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들다.
나는 너에게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언제나 너는 붉은색 입술을 오물거렸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듯이. 하지만 너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하얀 얼굴이 금세 붉게 물들곤 했다. 내가 기억하는 너는 그렇다. 너는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미일까.
나는 너에게 고백을 했지만 너는 말없이 싱긋 웃기만 했다. 좋다는 것인지 아니라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다시 묻지는 않았다. 네가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3년 전일 것이다.
“매화가 아직 피어있을까? 피어 있어야 할 텐데.”
“글쎄. 피어있겠지. 설마 지금 매화 보러 가자고 하는 건 아니지?”
“왜? 지금은 안 돼?”
“피곤해. 내일 프레젠테이션 준비도 해야 하고.”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오랜 침묵은 그동안의 관계에도 곰팡이처럼 번져나가 관계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나는 그깟 매화는 내년에도 후년에도 언제든지 보러 가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너는 그런 나를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오늘 피는 꽃과 내일 피는 꽃이 같아?”
“피곤해. 하루 종일 회사에서 그놈의 말장난 받아주느라 힘들었단 말이야. 꽃 타령 그만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응?”
“꽃이 다 같은 꽃이라고? 그게 어떻게 같아? 그게 어떻게 같냐구. 아침과 저녁이 다르듯 어제와 오늘이 다른데 어떻게 꽃이 다 같아.”
우리의 관계가 위태롭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매화 하나로 너와 나의 연결고리가 끊어져 버릴 줄은 몰랐다. 붉은 매화가 질 무렵 너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떠난다고 했다.
그동안의 침묵 그리고 공백이 익숙해져있었기 때문일까 나는 상관없다고 생각했고 무심하게 알겠다고 했다. 어디로 언제 떠나냐는 질문조차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았다.
그녀가 떠난 뒤 처음 맞는 주말이었다. 그녀와 함께 살던 집도 아닌데 유난히 텅 비어보였다. 너와 마지막으로 다투던 날 너는 흰색 소파와 어울리는 연분홍 원피스를 입고 있었지. 너는 우리 집에 올 때면 항상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았어. 그리고는 흰색 꽃을 식탁에 정성스레 꽂아 두었지.
나는 네가 떠나고 나서 유난히 너의 빈자리를 느꼈다. 마치 함께 하던 공간에 반이 딱 잘려 나간 것 같은. 늘 혼자 있던 공간에서 너를 찾고 너에 대한 연결고리를 찾았다. 네가 자주 듣던 노래를 틀어놓고 네가 좋아하던 꽃을 식탁에 꽂아 놓은 적도 있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다.
“매화가 아직 피어있을까? 피어 있어야 할 텐데.”
추운 겨울이 봄으로 물드는 시간. 네가 떠난 후 삼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너에게선 아직도 연락이 없다. 그때 언제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면 이렇게 마냥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을까? 아니면 네가 매화를 보러 가자고 할 때 피곤하다는 말 말고 차키를 집어 들었다면 되었을까?
문득 네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아침과 저녁이 다르듯 어제와 오늘이 다른데 어떻게 꽃이 다 같냐고. 네가 뭘 아냐고 소리를 질렀지.
물들다.
지나고 보니 너는 나에게 물들어 있었다. 아무리 지워보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연하지만 진하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너의 기억만으로도 봄을 되찾을 수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80여 년 전, 영도에는 조선 팔도에 하나 뿐인 기상천외한 다리가 생겼다. 배가 지나갈 때마다 다리를 들어 올리는 구조의 도개교가 생겨난 것. 돛단배와 우마차가 다니던 시절에 배가 지나갈 수 있도록 다리가 열리니, 이 얼마나 커다란 구경거리인가! 영도다리 개통식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팔십 대 노인 한 분을 초빙하여 다리를 건너는 퍼포먼스를 벌였고, 전국 각지에서 이 다리를 보려는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영도다리 앞은 항상 구름 같은 사람이 몰린 진풍경이 펼쳐졌다고 한다.
그런데 일이 참 묘하게 되었다. 1950년, 전쟁이 터지자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이들이 천지였는데, 이들이 하나같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 것이다. 부산 땅까지 모두가 무사히 왔을 리가 만무한데도, 어미를 찾고 자식을 찾고 지아비를 찾는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40계단과 영도다리 사이를 오가며, 사람들은 탄성 대신 울음소리를 내질렀다. 다리가 열리든 말든 이제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영도다리 앞은 오래도록 북적였단다.
