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우리 넷만 초롱초롱한 눈으로 장난스런 눈빛을 주고받고 있었다.
서울 중에서도 강북 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가 저 먼 남쪽 끝 부산으로의 여행을 결심한 데에는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 부산에 연고지가 있는 친척도 없었고, 야구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사직구장을 보러 부산까지 갈 만큼 열성적인 팬은 아니었다.
부산의 명물인 돼지국밥이나 밀면, 씨앗 호떡 같은 것들도 보성에 가면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고, 전주에 가면 비빔밥을 먹듯이 당연한 수순일 뿐. 우리에게는 해운대나 광안리 해수욕장 같은 것들도 가까이 있는 만리포나 정동진과 별다르지 않았다.
한 마디로, 부산이 부산이어서 택한 것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대체 우리가 부산을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야, 이왕에 여행을 갈 거면 부산 정도는 돼야지!”
그렇다. 내가 별 생각 없이 던진 이 말 한 마디에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우리가 원한 것은 여행다운 여행이었다. 부산에 가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두지 않았기 때문에 KTX가 아닌 완행열차를 택했다. 비둘기호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무궁화호 대신 비둘기호를 택했을 것이다. 우리들의 즐거운 여행은 서울역을 출발하며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다섯 시간 동안 조용히 명상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우리는 기차 안에서 여행 계획을 짜기로 했다. 우리들의 규칙은, 절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미리 조사하지 않는 것이었다. 여행의 모든 것들은 여행 중에 결정하기로 했다.
지난 네 시간 동안 우리는 휴대 전화로 관광지를 짜고, 수첩에 메모를 하고, 실제로 가보고 싶은 풍경의 사진들을 공유했다. 여행 계획을 짜는 동안 여행지와 가까워지고 있다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무계획이 계획이라는 우리들의 작전을 듣고 코웃음을 쳤던 수많은 주변 사람들에게 지금 우리들이 느끼는 설렘을 그대로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몰운대와 보수동 책방 골목, 동백섬, 영화의 거리, 범어사와 영도다리, 광안대교까지 우리는 가고 싶은 곳을 모조리 수첩에 적었다. 하루가 걸린다면 무박 여행이 될 것이고, 일주일이 걸린다면 일주일짜리 긴 여행이 될 것이다. 이 날을 위해 우리 네 명 모두 몇 달 동안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해 왔으니, 여비 걱정도 없었다.
‘이렇게 두근거리면서 도착하기를 기다려 본 건 난생 처음인 것 같다, 야.’
단체 채팅방에 올라온 한 마디를 읽고, 우리는 또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지났다. 다섯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으니, 여행의 시작은 성공적인 셈이었다. 부산역은 큼지막한 여행 가방을 메거나 캐리어를 끌고 있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여행자들의 도시. 나는 부산에게 붙여 줄 첫 번째 타이틀을 이것으로 정했다.
기차에서 떠들지 못했으니, 도착하자마자 남자 애들 답지 않게 수다가 만발했다. 친구 한 녀석이 입이 근질근질해 죽는 줄 알았다며 손나팔을 만들어 소리를 내질렀다.
“우리가 왔다!”
제 갈 길을 찾아 바삐 움직이던 여행자들이 뒤를 돌아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우리가 왔다. 작전명, 부산 정복. 우리는 발길 닿는 대로 부산을 헤맬 것이고, 우리가 본 모든 것들이 우리들만의 부산을 만들 것이다.
창밖에는 바닥이 하얗게 변할 만큼 꽤 큼지막한 눈발이 하얗게 나렸다.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은~”
또 저 노래다. 지겹지도 않냐고 물어보려다 가자마 눈을 하고 흘기는 것이 무서워 관둔다.
“그래, 창 밖에 봐봐, 당신이 요즘 그렇게 목청껏 불러 마다않는 겨울이야. 근데 원래 넌 여름이 더 좋다고 하지 않았어? 사람들도 활기차보이고 무엇보다 보기만 해도 뼛속까지 시린 얼음골 폭포 보는 거 좋아했잖아. 겨울은 너무 추워서 싫다며.”
“응, 여름도 좋아. 그런데 난 우리 아이는 겨울에 태어났으면 좋겠어.”
