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이 좋은 주말 오후에도 체육관은 기합소리와 땀 냄새로 그득하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가슴에 태극마크 하나씩 달고 저마다의 목적을 위해 운동을 한다. 하나같이 종목들과 운동을 하는 이유는 다 다르지만 ‘국가대표’라는 직분은 같기에 오늘도 기합소리가 새어나온다. 그들은 힘이 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고 몸이 뒤틀리는 고통을 웃음으로 넘긴다. 4년의 기다림을 알기에 그들은 참고 또 참는다. 누군가는 메달이라는 상징물 혹은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큰 세계적 이슈로 보겠지만 그것은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도 나라의 미래일수도 또 다른 의미에서는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다 쓰러지겠어. 메달 따고 싶어 하는 맘은 나도 알겠는데 그래도 컨디션 조절이 제일 중요하다는 거 몰라?”
“나 메달 따려고 이러는 거 아니야.”
“메달 따려고 그러는 것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몸을 힘들게 해. 좀 쉬었다 하자.”
한준은 몸에 땀이 비 오듯 흘러 운동복이 흠뻑 젖었다. 파트너 희진의 만류에 겨우 기구를 내려놓았다.
미지근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한준에게 희진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 때문에 그렇지?”
“무슨 소리야 그게.”
“한준이 너, 어머니 찾겠다고 그러는 거잖아. 메달 따서 당당하게 찾아뵈려고. 아니야?”
한준의 부모님은 한준이 12살이 되던 해에 각자의 삶을 살기로 하였고 한준은 아버지를 따라가야 했다. 그 이후로 한준은 어머니를 자주 볼 수 없었다. 20살이 되던 해에 국가대표로 선발되면서 태릉선수촌에 들어왔다. 그 이후로는 어머니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 한준은 메달을 따고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었을 때 당당한 모습으로 어머니를 만나러 가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주말이나 휴일에도 오로지 운동만 했다. 나라를 위해서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어머니 하나만을 위한 피땀 어린 노력이었다.
“배고프지 않아? 오늘은 주말이고 사람도 별로 없으니까 우리 나가서 먹자. 외식하자 외식.”
생각 없다는 한준을 억지로 끌고 나왔다. 체육관을 벗어나기만 했을 뿐인데 왠지 공기마저 다르게 느껴졌다.
바깥바람을 만끽하며 걷는 희진과 달리 바닥만 보고 걷던 한준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 바로 앞에는 낡은 구두가 있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아주머니 한분이 눈물이 그렁한 채로 한준 앞에 서있었다. 서로 말을 주고받지 않았지만 한준의 어머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한준아.”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돌아가세요.”
“저기, 한준아. 밥. 밥은 먹었니? 안 먹었으면 점심만 같이 먹고 가면 안 될까?”
둘의 관계를 알아차린 희진이 순발력을 발휘해야 했던 순간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한준이 파트너 김희진이라고 합니다. 한준이 어머님이시죠?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헤헤. 아, 마침 저희도 점심 먹으러 나가려던 참인데 제가 오늘 운동스케쥴이 있었던 걸 깜빡했지 뭐에요? 그래서 그런데 두 분 이서 식사 하고 오시면 될 것 같은데…….”
“아. 그래요? 우리 한준이 파트너 분이세요? 반가워요. 같이 식사하면 좋은데.”
“아, 아닙니다. 저는 다음에요. 한준아, 밥 맛있게 먹고 와. 나 먼저 들어간다!”
몇 년 만에 본 어머니의 얼굴은 몰라보게 야위어 있었다. 잘 살고 계시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주보니 더 늙고 초라해진 모습에 마음이 아픈 한준이었다.
“한준아. 엄마가 미안해.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운동하면 힘들 텐데. 뱃속 든든하게 채우고 운동해야지.”
“국수가 먹고 싶어요. 멸치국수.”
공릉동 국수거리에서도 한참을 들어온 곳에 몇 평 안 되는 작은 가게에 들어왔다. 가게가 8평 남짓한 공간이라 더욱 밀착해서 앉게 되었다. 멸치 국수 두 그릇에 김밥 한 줄을 시켰다.
“좀 더 근사하고 든든한 거 먹지, 국수는 배 금방 꺼지는데.”