“어느으 세에워얼에에 너와아 내가아 마안나아…….”
“할아버지! 그 노래 좀 그만 불러요, 진짜!”
아버지가 또 어디서 막걸리 한 잔을 걸치고 오신 모양이었다. 이제 수험생이 된 딸아이는 제 할아버지가 술에 취했을 때마다 신경이 날카롭다. 앞서 영도다리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혹여 아버지가 어머니를 영영 만나지 못했을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있다면 큰 오산이다. 조금만 있으면 어머니가 방에서 나와 아버지에게 불호령을 내릴 것이다.
아버지는 40계단과 영도다리를 오가며 꼬박 세 달을 기다린 끝에 어머니를 만났다. 영영 못 만나는 줄 알았다며, 두 분은 영도다리 아래서 얼싸안고 엉엉 우셨다고 한다. 원래부터 공처가이셨던 아버지는 그 기적적인 재회 이후로 평생 어머니만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당신, 현정이 수능 못 보면 책임 질겨? 당장 그 노래 그치지 못하는가?”
그래서 어머니가 한 마디만 하시면 온 집안이 조용해진다. 한 번쯤 성을 내실 법도 한데, 아버지는 어머니의 얼굴만 봐도 행복하신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순한 강아지처럼 방으로 끌려 들어가신 뒤에 현정이가 한숨을 내 쉰다.
“아빠, 아빠도 엄마한테 저렇게 좀 잘 해 봐. 맨날 싸우지 좀 말고.”
내가 아내에게 나쁜 남편이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오산이다. 다만, 아버지만큼 잘 하기가 정말 힘들 뿐이다.
현정이가 아주 어렸을 때, 나와 크게 싸운 아내가 짐을 싸서 친정으로 돌아가 버린 일이 있었다. 잘잘못을 따지기 어려운 일이라 누가 먼저 사과를 하느냐가 문제인 자존심 싸움이 되어버렸는데, 그 때 아버지가 나를 집 앞 대폿집으로 끌고 가셨다.
“이 녀석아. 사랑은 아무나 하는 줄 알어? 내가 그 때 네 엄마를 못 만났으면 말야, 가정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겨. 내 인생의 낙이 죄다 사라질 뻔 한 겨!”
또 그놈의 사랑 타령. ‘아버지가 뭘 아신다고 그래요?’하고 대꾸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사랑에 있어서만은, 아무도 아버지를 이길 수 없었다.
아버지는 또 영도다리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전쟁이 나기 전에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고구마랑 김밥을 싸 가지고 영도다리를 구경하러 왔었는데, 그 때 어머니가 그렇게나 예뻐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틈만 나면 어머니를 데리고 영도다리에 왔다고 한다. 아버지는 전쟁 통에 어머니를 잃어버리셨는데, 어디서 만나자 약속을 하지 못해서 무작정 어머니가 좋아하던 영도다리에 오셨다. 다른 먹을거리는 다 마다하고 기도하는 기분으로 고구마랑 김밥만 먹으며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날 거짓말처럼 이쁜 아낙네 하나가 고구마랑 김밥을 먹으며 영도다리를 올려다보고 있더란다.
“그게 바로 운명이라는 거여. 너랑 며늘아가 사이에도 영도다리 같은 게 꼭 하나 있을 것인디, 그걸 모르니까 싸우고 그러는 거 아니여.”
그랬다. 어느 세월 속에서, 나와 아내가 만나 점을 하나 찍기까지 영도다리 하나가 없었을 리가 있는가. 나는 연애하던 시절의 앨범들을 죄다 펼쳐보고는 우리만의 영도다리를 찾아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팔십이 넘은 노인네들이 결혼기념일을 맞아 여행을 보내 달라고 성화셨다. 나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던 것처럼 ‘그럼 영도다리는 어떠세요?’하고 묻고, 아버지는 ‘영도다리? 이번엔 거길 한 번 가 볼까?’ 하신다. ‘임자, 올해는 영도다리에 가 보래.’ 하시며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가시자, 현정이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맨날 똑같은 데 가면서 왜들 저러시는 거야?”
“녀석아, 사랑은 아무나 하는 줄 알아?”
어이없어 하는 현정이를 두고, 나는 즐겁게 차편을 예매했다. 올해에는 오십여 년 만에 영도다리가 열린다고 했다.