아내는 갑자기 태어나지도 아니 계획에도 없던 아이이야기를 꺼냈다. 아내는 당황한 내 표정을 본체만체하곤 아이 그리고 겨울이야기를 독백처럼 떠들어댔다.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좋지.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하니까.”
오늘은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만 떠들어 댄다고 핀잔을 주려다 꾹 참는다. 아내는 가끔 나로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그러니까 논리에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게 전형적인 이과남자라며 이과생이 문학과 정서를 이해할 수 있겠냐며 소설책을 읽고 있는 내 손이 민망해 질 정도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물론 오늘도 괜히 덤볐다가 본전도 못 찾을 것이 뻔했기에 잠자코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여름은 시원한 곳으로 찾아가니까 우리가 매년 얼음골로 피서를 가는 것처럼. 그리고 민소매도 마음껏 입을 수 있고. 그러니까 여름은 시원한 거고 겨울은 흰 눈이 온 세상을 감싸니까 왠지 따뜻해보여. 연말엔 기부도 많이 하니까. 안 그래?”
“듣고 보니 그러네.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겨울 겨울 그런다. 흰 눈이 그렇게 보고 싶었어?”
“아니. 아주 시원하고 달콤한 사과 때문에.”
사과? 네가 사과를 좋아했던가? 연애만 4년 그리고 결혼 2주년까지 총 6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네가 사과를 특별하게 좋아했다는 것을 몰랐다. 내가 무심했던 건가 생각해보지만 특별히 그렇지도 않았다.
“사과? 겨울하면 넌 사과가 생각난다고? 군밤이나 군고구마도 아니고?”
“그래. 사과! 아. 생각하니까 먹고 싶다.”
아내는 해맑은 표정으로 사과를 떠올렸다. 절로 군침이 도는 모양이었다. 아내는 특별히 과일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저 철이 되면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과일들 중 하나를 골라 집어 의무적으로 섭취하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사과? 먹고 싶으면 사다줄까? 이렇게 추운데. 눈이 펑펑 오는데?”
괜히 맘에도 없는 말을 던져본다. 그것도 암묵적으로 가기 싫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말이다. 설마 다녀오라고 할까.
“정말? 그래 주면 좋고. 아참, 그냥 사과 말고 꼭 얼음골 사과로!”
오랜만에 애교 섞인 목소리를 낸다. 싫은 티를 팍팍 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주면 좋다는 대답아 날아온 걸로 보아서는 어지간히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알겠어. 추우니까 요기 따뜻한 이불 속에서 조금만 기다려. 금방 다녀올게.”
오리털 점퍼를 꺼내 입고 집을 나섰다. 큼지막한 눈발이 내렸지만 앞이 안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호호 나오는 겨울이었다. 아내는 이 한겨울에 이름만 들어도 등골이 서늘한 얼음골 사과를 먹고 싶다고 하는지.
과일 가게 앞에서 서성일 필요도 없이 사과를 찾았다.
“어머, 색시가 아기를 가졌나 보네, 얼음골 사과를 찾는 거 보니. 아삭하고 달콤한 게 태기가 있을 땐 그런 게 땡기는 법이거든.”
“아기요? 에이. 아니에요.”
“그래? 난 또. 아무튼 야무진 놈들로만 골랐으니 얼른 가져다 줘요.”
아기라고? 에이 설마. 갑자기 걸음이 빨라졌다. 아내가 혹시 숨기고 있던 건가? 그래서 아까 아이 이야기를 꺼낸 건가? 머릿속이 흰 눈송이만큼 하얘졌다. 빠른 걸음으로 집 앞에 도착했다. 턱 끝까지 숨을 몰아쉬고는 문을 열었다.
“사과 사왔어! 아주 시원하고 아삭한 얼음골 사과”
아내는 이불 속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할머니는 점점 기력이 쇠해지면서 말수도 적어지셨다. 동네 경로당이라도 다시시면 좋으련만 며칠 나가시더니 그마저도 발길을 끊으셨다. 말이 경로당이었지 할머니보다 연배가 훨씬 적은 젊은 할머니들의 등쌀에 외부인 취급을 받으신 할머니는 그날로 줄곧 집안에만 계신다.