“김밥하고 먹으면 괜찮아요. 그리고...”
한참을 머뭇거리던 한준은 뒷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언제 한 번 어머니랑 여기 와보고 싶었어요. 여기 국수가 옛날에 어머니가 해주던 거랑 비슷한 맛이 나서 가끔 혼자 와서 먹고 가고 그랬거든요.”
어머니의 눈물이 국수그릇으로 똑 떨어졌다. 그동안 혼자 이곳을 찾아왔을 한준이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듯했다.
한준은 이제 경기 전까지 운동에 전념한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경기 끝나면 엄마가 직접 끓여주는 국수 맛보러 가겠다는 말을 용기 내어 꺼냈다. 어머니를 정류장까지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한준의 귓가에는 후루룩 소리가 맴돌았다.
문득 끝이 어디인지 궁금해졌다. 너와 나의 끝. 그리고 이 기나긴 싸움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말이다. 일기예보에서는 분명 별똥별이 떨어진다고 했는데 오늘도 예보는 어긋났다. 남자가 별똥별을 기다린 탓일 수도 있다. 남자가 하늘을 바라보지 않았다면 아니 하늘을 보고 별똥별을 기다리지만 않았어도 그날 떨어지기로 한 별똥별은 떨어지며 많은 이들에게 환희의 순간을 선물하였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소원을 이루어지게 하였을 수도 있다. 남자는 언젠가부터 자신이 무언가를 바라고 기대하면 얄궂게 빗나가곤 했다. 그것이 우연의 일치라고하기엔 야속하리만큼 지속적인 반복이었다.
“오늘도 꽝이네.”
남자는 복권에 당첨되지 않은 사람처럼 아쉬워했다. 기대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심 기대가 되는 모양이었다. 남자는 덩그러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왠지 검지도 푸르지도 않았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고 남자는 입고 있던 재킷의 옷깃을 여미었다.
남자의 도전은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몇 년째 사실상 백수로 지내고 있는 것도 남자에게도 남자의 가족에게도 가시방석과 같은 나날이었다. 남들이 말하는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남자의 취업은 쉽지 않았다. 남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잠을 자거나 책을 읽을 때 남자는 항상 영어단어를 외우거나 제2외국어인 중국어 테이프를 들었다. 일 년 그리고 이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남자는 깊은 산 속 절에 들어가 공부를 해볼까 생각도 했었다. 항상 2차 면접까지는 무난히 통과했으나 결국엔 떨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남자도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는 듯했다. 남자는 문득 떠나고 싶어졌다. 어디로든. 항상 중국어가 나오던 MP3에 잔잔한 발라드로 감성을 채웠다.
남자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끝이 어딘지 잘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그곳은 홀로 걷기 좋은 곳이었다. 숨을 가슴 가득 품어보았다. 가슴이 부푼 모습이 얼마만인가 싶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자의 어깨는 좁아졌고 초라해졌다. '후'하고 숨을 내쉬었다. 가슴가득 품고 있던 공기가 일순간 밖으로 품어져 나오니 가슴이 후련했다. 사람이 북적이지 않아 더욱 깨끗한 공기가 남자의 양 볼을 스쳤다. 쉬엄쉬엄 뚜벅뚜벅 걸어갔다. 날이 저물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이 없었고 다음날 있을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도 없었다. 그저 끝이 보일 때까지 걸어가야 하는 것. 그것이 지금 남자가 치러야할 시험이자 강박이었다. 그것쯤은 별것 아니었기에 남자는 더욱 느릿한 걸음으로 걸어 나갔다. 한참을 걷다보니 멀찌감치 관호산성이 보였다. 늠름하고 호젓한 자태가 남자와는 다르게 당당해보였다.
치열함이 감돌던 곳. 남자도 항상 치열하게 살아왔기에 이곳의 고요함에서 소리 없는 갈등이 느껴졌다. 두려움에 떠는 많은 사람들의 비명과 그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한 함성이 뒤섞였을 이곳.