옛날 어느 마을에 아픈 딸을 위해 명약을 구하러 다니던 남자가 살았습니다. 마을에 소문난 의원들을 찾아 다녔지만 아무도 딸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원이 없었지요. 그렇게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몸에 좋다는 만병통치약을 구하러 다니던 남자는 온몸에 힘이 빠져 금세라도 주저앉고 싶었지만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딸아이의 걱정에 다시금 발걸음을 재촉하였습니다. 걷고 또 걸어 힘이 빠진 남자는 목이라도 축이려고 한 주막을 들렀습니다. 그런데 그 때 범상치 않은 행색을 한 사내가 홀로 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남자는 말이나 붙여볼 요량으로 옆에 다가가 앉았습니다. 그러자 사내는 남자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습니다.
“딸아이가 병을 앓은 지 꼬박 두 달이 넘었구먼.”
“아, 아니. 그것을 어찌 알았습니까요?”
사내는 여전히 남자를 쳐다보지도 않고 남자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흐음. 명약을 찾고 있나본데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없다네. 허나 병을 낫게 할 방도는 있지.”
딸아이의 병을 낫게 할 방도가 있다는 사내의 말에 토끼눈이 된 남자는 사내를 재촉하며 물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으나 딸아이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명약이 없다 들었습니다.”
“가평으로 가보시게. 그곳에 최고로 높이 자란 잣나무에서 잣을 따다 죽을 쑤어 먹여보게. 그럼 병이 씻은 듯이 날걸세.”
사내의 말 한마디에 남자는 가평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곳에는 몇 그루의 잣나무가 우거져 있었지요. 남자는 사내의 말대로 가장 높이 자란 잣나무를 올랐습니다. 하지만 20m가 족히 넘는 나무에 오르는 일이 마음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겨울이라 눈이 내려 나무는 더없이 미끄러웠지요. 그렇게 몇 번을 나무에서 떨어지고 또 떨어졌으나 오로지 딸을 위해 열심히 잣을 땄습니다. 그러나 위험을 무릅쓰고 얻은 잣은 몇 알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것만 먹으면 딸의 병이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서둘러 산길을 내려오던 남자는 길가에 쓰러진 다람쥐를 발견하였습니다. 겨울이라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한 모양이었습니다.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 딴 잣이었지만 가엾게 떨고 있던 다람쥐가 불쌍하여 잣을 잘게 으깨어 다람쥐에게 먹였습니다. 힘들게 딴 잣 전부를 다람쥐에게 먹이고 터덜터덜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날이 밝자마자 남자는 어제 잣을 따던 나무를 향해 산길을 올랐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어제 그 잣나무 아래에 잣이 한 움큼 쌓여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놀란 마음에 나무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다람쥐 한 마리가 열심히 나무를 타고 올라가 잣을 입에 물고 내려오는 것이었지요.
자세히 보니 잣을 물고 내려오는 다람쥐가 어제 남자가 살려준 다람쥐였던 것이지요. 다람쥐는 재빨리 나무를 타고 올라가 높이 매달려 있는 잣을 내려다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남자가 서 있는 쪽으로 잣을 밀어주었지요. 얼마나 많이 잣을 따다 주었는지 잣죽을 쑤어 딸아이를 먹여 병이 낫고도 남을 만큼의 양이었지요.
남자는 가평 잣의 놀라움과 겨울철 다람쥐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남은 잣을 잣나무 옆에 심었답니다. 남자가 심어놓은 잣 씨는 무럭무럭 자라나 산림을 이루었고, 지금도 가평에 우거진 잣나무는 맛과 효능이 뛰어나기로 소문이 나있지요.
더 놀라운 것은 지금도 잣을 따기 위해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나무를 타고 올라가 잣송이를 떨어뜨려 수확을 한답니다.
가을이 오긴 왔다. 빨강 노랑 어여쁜 색으로 단장을 마친 나뭇잎들이 살랑대며 약을 올리는 가을 말이다. 불과 3주 전만해도 기어코 올해는 꼭 주원과 단풍을 보러 가겠다고 다짐하였으나 지금은 이렇게 혼자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깍지 낀 손을 꼭 마주잡고 오르기로 하였던 단풍놀이는 어디로 갔을까.
“또 또 또! 나 실연당했어요. 자랑할 일 있어? 얼굴 좀 펴.”
친구라는 것이 자신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찍힌 셀카를 남자친구에게 전송하면서 말한다. 그러자 또 다른 친구가 한 술 더 떠 거든다.