할머니는 건넌방도 거실도 아닌 베란다에 보금자리를 만드셨다. 구부정한 허리에 다리를 곧게 뻗으시고는 베란다 발코니에서 창밖을 내다볼 뿐이었다. 식사를 하거나 화장실에 용무를 보러 가시는 시간 이외에는 대부분 베란다에 계셨다. 베란다와 할머니는 위태로워 보였다. 그런 점에서 할머니에게 제법 어울리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화초라도 가꿔보는 것은 어떠냐고 했지만 금방 죽어버릴 걸 뭐 하러 사오냐며 그만 두라고 했다.
할머니는 줄곧 시골에서 사셨다. 꽃다운 나이에 시집온 그 동네에서 알콩달콩 살림을 꾸리며 십수 년의 세월을 보내셨다. 할머니 댁 앞마당에는 작은 개울가와 원두막이 있어 여름이면 꼭 할머니 댁에서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작은 개울가에서 발도 담그고 빨래도 하던 공간을 70여 년 만에 떠나 서울로 올라오신 거다. 얼마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가 우리 집으로 할머니를 모셔왔다. 할머니는 한사코 거절하였지만 혼자 시골에서 적적하실 뿐더러 몸도 편치 않으셔서 안 된다며 엄마의 고집이 할머니 고집을 꺾었다. 서울로 올라오신 할머니는 서울도 참 많이 변했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점점 더 위태로워지셨다. 엄마는 그런 할머니에게 산책이라도 다녀오시라고 했지만 말뿐이었다. 엄마도 할머니에게 최선을 다하고는 있었지만 그 무엇도 할머니의 무언가를 채워주지는 못했다. 베란다에 있는 시간도 더 길어지셨다.
“베란다에 도대체 뭐가 있길래 하루 종일 거기만 쳐다보고 있느냐고. 누가 보면 억지로 데려가 가둬두는 줄 알겠어. 우리 집 신고 당하면 다 엄마 때문인 줄 알아.”
“그냥 답답해서 그런 거니 신경 쓰지 말라 안하나.”
“답답하면 산책을 나가던가. 왜 집밖을 안 나가는데 같이 쇼핑가자고 해도 싫다고 하고 외식을 하러 나가자고해도 싫다 그러고. 노인네가 고집은 또 왜 이렇게 센지.”
엄마는 속상한 마음을 풀어놓았다. 그럴수록 할머니는 더욱 베란다 가까이에 붙었다. 나는 할머니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
할머니를 모시고 청계천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변해버린 서울이 두려워 집 밖을 나가기가 무서우셨던 거다. 늙어버린 당신과 함께한 고향을 두고 모든 것이 낯선 동네에서의 두려움은 할머니를 베란다로 내 몰았던 것이다. 그렇게 보금자리에서 위태로운 삶을 버텨가던 할머니는 결국 시골집의 작은 개울이 그리우신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병원 검진 때문에 집밖을 나오셔야 하는 날, 나는 진료를 받고 할머니를 청계천으로 모시고 갔다. 아이들은 발을 담그고 하하 호호 웃으며 놀고 있었고 청계천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할머니는 한참 동안 청계천을 바라보셨다.
막혀있던 물줄기가 시원하게 뻗어나가듯 청계천을 흐르는 물줄기가 제법 거셌다. 잘 꾸며놓은 조형물에 가까운 곳이었지만 할머니는 서울 한 가운데에서 시골 앞 개울가를 만난 듯 하셨다. 반가움에 두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할머니, 다리 안 아프셔요? 이제 그만 갈까?”“조금만 더 있다 가자꾸나. 조금만.”
“서울도 많이 바뀌었지요? 옛날에는 여기가 다 시멘트 바닥이었는데. 몰라보게 바뀌었어. 이렇게 꾸며놓으니 좋지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시골 개울가처럼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거나 멱을 감지는 않았지만 할머니 눈에는 검게 그을린 개구쟁이 아이들이 수업이 끝나고 미꾸라지를 잡는 모습으로 보이는 듯했다. 청계천 8경 중에서도 할머니는 5경에서 가장 오래 머물러 계셨다. 5경은 빨래터를 재연한 공간으로 아마 할머니의 집 앞 개울을 가장 많이 닮은 곳이기도 했다. 할머니의 눈시울이 조금은 붉어졌다. 그리고 마른 입술을 매만지셨다.