남자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자신이 걸어온 치열했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누군가는 성과 없이 치열하게 살아온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남자는 후회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다시금 어깨를 펴보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다음날을 걱정했다. 다음날을 걱정하고 나면 그 다음날이 걱정이었다. 남자에게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늘 걱정의 반복이었다. 그런 남자가 여유를 찾은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날이 흐려져도 어두워져도 걱정하지 않았다.
발로 흙을 비벼보았다. 이렇게 흙길로 난 길은 누가 만든 것인지 궁금해졌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길을 걸어가는 것 길 자체가 표지판인 셈이었다.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면 다른 길로 빠질 염려가 없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조금 늦어지면 어떤가, 도착할 곳이 남들과 조금 다른 곳이면 또 어떤가.
남자는 다시 한 번 가슴에 숨을 가득 머금었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숨을 내뱉었다. 하늘은 맑았다. 해가 지고 난 자리에 스며든 어둠은 따뜻했다. 여전히 검지도 푸르지도 않은 빛이었지만 오늘이라면 별똥별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별똥별은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의 눈으로 수많은 별들이 쏟아져 내렸다.
남자는 여기가 이 길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난 흙길이 조금 남아있지만 남자에게 이 길의 끝은 이곳이었다. 이제 돌아갈 일만 남았다.
남자의 발걸음은 이전보다 조금 더 가벼웠다.
도시의 거리는 잠들지 않는다. 소란스러움이 당연시되는 이 거리의 밤은 더욱 찬란해진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건네는 자와 받는 자들은 거리의 소음을 즐기며 흘러가는 밤을 만끽하곤 한다. 신도시 건설이다 관광지 개발이다 말이 많은 송탄의 밤은 더욱 뜨거웠다. 거리 한복판에서 현주는 홍콩의 밤거리를 떠올렸다. 단 한 번도 홍콩을 다녀오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어쩐지 송탄의 거리는 홍콩의 밤거리를 떠올리게 했다.
띠링, 여동생 진주의 문자다. 언니, 올 때 닭강정 하나만 사다줘. 진주는 현주가 송탄쇼핑타운 근처에 가있을 때면 귀신같이 문자를 보냈다. 언제 한 번 쇼핑 겸 엄마심부름으로 중앙시장에 같이 나왔을 때 닭강정 한 번 맛보더니 때만 되면 그렇게 문자를 보낸다.
미군부대가 근처에 있어서 일까 다양한 언어가 섞이며 화장품이면 화장품, 옷가게면 옷가게가 줄지어 늘어서 있고 밤이면 먹거리 포장마차들이 저마다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를 풍긴다. 현주는 잠시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진주의 부탁대로 닭강정을 파는 작은 핑크색 포장마차로 갔다.
“어머, 또 왔어요? 오늘은 어떻게 줄까?”
“한 박스만 포장해주세요.”
“이거 조금만 먹으면서 기다려요. 금방 해줄게.”
아주머니는 친절했다. 기다리는 사람을 배려하는 얼굴과 말씨로 시식용 그릇에 닭강정 한 조각을 잘라주었다. 닭강정 하나를 조각내어 먹고 있는데 아주머니께서 말씀을 걸어왔다.
“우리 딸이 딱 아가씨만 한 나이인데. 매번 이렇게 찾아줘서 고맙고 반갑네. 우리 딸은 여기도 좋구만 꼭 그렇게 서울로 올라가서 놀더라고.”
“아무래도 서울이 더 볼 게 많고 살 것도 많으니까요.”
“그런가? 우리 딸이 자주 가는 데가 명동이랑 이태원이라는데 난 여기가 거기 하나 안 부러운 것 같은데 젊은 사람들 눈엔 또 다르고 그런가봐.”
“그렇죠 뭐. 사람도 많고…….”
나는 말끝을 흐렸다. 딱히 사람이 많은 것 말고는 특별히 그 두 곳보다 더 떨어지는 부분을 찾지 못해서였다. 물론 서울의 동대문이나 명동, 이태원이 트렌드의 중심으로 화려함과 번잡함이 물 흐르듯 흐르고 있을 테지만 어쩐지 나도 아주머니의 딸처럼 송탄관광특구에 대한 자부심은 특별하게 없었다. 그 옛날 관광특구로 선정될 때 크게 열린 행사에 관심을 가진 것 외에는 쇼핑을 위해 혹은 밤거리를 즐기기 위해 거리로 나온 적이 없었다.