“그래! 너 자꾸 그렇게 죽상하면 주원인지 뭔지가 알아주기나 할 것 같애? 너만 손해야. 너만.”
가뜩이나 머리도 복잡하고 마음도 복잡한데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신경을 건드린다.
“자꾸 잔소리 할 거면 너희 먼저 올라가.”
“기집애, 괜히 우리한테 화풀이지. 너 그렇게 굼벵이처럼 굴 거면 진짜 우리먼저 간다.”
매정한 것들. 친구들이라고 기분 풀어준다며 기어코 끌고나오더니 이제는 지들끼리 다닌단다. 차라리 그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 여자는 먼저 산길을 올라가는 친구들의 발걸음에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곧 비가 오겠는데? 길을 걷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그제야 혼자임이 실감이 난 여자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애들은 어디로 간 거야. 전화도 안 받고.
앗. 여자의 발목이 잠시잠깐 춤을 추듯 움직였다.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나뭇가지에 걸린 탓이다. 여자는 눈물이 핑 돌았다. 아픈 것도 아픈 것이었지만 서러움의 무게가 더욱 그녀의 눈물샘을 짓눌렀다.
“괜찮으세요? 아까 보니까 발목이 삐끗한 것 같던데.”
낮은 음색의 목소리가 주원과 비슷했다. 이렇게 순간순간 주원이 떠오르는 자신이 싫었다. 도움은 고마웠지만 복잡한 심경이 더욱 컸던 여자는 귀찮다는 듯 괜찮다는 말을 하며 목소리의 주인공을 향해 얼굴을 들었다.
“곧 비가 내릴 거라던데. 잠시 비를 피했다 가시는 게 좋겠네요. 부축 해드릴 테니까 제 어깨 잡으세요.”
“괜찮아요. 그까짓 비.”
여자는 상냥하게 말하는 남자에게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소나기처럼 제법 쌀쌀하게 말했다.
“그러지 말고.”
“괜찮다니까요. 정말!”
여자는 신경질적인 표정과 말투로 남자를 다시 한 번 올려다보았다. 그때 한 두 방울 빗방울이 여자의 이마에 톡톡하고 떨어지더니 이내 굵은 빗줄기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남자는 거보라며 여자의 신경질에도 불구하고 여자를 부축해 굴 안으로 몸을 피했다.
“제법 굵은 비가 오네요. 마치 장맛비처럼.”
“…”
“혼자 온 거에요? 저기 연리지 나무 봤어요? 사랑하는 사람이랑 함께 보면 영원히 이루어진다고 하던데.”
“도와준 건 고마운데요. 이렇게 다리를 삐끗했는데도 도와줄 사람도 없는데 연리지 나무가 무슨 소용 있겠어요? 정말 짜증나게.”
여자는 남자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으나 늘 주원에게 투정을 부리던 것처럼 남자에게 짜증을 늘어놓았다. 왠지 이 남자라면 주원처럼 그녀의 짜증을 받아줄 것 같았다.
“다리는 좀 괜찮아요?”
“네, 덕분에요.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괜히 짜증 부려서 미안하고요.”
“비가 금방 그칠 것 같네요. 금세 하늘이 맑아졌어요. 많이 힘든 것 같은데 비는 이렇게 금방 그쳐요. 그리고 다시 맑은 하늘과 바람과 햇살이 비추죠. 그쪽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다른 때 같았으면 웬 오지랖이냐며 속으로 한바탕 욕을 했겠지만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빗방울이 점점 얇아지며 먹구름이 가신 자리에는 한 그루의 예쁜 연리지 나무가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시를 써 왔다. 그러니 내 이 마지막 수필은 어쩌면 다분히 시적이고 또 어쩌면 아주 알아듣지 못할 말로만 채워져 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내가 시를 쓰는 이유는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절망 때문이었다. 다른 모든 시인들도 그렇게 말했다. 세상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니 내가 펜을 드노라고. 정말로 그랬다. 내가 겪은 상실이나 슬픔의 깊이를 말로 표현해 내는 것은 정말로 견딜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혀끝에서 나의 감정은 녹슬고, 때 묻고, 가벼워져 버렸다. 그러므로 나는 펜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여기에서 절필을 결심했다.
내게는 삶의 터전이라는 것이 없었다. 기쁨이라는 것도 없었다. 내 명의로 된 집이나 차를 가져 본 적이 없었고, 내가 가진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나누고 싶은 배우자를 만난 적이 없었으며, 흔히들 말하는 토끼 같은 자식들이란 꿈에나 나오는 말이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고아원에서 자랐고, 검정고시에 합격하지 못했으며, 이력서에는 쓸 말이 하나도 없었다. 지하철 역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잠을 청해 본 적이 있으며, 백 원이 모자라 컵라면을 사 먹지 못했던 적도 있다.