청계천에 다녀오신 후로 할머니는 기력을 조금씩 되찾으셨다. 베란다에 나가 계시는 시간도 줄고 간간히 산책도 다녀오셨다.
할머니의 시간은 앞으로도 흐를 것이고 청계천의 물도 이제는 마르지 않고 흐를 것이다. 언제나 언제나.
팟, 하는 소리와 함께 순간 하늘이 닫힌 것 같은 어둠이 짙게 깔렸다. 눈을 몇 번 깜박이니 차츰 약간의 빛이 새어 들어왔다. 정전인 것 같았다. 급히 휴대전화의 불빛을 비춰보니 우리 집만 전기가 나간 것이 아니라 아파트 전체의 문제인 듯 했다. 의도하지 않은 어둠은 사람을 멍하게 만들었다. 전화도,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미리 충전해두었던 휴대전화로 빛을 비추어 보거나 긴급통화를 할뿐, 그마저도 남은 배터리가 15%밖에 되지 않았다.
시간을 보니 아직 8시 40분밖에 되지 않았다. 전기가 언제쯤 공급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무인도에 갇혀 언제 구조될지 모르는 사람처럼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가벼운 외투를 집어 들고 집을 나서려는데 문자가 왔다.
“지금 우리 아파트 정전됐어. 요즘에도 가끔씩 정전이 되나봐. 심심해.”
오래전부터 알던 진환의 문자다. 듣자하니 진환이네 집도 정전이 되었나보다. 뉴스에서 전력공급 수요량에 대해 보도되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 때문인가 생각했다.
“우리 집도 지금 불 나갔어. 너네 동네랑 우리 동네랑 멀지 않아서 그런가? 심심한데 밖에서 잠깐 볼래? 맥주나 한 잔 하자.”
나도 나가려던 참이었다고 하고 우리 동네 앞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 녀석과 나는 원래부터 잘 알던 사이였으므로 어색할 것은 없었다. 가벼운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나가니 진환이 멀리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가만 보면 우리는 참 공통점이 많다.
“여! 왔어? 갑자기 무슨 정전이래.”
“그러게. 그것도 우리 동네랑 너네 동네랑 같이 정전이라니. 웃기다 크크”
“근데 순간적으로 불이 탁 나가니까 기분이 묘하더라. 내가 너무 불빛에 익숙해졌나 싶기도 하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보다.
“그래도 막상 2~3분 지나고 나니까 할 게 없어서 불편하던데? 너도 심심하다고 나온 거잖아.”
“그건 그래. 와. 저기 새로 지어진 아파트 되게 으리으리하다. 그치? 저기 공원은 여기랑은 딴 동네 같지 않냐? 친환경 생태도시라던가? 저거봐, 여기는 정전인데 저기 보이는 불빛 봐. 엄청 화려하다. 빨강에 파랑에.”
“부러워?”
“아니. 뭐 부럽다기보다. 그냥. 얼른 결혼해서 저런 좋은 집에 살면 좋겠다는 뭐 그런 생각?”
우리는 비슷한 시기의 각자의 연인과 헤어졌다. 그것도 결혼을 약속한 상대들과. 연인과 헤어진 이유는 각자 다르겠지만 시기가 비슷해서일까 우리는 서로에게 꽤나 큰 의지를 했었다. 인연은 따로 있을 거라면서. 진환은 당시 여자 친구와 결혼을 준비하면서 지금 보고 있는 아파트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런 곳에서 서로를 닮은 아이와 함께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해도 행복할 것 같다고 한 적이 있다.
진환의 얼굴빛은 불이 꺼진 방처럼 쓸쓸해졌다.
“가자. 뭘 그렇게 넋을 놓고 보고 있어.”
“곧 분수가 올라올 거야. 분수만 보고 가자.”
진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분수는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화려한 불빛을 받은 분수는 아름다웠다.
언제부터였는지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고 분수는 아름답게 솟아올랐다.
아주 잠깐이리라. 솟아오르고 금방 내려오는 분수처럼 혹은 다시 불이 켜지기까지의 정전의 시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