닭강정 한 박스를 받아들고 좀 걷기로 했다. 낯선 글씨의 간판, 꼭 한번 먹어보겠다고 벼르고 별렀지만 아직 먹어보지 못한 미스리 햄버거, 촌스러운 듯하지만 나름대로 개성 있는 옷가게들 어쩐지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이 들었다. 집에서 불과 몇 분 거리에 나와 있음에도 이곳이 명동인지 이태원인지 아니면 홍콩의 거리 한복판인지 모를 정도였다.
여기저기에선 군복을 입은 미군들이 지나다녔다. 옛날 같았으면 괜스레 무서운 마음이 들어 옆으로 살짝 비켜 지나갔겠지만 오늘은 어쩐지 무섭다는 생각보다 훨씬 이 거리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닭강정을 팔던 아주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명동이랑 이태원 하나 안 부러운 것 같은데 거기나 여기나 외국인들 많고 예쁜 옷 많이 팔고 먹을 것도 많다고.’
얼마나 걸었는지 중앙시장 끝까지 와버렸다. 띠링, 동생의 문자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될 것을 그새를 못 참고 또 문자를 보냈나 하고 시계를 보니 벌써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나있었다. 닭강정은 차갑게 식어있을테고 동생은 투정을 부릴 것이다. 나는 동생에게 답장을 보냈다. 아주 멀리서 사가느라 늦었다고, 언젠가 너도 데리고 와 주겠다고. 지금 바로 간다고.
도시의 거리는 잠들지 않았다. 소란스러움이 당연시되는 이 거리의 밤은 흐트러져 보이나 정돈되어 있었다. 거리 한복판에서 현주는 홍콩의 밤거리를 떠올렸다. 단 한 번도 홍콩을 다녀오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어쩐지 송탄의 거리는 홍콩의 밤거리를 떠올리게 했다.
남자의 걸음에 여자는 자꾸만 뒤쳐진다. 벌써 몇 번이나 천천히 걷자고 했으나 남자의 걸음은 자꾸만 빨라진다. 여자는 헤어짐이 아쉬워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느리게 걷고 있는데 남자는 여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꾸만 재촉이다. 하지만 남자의 속마음은 헤어짐이 아쉬워 좀 더 많은 곳에서 여자와의 추억을 남기고 싶은 것이었다. 이렇게 서로의 속마음이 어긋난 채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얼마나 남았지?”
여자는 남자에게 시간을 물어보았고 남자는 자동적으로 자신의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지만 언제인지 남자의 시계가 멈춰있었다.
“시계 약이 다 달았나보다. 이 근처 시계가 있을 텐데.”
남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멀리서 은은한 노랫소리가 울렸다. 여자와 남자의 시선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했다.
“여기 이런 것이 생겼어? 못 보던 새에 여기도 많이 변했네.”
“그러게. 다른 나라에 와 있는 것 같아.”
남자와 여자는 어느새 아찔한 높이의 시계탑 앞에 도착해있었다. 때마침 카리용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선율이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여자의 긴 생머리가 바람에 따라 살며시 흔들렸고 여자의 머리카락이 흔들릴 때마다 좋은 향기가 났다. 남자는 문득 이 향기가 그리울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시계의 분침이 12를 가리킬 때 남자는 떠나야했다. 둘은 헤어짐을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이미 수차례 생각하고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잠시 동안만 떨어져 지내는 것일 뿐 영영 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여자는 몸이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것이 아니겠냐고 답했다. 누구의 의견이 맞는지는 여자도 남자도 몰랐다.
“2년이야. 군대 갔다 생각하고 봐주면 안돼?”
“2년 후면 나 서른다섯이야. 군대 간 남친 기다리는 거 20대도 아니고 못해 난,”
“나 곧 가. 정말 이대로 헤어질 거야? 우리 아직 사랑하잖아.”
“그래. 아직 사랑한다면서 왜 가려는 거야? 그만하자 벌써 이 얘기만 며 칠 째야. 가. 잘 가고 행복했으면 좋겠어. 시간 없잖아.”