물론 항상 가난했던 것은 아니다. 먹고 살 만큼의 돈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일거리가 있을 때에는 일을 했고, 없으면 없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세상 모든 불행이 내 인생만을 방문하는 것 같은 이 기분을 누구에게 설명해야 위로받을 수 있을까. 진정한 위로는 공감 위에서만 탄생한다. 그러므로 나는, 위로 받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이 모든 불행 가운데서 놓지 않았던 단 한 가지가 바로 시를 쓰는 일이었다. 종이와 연필 하나만 있어도 충분한 취미라는 것이 어려서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니까, 시와 나의 만남은 지독한 가난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시를 사랑하지는 않았다. 내가 시를 쓰고 있다는 것은 내가 아직 카메라를 갖지 못했다는 뜻이며, 아직 골프장의 잔디를 밟아 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나마 좋은 점이 있다면 언제나 어느 때나 발 닿는 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 수목원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내가 언제나처럼 딱히 갈 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고, 운 좋게 내 바지의 왼쪽 주머니에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한 장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그 뿐이었다.
물향기 수목원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물향기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비가 오는 날이나 눈이 오는 날에도 미소 지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수십 년 간의 비관은 사람의 눈을 가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내가 종이와 연필을 꺼내 든 이유는, 수목원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왕에 시를 쓸 것이면 인공적인 나무와 인위적인 호수, 이기적인 인간들의 군상을 담아야만 했다. 나는 그것이 내가 시를 쓰는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절필을 결심한 것이 어느 지점에서였더라. 토피어리 정원을 지나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졌을 때였을까, 미로원을 지날 때였을까, 아니면 저 멀리서 아이들이 징검다리를 건너는 모습이 보였을 때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고목 아래의 벤치에 앉아 혼자 책을 읽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았을 때였을까. 이것마저 아니면 늪지에 핀 꽃들을 보았을 때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가장 오래 멈춰 서 있었던 곳은 수생식물원이었다. 개구리밥과 수련, 갈대 등이 수면을 가득 덮고 있어서 처음에는 초원인 줄 알고 다가선 것이었다. 가까이 가 본 나는 이곳이 늪지였다는 사실에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이루지 못한 모든 것들이 늪지 아래로 가라앉아 버리는 느낌이었다.
그 때, 실잠자리 한 마리가 눈앞을 스쳤다. 실잠자리가 가는 방향을 보니 쇠오리 새끼 한 마리가 겁도 없이 물가로 올라오고 있다. 그 옆에는 수련 한 송이가 피었는데, 그 뿌리가 검은 물 밑으로 잠겨들고 있었다. 수련을 노려보며 종이에 시상을 적어나가려던 찰나, 잉어 한 마리가 수련 줄기를 툭 건드리고 지나갔다. 물 밑의 잉어에서 그 위의 수련으로 자연스레 시선이 옮겨갔다. 검은 물 아래서 올라온 연녹색의 줄기가 하얀 수련을 피워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연필을 놓치고 말았다. 연필은 데구르르 굴러 물 밑으로 사라져버렸다. 문득, 연필이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수련 한 송이를 피워내는 상상을 했다. 수련에서 물향기가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뿐이었다.
올해 초, 친구 기원이가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 둘레길 입구로 거처를 옮겼다. 오래된 된 농가주택에 사는데, 이따금 구더기가 출몰한다고 한다. 생각만 해도 온몸이 오싹해지며 소름이 돋았다.
“야, 온갖 곤충이 득시글거리는데, 살만하냐?”
내 질문에 녀석이 답했다.
“좋아. 행복해. 야, 너 전부 다 때려 치고 싶은 기분이 들 때 언제든지 와. 재워줄 테니까.”
“빈 몸으로 가도 되냐?”
“당연하지. 아무 것도 필요 없어. 아니다, 올 때 원두 좀 사 와라. 너무 시지 않은 걸로 200g 정도. 갈지 말고 홀빈으로.”
하여간, 구례에 된장남 하나 자리 잡았다.
당분간 잠잘 시간도 없이 바빠서 구례 생각은 아예 접고 있었다. 그런데 기원이가 내려가고 몇 달 지나지 않아, 나는 본의 아니게 휴식을 맞았다. 까놓고 말하자면 타의에 의해서. ‘이른바 경영악화에 의한 퇴직권유’였다. 앞날이 막막하긴 했는데, 지금까지 일에 시달린 시간이 너무 길어 지금은 무작정 쉬고 싶었다. 나 뭐하지. 사 년 동안 쉴 새 없이 달렸더니 노는 방법도 까먹은 터였다. 그때 갑자기 기원이 녀석이 생각났다. 그래, 일단 여기를 벗어나 보자. 아, 까먹지 말고 원두 사가야지.
서울에서 네 시간 정도를 달려 구례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러 터미널 밖으로 나오니 사방이 불빛하나 없이 깜깜했다. 암, 이래야 정상이지. 네온사인 불빛대신, 하늘에 총총한 별이 보였다. 새삼 ‘내가 지리산 가까이에 오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소속도 없이 진정한 자유인이 되었구나. 자유인의 몸으로 지리산 입구에 오다니!
그러나 센티했던 기분도 잠시, 나는 구례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멘붕의 순간을 맞았다. 기원이의 집에 가려면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산 밑까지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기원이가 일러준 버스를 탔는데 당최 안내방송이 나오질 않았다. 심지어 버스는 안개 가득한 산 아래를 달려 꼬불꼬불 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겁이 나서 운전석으로 달려갔다.
“아저씨, 연파마을 나오면 얘기 좀 해주세요.”
아저씨는 대답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한참을 더 가서야 내릴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기원이 녀석이 마중 나와 있었다. 나는 녀석을 붙잡고 하소연했다.
“이거 뭐 안내방송도 없고, 어쩌라는 거야! 지리산 미아 되는 줄 알았어! 흐엉엉.”
나의 투정에 기원이가 씽긋 웃었다.
“야, 여긴 서울 아니잖아. 서울 방식은 잊어. 구례에 온 걸 환영한다.”
다음날, 눈을 뜨자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손님 왔다고 기원이 녀석이 밤새 사랑채에 불을 무지막지하게 지핀 모양이었다. 그래도 펄펄 끓는 방에서 땀 좀 뺐더니 찜질방에 다녀온 것처럼 기분이 상쾌했다. 문을 열자, 차갑고도 청량한 기운이 방으로 들어와 잠이 확 달아났다. 그 때 본채 부엌문이 열리며 기원이가 아침상을 들고 나왔다.
“너 아침 먹고 혼자 화엄사나 갔다 와. 스쿠터 빌려 줄 테니까. 뭐, 종교? 나 성당 다니는 거 알지? 내가 죽겠는데 신이고 뭐고 가릴 때야? 너도 호신불 팔찌 하나 사다 차면 마음이 편해질지도.”
기원이 말만 듣고 무작정 스쿠터에 올라탔다. 세상에. 어제만 해도 도시에서 신세한탄하며 매연 속에서 혼자 얼쩡대고 있었는데, 오늘은 스쿠터를 타고 산길을 오르고 있다. 역시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야.
이 산길은 언제 끝나는 걸까 지루해질 무렵, 화엄사에 들어섰다. 시원한 계곡을 따라 걷다 보니 작은 문 한 채가 나왔다. 이게 바로 일주문이로군. 생각보다 작고 아담하다. 지리산 화엄사라고 쓰인 현판을 보니 내가 오기는 왔나보다 싶다. 일주문을 들어서니 금강문과 천왕문이 나오고, 비로소 사찰이 모습을 드러냈다. 국보에 보물에 천연기념물까지 온갖 귀한 것이 자리하고 있다기에 꽤나 화려할 줄 알았는데, 웬걸. 단정하면서도 질서가 느껴졌다. 여백과 규칙이 공존하는 곳에 들어서니 숨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화엄사는 다른 절과는 다르게 북동쪽으로 꺾어 들어가는 구조다. 지금까지 가본 사찰과는 조금 다른 구조에 어리둥절하며 경내에 들어가니, 조선 후기 대표적인 사찰건물 중의 하나인 대웅전과, 목조건물로는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각황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각황전에서 화엄사 전경을 바라보자니 대웅전 뒤로 드러나는 지리산의 능선에 말을 잃고 말았다. 산 속에 사는 영험한 노인이 담배를 피우는 듯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것들이 드리워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마구 자아내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기가 크다던 각황전 앞 석등, 동·서 오층석탑을 둘러보고, 대웅전 앞 계단에 앉아 잠시 머리를 비웠다. 이렇게 아름답고 고요한 공간에서 시끄럽게 머리를 굴리면 뭐하나. 공간과 자연에 잠시 몸을 맡기고 이곳에 있는 동안은 바람처럼 지내자. 구례는 그렇게 지내는 곳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이니까.