여자가 돌아서려는데 카리용의 노래가 절묘하게 멈췄다. 뒤돌아서려는 여자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여자는 남자를 쿨하게 보내주기로 하였기에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그 때 남자가 여자의 팔목을 잡았다.
여자는 팔에 힘을 뺐고 남자는 그대로 돌아섰다.
그렇게 계절이 두 번 바뀌고 각자의 삶속에서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남자는 기계에 몰두하여 밤낮없이 일을 했고 가끔씩 여자를 떠올렸다. 여자를 떠올리는 이유가 단순히 고향을 떠나온 외로움일 것이라 여겼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라며.
여자도 나름대로의 생활에 바빴다. 주변에서는 얼른 다른 남자를 만나보라고 재촉도 하고 권유도 했지만 여자는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남자를 무작정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직 준비가 안 된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남자가 파리의 시계탑 앞에 서있다. 시간은 12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었고 여자도 우연히 혜천타워 앞에 서있다. 시계를 보고 있었다. 그날 남자가 손을 잡았을 때를 떠올렸다. 남자가 그리웠으나 별 도리가 없었다.
둘은 그렇게 한참을 그 앞에 서있었다. 그때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남자의 손에는 인천행 비행기티켓이 들려있었다.
자영업을 하기 때문에 평소 쉽게 가게 문을 닫을 수 없었던 남자. 그래서 주기적으로 떠나는 휴가도 한번 제대로 떠나본 일이 없다. 그렇게 쉼 없이 달려온 3년이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사업이었기 때문에 남자는 지난 3년간 아내와 아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이게 다 처자식을 위해 뼈 빠지게 버는 돈이라고 생각해왔으니까 미안하긴 했어도 조금은 당당했다. 그런 남편을 아내도 적잖이 이해해주는 눈치였다.
생전 가게로 전화를 안 하는 아내인데 웬일인지 가게로 다 전화를 했다. 아내의 말이 빨랐고 약간은 울먹였다.
“전화가 왔었어요. 방금. 민준이 담임선생님한테.”
“담임선생님한테? 왜? 민준이 뭐 사고친거야?”
“아, 아니. 학교에서 청소년 우울증 상담검사 같은 걸 받았는데. 결과가….”
평소 전화는커녕 부모님 모시고 오라는 소리 한번 듣지 않았던 터라 심장이 덜컹했다. 차라리 친구와 싸우거나 숙제를 안 해왔다는 전화였으면 좋았을 걸. 담임선생님의 전화는 뜻밖에도 아이가 학교에서 받은 청소년 우울증에서 우울증 수치가 높게 나왔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좀 더 자세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는 전화였다.
우울증. 학교 다니는 것이 그렇게 힘이 들었나? 아니면 학교에서 친구들과 관계가 좋지 않나? 그런 것도 아니다. 아내의 말대로라면 담임선생님께선 아이들과의 문제는 없어 보인다고 했으니까.
누구를 위한 3년의 시간이었나 생각한다. 남자는 가장으로서 나름대로 열심히 하였는데 아이는 아빠의 빈자리를 조금씩 넓혀가고 있었나보다.
모처럼 가게 문을 닫고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월성계곡으로 떠났다. 병원을 가보기 전 일단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담임선생님의 소견이었다. 아이는 즐거워보였다.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아니 아내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아이에게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감정 상태는 어떤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방송을 타서인지 계곡에는 때 늦은 피서객이 몰려들었다. 아빠와 즐겁게 물놀이를 하는 아이도 보였고 튜브를 타고 물살을 즐기는 아이들도 보였다. 멀리서 고기 굽는 냄새와 옥수수를 먹는 아이들이 보이며 한가롭기 그지없었다. 내 아이의 머릿속도 아니 마음속도 한가롭다고 느껴지면 좋을 텐데 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물은 시리도록 맑았고 푸른빛이 맴도는 풍경은 봄의 화사함만큼이나 밝았다. 저마다 하하 호호 웃는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방갈로 마다 퍼져나갔다.
하루를 아이와 꼬박 즐겁게 놀아본 것이 얼마만인지 남자의 머릿속은 금세 까마득해졌다. 내심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는 해맑게 방갈로를 뛰어다녔고 여느 때와 같이 즐거워보였다. 은근슬쩍 학교에서의 생활을 물어보기 좋은 시간이었다.