화엄사를 나서기 전, 기원이가 말했던 호신불 팔찌를 사러 갔다. ‘호신불 팔찌 있어요?’라고 물으니, 보살님이 ‘무슨 띠세요?’ 하고 되묻는다.
“80년 원숭이 띠인데요.”
내 말에 보살님은 책자를 하나 들춰보더니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안 좋은 말이라도 적혀있나 싶어 얼른 들여다보았다.
‘80년 원숭이 띠, △(세모)’
“젊은이, 잘 왔어. 화엄사 호신불 팔찌는 특히 더 영험하다우.”
속는 셈치고 믿어보자 싶어 팔찌를 샀다. 생각보다 비쌌다. 손목에 차고 만지작거리는데, 어라, 나무 알 사이에 틈이 있다. 조심스레 벌려보니 작디작은 불상이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아, 정말 이래서 호신불 팔찌구나.’
나는 헛웃음을 치며 스쿠터 시동을 걸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희뿌연 연기가 매캐한 냄새와 함께 얼굴에 떨어졌다. 마른기침을 두어 번 쏟아내니 앞이 보였다. 금연구역인거 모르나. 속으로만 삭힐 뿐이었다. 그전 같았으면 꽥 하고 소리 지르며 손가락과 함께 목에 핏대를 잔뜩 세우고 대들었겠지만 지금은 그저 꿀 먹은 벙어리이다. 그저 후 하고 올라오는 울분을 가라앉힐 뿐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연꽃은 연분홍 새색시 같은 아름다움을 뽐냈다. 연수와 미경은 가만히 연꽃을 바라보고 있다. 침묵은 깬 것은 연수 쪽이었다.
“나는 꽃 중에 연꽃이 제일 좋더라.”
“왜? 장미, 튤립, 국화 뭐 예쁘고 화려한 꽃들도 많은데.”
“그냥. 엄마 생각이 나서.”
“엄마생각?”
엄마. 엄마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울렁울렁하다. 누구에게나 그럴 것이다. 그런데 연수는 꽤 담담했다. 연꽃을 좋아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이유가 엄마 때문이라는 것은 미경도 처음이다. 연수의 어머니도 연꽃을 좋아하셨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연수가 엄마 이야기를 꺼낸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항상 쇼핑을 가도 미용실을 가도 친구 아니면 혼자 가던 연수였기에. 그런데 연수의 입에서는 뜻밖의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엄마. 절에 들어가 살잖아. 한 2년 됐나?”
정말 뜻밖이었다. 절에 들어가셨다니. 연수 어머니는 미경도 뵌 적이 있다. 오래전 일이었지만 미경이 학창시절에 연수네 집에 놀러 가면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항상 밥 먹고 가라고 미경을 살뜰히 챙겨주었기에 미경은 왠지 남일 같지 않게 당황스러웠다.
“나도 엄마 아주 가끔 봐. 찾아가는 것도 아니, 찾으러 가는 것도 이젠 지쳤고. 그저 서로 안부만 묻는 거지. 잘 있겠지 하는 안부. 그래도 우리엄마 얼굴 좀 폈더라. 좋은가봐 거기가. 체질에 맞는다고 해야 하나.”
무슨 일 때문에 절에 들어갔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리고 찾으러 간다는 것에서 연수 어머니의 단독범행이리라 생각했다.
“엄마 보고 싶지 않아?” 단순한 질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리고 답이 뻔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보고 싶지 당연히. 특히 우리 엄마가 제일 좋아하던 삼겹살 먹을 때.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곁들이면 더욱 생각나고.”
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비꼬려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연수의 엄마는 삼겹살을 제일 좋아하셨고 간간이 약주도 즐겨하셨다. 그런 연수의 엄마는 왜 절에 들어가신 걸까. 음식도 술도 아니 그보다도 가족도 뒤로한 채.
미경이 잠시 생각에 빠졌을 때 연수는 다시금 침묵을 깼다.
“밥 먹으러 가자. 배고프다.”
“어, 그래.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연잎밥. 웰빙시대잖아!”
그냥 엄마가 보고 싶어서 그런다고 하면 될 것을 웰빙시대라는 말로 애써 웃는 것이 더욱 안쓰럽다. 그 쌉싸래하지만 달큰한 맛으로라도 엄마를 기억했으면.
여기 토끼 같은 여자와 거북이 같은 남자가 있다. 지금까지 토끼와 거북이를 생각해보면 둘은 결코 친해질 수 없는 경쟁상대로 인식되어오고 있다. 그런 입장에서 본다면 토끼와 거북이는 1:1 무승부이다. 토끼는 거북이에게 간을 빼앗기지 않았으므로 1승을 거두었고 거북이는 달리기에서 토끼를 제치고 결승점에 도달하였으므로 결론은 무승부이다.
그런데 이 둘의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수씨하고 민주씨 잠깐 내 자리로 와볼래요?”
팀장의 부름이다. 민주는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네! 라고 대답하며 재빨리 쪼르르 팀장의 자리로 달려갔고 현수는 민주보다 한 박자 늦은 대답고 걸음으로 팀장의 자리로 갔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 프로젝트에서 두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생겼어요. 어려운 건 아니고, 음. 보자. 그러니까.”
팀장도 부장님께 듣고 온 업무가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부장이 넘겨준 업무자료를 이리저리 넘기며 쓸데없는 단어로 말을 이어붙이고 있을 뿐이었다.
아! 하는 소리와 함께 팀장은 말을 이었다. 이 둘이 해야 할 일이 정리가 된 모양이었다.
“이번 테마는 갯벌이야. 갯벌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우리 회사 이미지를 잘 부합해서 진행해보도록 하라고. 체험이나 코스, 맛 뭐 다양하잖아? 잘 할 수 있지?”
팀장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비교적 간단했다. 그런데 프로젝트 업무를 맡은 이 둘의 조합이 문제였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둘이었지만 한 편으론 그리 나쁜 조합도 아니었다. 토끼 같은 여자는 아이디어가 좋았고 간간이 분위기도 잘 띄우는 사람이었다. 거북이 같은 남자는 조용하고 남들보다 한 박자 느렸으나 성실함만큼은 누구도 따라오기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가 이 둘에게 떨어졌다. 팀장은 아이디어가 좋은 여자와 성실한 남자를 붙여놓기로 한 것이다.
회사의 여직원들은 어떻게 저렇게 답답한 사람이랑 일을 하냐며 민주의 하소연을 들어주었고 남직원들은 꾀만 부리면서 일하는 것보다 현수씨처럼 일하는 것이 정석이라며 각자의 편을 들어주었다.
둘은 시장조사도 해야 했고 갯벌에도 다녀와야 했음으로 온종일 거의 붙어있다시피 해야 했다. 민주는 매번 너무 꼼꼼하고 느린 성격의 현수가 답답했고 현수는 계획 없이 밀어붙이기만 하는 민주가 못미더웠다. 둘은 거의 각자 스타일대로만 기획안을 만들기 시작했고 팀장은 다시금 그 둘을 불러 세웠다.
“도대체 이게 뭐야? 둘이 같이 조사한 것 맞아? 누가 기획안 따로따로 작성하래?”
“팀장님 그게 아니고.”
“아니고 맞고 간에 오늘 둘이 사천 내려갔다와. 거기 갯벌에서 뒹굴든 치고 박고 싸우든 알아서 해. 제대로 된 기획안 가져오기 전까지 서울 올라올 생각도 하지 말고, 알겠어?”
팀장은 민주의 말을 매정하게 끊은 채 톡 쏘아 붙였다.
민주와 현수 둘은 하는 수없이 사천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둘은 도착하기 전까지도 한 마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도착한 곳. 둘은 사전조사를 위해 섬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토끼가 하늘을 나는 듯한 모양의 섬이었다. 마을에 거주하는 할아버지께서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내려져 있는 곳이라고 했다.
정신없이 섬을 둘러보다보니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둘은 말없이 떨어져가는 해를 바라보았다.
“이 섬이 토끼와 거북이에 관한 섬이래요. 마치 우리를 닮은 것 같네.”
“이번 내기에서는 누가 이길 것 같은데요?”
“아직도 둘 중 누가 이길 것 같은 게 중요해요? 참. 이번 경기에서는 누가 이기고 지고 할 게 없다고요. 아까 팀장님 말 기억 안나요? 둘이 머리 싸매고 함께 해야 한다고요.”
토끼 같은 여자와 거북이 같은 남자는 서로 마주보고 싱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