“학교 다니는 것이 힘들어? 친구들과 사이는 어때? 공부하는 것이 지치니?”
“아빠, 그렇게 한꺼번에 많이 물어보면 어떻게 해요.”
“그래도 빨리 대답해봐. 응?”
“음. 아빠! 우리 다음에는 또 어디가요?”
옛날 옛적에 청도에는 아주 힘이 센 소 두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소들은 항상 서로의 힘을 자랑하려고 다투기 일쑤였죠. 소의 뿔이 맞닿을 때마다 하늘과 땅이 흔들렸습니다. 청도에 사는 동물들과 식물들은 늘 고민이 많았습니다. 다투는 두 마리 소 때문에 하늘과 땅이 흔들리니 식물들은 땅에 뿌리 내릴 수 없었고, 동물들은 제대로 잠을 청할 수 없었습니다. 금세 풀들은 시들어 버리고 동물들은 서로를 힐난하고 다투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도 소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힘이 비등하기 때문에 그들의 싸움은 끝이 나지 않았어요. 뿔을 더욱 곤두세워지고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힘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하늘과 땅은 날이 갈수록 거세게 흔들렸죠.
결국 참다못해 적중산 중턱에 사는 지혜로운 감나무가 나섰습니다. 천년을 살았다는 이 나무는 청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버팀목이었습니다. 아무리 힘이 센 황소들이라지만 감나무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죠. 감나무는 소들을 적중산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러고는 너희들 중에 저 하늘의 별을 떨어뜨린다면 자신이 아끼는 감 하나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대신에 별을 떨어뜨리기 전에는 둘이서 싸우면 안 된다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소들은 입맛을 다셨습니다. 감나무가 품은 감을 먹으면 힘이 더욱 세어지고 온몸에서는 아름다운 색동빛을 뿜게 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죠. 또한 청도 감나무의 감은 반시라고 불리며, 그 육질이 굉장히 연하고 너무나 달콤해 한번 맛보면 그 맛을 잊을 수 없었거든요.
그때부터 두 마리의 소는 서로가 아닌 하늘의 별을 떨어뜨리기 위해 열심히 하늘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떨어뜨리려고 해도 별들에게 그들의 뿔이 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처음으로 다투지 않고 머리를 맞댄 채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답답했던 황소 한 마리가 산을 향해 뿔을 내다박았습니다. 그러자 뿔이 조금 부스러지더니 반짝이는 빛으로 흩어졌습니다. 밤에 흩날리는 빛은 마치 별들처럼 보였습니다. 어리석은 소는 그게 별인줄 알았습니다. 소는 감나무에게 찾아가서 자신이 만든 빛을 보여줬습니다. 그러자 감나무는 감을 하나 주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산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그들의 뿔은 조금씩 닳기 시작했고, 그들의 눈에는 그것이 별로 보였습니다. 별을 가져올 때마다 감나무는 감을 하나씩 주었습니다. 소들은 자신들의 뿔이 부스러지고 있다는 걸 조금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저 별을 만들어 달콤한 반시를 먹어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습니다. 황소들의 뿔이 점점 닳자 하늘과 땅을 흔드는 소리도 점점 작아졌습니다. 그리고 적중산에는 커다란 구멍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적중산 중턱에는 아주 커다란 구멍이 뚫려버렸습니다. 그러자 소들은 서로의 뿔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그들의 뿔은 점점 더 빨리 닳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날렵하게 크던 뿔은 아주 작아 흔적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소들이 아무리 세게 부딪혀도 하늘과 땅이 울리지 않았어요. 청도는 평화로워졌습니다. 하지만 소들은 멈추지 않고 별을 만들기 위해 서로의 뿔을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소들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지금도 소들은 별을 만들기 위해 서로의 뿔을 맞대고 있답니다. 사람들은 소들이 만들던 별들을 기리기 위해 빛 축제를 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 그것 좀 내려놓을 수 없어요?”
한 달 전, 오랜 직장 생활을 마치고 쉬게 되신 아버지는 저녁을 먹자마자 또 통기타를 잡으셨다. 퇴직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얼큰하게 취하셔서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의 등에 난데없이 업혀 있던 바로 그 기타다.
“기억 안 나? 내가 왕년엔 기타로 아주 날렸잖어, 민정이 엄마!”
“그건 왕년 얘기고!”
어머니의 반격에 나는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 말 그대로였다. 예전엔 아주 잘 치셨다지만,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기타를 연주한 적이 없는 아버지의 솜씨는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오랜만에 기타를 잡았다는 사실이 마냥 좋으신 모양이었다. 내게 부탁하셔서 MP3에 가곡들을 잔뜩 다운로드 받으신 것은 물론이고, 7080 콘서트 프로그램 시간을 미리 적어두었다가 꼬박꼬박 챙겨보시기도 하셨다.
“어휴, 얘. 난 네 아빠 기타 소리 때문에 죽겠어, 아주.”
말씀은 항상 그렇게 하시지만, 나는 어머니는 아버지가 기타 치는 모습을 바라보시는 것을 은근히 좋아하신다. 젊은 시절의 어머니는 대학 캠퍼스의 잔디밭에서 기타를 치고 계시던 아버지의 모습에 반했다고 하셨다. 옛날 드라마나 소설 등에서 상징처럼 등장하는 바로 그 모습, 바로 흰 티에 청바지를 입고 장발을 한 채로 잔디밭에서 기타를 연주하던 모습 말이다. 문학소녀였던 어머니는 소설처럼 아버지에게 첫 눈에 반했고, 매일 먼 발치에서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존재를 눈치 챈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거셨다고 했다.
“왜, 낭만적이고 좋은데.”
“다 늙어가지고 낭만은 무슨. 예전처럼 잘 치는 것도 아니고 하루 종일 저걸 듣고 있자니 고역이다, 야. 저 양반, 내일이 결혼기념일이라는 것도 까먹은 건 아닌지 몰라.”
어머니의 말에 나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독립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맞는 부모님의 기념일인 만큼, 올해는 꼭 내 손으로 챙겨드리고자 다짐했던 일이 떠오른 것이다.
“여보, 민정이 엄마. 이리 좀 와 봐. 티비에 지금 누군 나오는지 알아?”
나는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이었지만, 어머니에게도 익숙한 이름인 듯 어머니가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가셨다. 서로 어깨를 기대고 앉아 노래를 따라 부르시는 모습이 정겨워 한참을 바라보고 있다가 나는 무릎을 탁 쳤다.
“대체 어딜 가는 거냐?”
“가 보시면 다 알아요.”
저녁 식사 때 자르실 요량으로 아버지께서 사 오신 케이크를 그대로 조수석에 싣고, 나는 부모님을 모시고 미사리로 향했다. 서울 근교에 라이브 카페촌이 있다는 말을 들은 것이 기억 나 어제 부랴부랴 검색을 해 보았더니, 꽤나 유명한 곳인데다가 생각보다 가까웠다.
서두른다는 것이 예약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버렸기에, 조정 경기장에 차를 세웠다. 운이 좋으면 모터보트 경기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데, 오늘은 시간이 맞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잔디밭과 꽃나무로 꾸며진 경정공원과 산책로, 솟대가 데이트코스로는 아주 그만이었다.
나는 아버지 몰래 어머니에게 예약된 카페의 전화번호와 약도를 건네 드렸다. 어머니는 초대 가수의 이름을 듣고는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셨다.
“네 아버지 알면 아마 여기서 춤을 추실 거다.”
“그럼, 방해꾼은 이만 빠질게요. 한 삼십 분 있다가 이 길 따라서 쭉 걸어가시면 돼요.”
공연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카페 앞으로 두 분을 모시러 갈 것을 약속한 나는 혼자 자전거를 빌렸다. 공도교까지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를 따라 갔다 오면 얼추 시간이 맞을 것 같았다. 한강변을 따라 자전거로 달리는 동안 종종 팔짱을 꼭 끼고 걷는 어르신들이 보였다. 아버지가 즐겨 부르시는 노래 가사처럼, 추억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이스크림, 초콜릿, 딸기우유……. 아이는 할아버지 댁에만 가면 기다렸다는 듯 할아버지 손을 잡고 슈퍼로 향한다. 평소에는 군것질거리를 사 먹이지 않으니 이때다 싶은 것이다. 슈퍼에 도착하여 고른 것들은 온통 단것들이다. 당당한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와서는 의기양양하게 과자들을 품에 쏙 넣는다. 내가 빼앗으려고 하면 할아버지 품으로 쏙 숨는다.
“아빠도 참, 애가 떼를 써도 이렇게 단거 막 먹이면 안 된다니까.”
“자주 먹이지도 않는데 뭘 그러냐. 그리고 애들 때는 다 이런 거 먹고 싶은 거야. 그리고 꼬맹이가 이렇게 매달리는데 할애비가 되가지고 어떻게 모른 척하냐?”
“그걸 노린 거라니까. 아빠, 요즘 애들 다 유기농이다 몸에 좋은 것들만 먹이는 거 몰라요? 이렇게 슈퍼에서 파는 거 입맛 들면 못쓴다니까. 과자도 마약과 같은 거야. 먹다보면 계속 먹고 싶어진다니까.”
“유난은, 너도 다 이런 거 먹고 자랐어.”
“요즘 애들은 피부가 연약하고 아토피 그런 것도 잘 생긴단 말이야.”
“알겠다, 알겠어. 그럼 저기 곶감을 가져다 줘야겠구나.”
아이가 귀여운 얼굴을 하고 애교를 떨면 어찌 안 넘어가고 배기겠는가. 자식보다 손주새끼들이 더 끔찍하게 예쁘다는데.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주가 사달라고 하는 걸 딱 잘라 거절하기 어려우셨을 것이다. 더군다나 늦게 결혼한 딸내미가 노산으로 힘겹게 얻은 자식이니 친정 부모로서 말은 안 해도 애를 많이 태우신 모양이다. 그래서 아이를 만지면 닳을까 애지중지 하신다. 구부정한 허리는 이제 다시 반듯해지기를 포기한 화석처럼 굳어져 있고 지팡이 없이는 오래 걸으시지도 못하지만 아이와 함께라면 힘든 줄도 모르신다고 한다. 요즘말로 손주바보가 따로 없다.
아이를 불러 곶감을 내미니 아이는 냄새부터 킁킁 맡아본다. 감을 말린 것 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먹는 건지 아닌지 확인부터 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맛있다고 먹어보라고 해도 뒷걸음질을 칠뿐이다. 그러자 좋은 묘책이 생겨났다는 듯 아이를 무르팍에 눕히더니 재미있는 곶감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아이는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말에 냉큼 할아버지 무릎에 누웠다.
“옛날 옛날에 호랑이 한마리가 먹이를 구하려고 마을 어귀까지 어슬렁어슬렁 내려왔단다. 그런데 어느 집안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크게 들리는 게야. 그래서 아기 엄마가 아기에기 "귀신 온다." 그랬지, 그랬는데도 아기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어. 그래서 이번에는 "호랑이 온다."그랬지. 그랬는데도 아기는 더욱 크게 우는 것이었지.
그래서 이번에는 "곶감 줄까?" 그랬더니 아기가 울음을 딱 그쳤다는 거야. 그것을 들은 호랑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호랑이인 줄 알았는데 자기보다 더 무서운 것이 곶감이로구나 생각했지. 그 뒤로 곶감소리만 들리면 뒤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쳤다는 구나.“
우와. 하고 탄성을 지르더니 아이는 이내 할아버지 손에 들린 곶감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아이들은 역시 단순하구나 생각하면서도 아이의 순수함에 웃음이 났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곶감이 자기 앞에 있다고 신기하다며 한입 베어 문다.
생각보다 단맛이 돌아서인지 아이는 과자를 내려놓고 곶감을 찾았다. 곶감이야기 때문인지 아이는 그날이후로 곶감할아버지네 가자고 한다. 그러면서 할아버지 손을 잡고 슈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말려놓은 곶감을 가지고 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성화다. 혹 떼려다 혹 붙였다며 껄껄껄 웃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엷은 미소가 지어졌다.
“곶감 하나 줄까?”
“웅 할아버지, 재미있는 이야기도!”
“자. 그럼 시작해볼까? 옛날 옛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