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제발요. 제가 잘못했어요. 딱 한 번만, 네?”
아빠도 엄마도 좀처럼 내 부탁을 들어 주시지 않으셨다. 지난 여행에 대한 실망이 크신 모양이었다. 백령도에 여행을 다녀온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나는 벌써 백령도가 그리워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백령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떠날 걸 그랬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든다.
지난 주말,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백령도를 여행하는 내내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부모님이 설명해 주시는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얼굴 모양을 한 바위나 예쁜 조약돌들이 널린 해변 같은 것도 그 순간에만 신기할 뿐 그렇게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주말인데 친구들과 놀러 가지도 못하고, 인터넷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을 이 먼 곳까지 와서 봐야 하다니. 내가 빨리 집에 가자는 말을 하루 종일 입에 달고 있었기에, 1박 2일의 일정이 당일치기로 줄어들며 백령도 여행은 싱겁게 끝나 버렸었다.
그런데 며칠 뒤에 백령도가 뉴스에 나왔다. 인천 아시안 게임의 마스코트로 점박이 물범이 선정되며, 점박이 물범이 사는 백령도가 언급된 것이다.
“엄마, 나한테는 저기 점박이 물범 산다고 얘기 안 했잖아!”
“얘는. 네가 얘기하면 듣기나 했니?”
엄마가 핀잔을 주며 방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콩돌 해변을 거닐거나 두무진을 구경하고, 사곶 해수욕장 사진을 찍기만 하는 등 유명한 곳들만 골라서 돌아다니신 엄마랑 아빠에게도 책임이 있었다. 사진 찍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경치가 좋은 곳보다는 재미있는 곳에 가기를 좋아하는 내가 백령도 여행 내내 지루하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물범이 산다고 미리 말해 줬으면 나도 그렇게 짜증 안 냈을 거 아니야!”
아쉬운 마음에 괜히 안방을 향해 외쳐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다 내 잘못이지, 뭐.
그러고 보니 정말 신기했다. 물개나 물범 같은 해양 동물들은 외국에나 사는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에도 점박이 물범 서식지가 있다니. 그것도 내가 다녀온 백령도에 물범 서식지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텔레비전 속의 점박이 물범들은 일광욕을 하거나 수면 밖으로 빼꼼 머리를 내밀거나 하며 놀고 있었다. 동물원의 작은 풀장이 아닌, 넓은 바다를 헤엄치고 있는 물범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왠지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당장 인터넷을 켜고 백령도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점박이 물범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었다. 백령도에 살고 있는 점박이 물범의 숫자도 점점 줄고 있어서, 환경단체에서 점박이 물범 보호를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모습들도 꽤 많이 볼 수 있었다.
두무진에 갔던 사람들이 가끔 바위 위에 올라와 휴식을 취하는 점박이 물범을 육안으로 보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점박이 물범의 매력에 푹 빠진 뒤였다. 어린 아기 같은 얼굴의 물범은 야생동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순하고 귀여워 보였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심청이가 몸을 던졌던 인당수도 백령도 앞바다라고 한다. 게다가 심청이를 감싼 연꽃이 걸렸던 바위인 연봉 바위도 있는데 이 바위는 하늘에서 보면 연꽃이 활짝 핀 것처럼 생겼다고 한다. 연봉바위에 걸리기 전에 연꽃에서 떨어진 연밥이 흘러들어 연꽃이 피게 된 마을인 연화마을까지, 백령도는 점박이 물범의 섬이면서 심청이의 섬이기도 했다.
부모님을 일주일 내내 조른 결과, 다음 달에 다시 백령도에 가 보기로 약속했다. 이번에는 심청이의 전설과 신비로운 점박이 물범을 모두 마음속에 담고 올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다. 하얀 날개 섬이라는 뜻인 백령도. 이 섬의 이름에도 아름다운 전설이 있지만, 이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자. 백령도의 진가는 백령도 이야기를 모두 안 뒤에나 마음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소리 울려라. 종소리 울려. 기쁜 노래 부르면서 빨리 달리자.”
겨울, 서울 명동. 북적이는 사람들 무리 속으로 징글벨 노래가 울려 퍼졌다. 바람결에 실려 온 노래가 겨울의 귓가에도 들려왔다. 뭉클, 뜨거운 눈물 같은 것이 겨울의 눈에 맺혔다.
“명동 와봤어?”
지금 겨울의 옆에는 수현이 서 있었다. 겨울의 옆에 서 있는, 모델 몸매의 복학생 선배 수현. 수현과 겨울은 말하자면 ‘밀당’ 중인, 하지만 아직 사귀고 있지는 않은 사이였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였고, 수현은 아마 고백을 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겨울은, 조금 달랐다.
“너 미쳤어? 요즘은 3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 해야 돼. 우리 언니가 그랬어.”
내년이면 대학교 3학년. 친구들은 복학생인 수현과 사귀는 것을 걱정부터 했다. 더군다나 수현은 인기가 많아 여학생들 사이에선 ‘한국대 김수현’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렇게 인기 많은 수현이 자신에게 잘해준다는 사실이 겨울은 사실 겁도 났다.
“명동에서는 굳이 맛집에 안 가도 돼. 여긴 군것질이 맛있거든.”
겨울이 수현의 별명을 떠올리고 있을 동안, 수현이 다짜고짜 노점상에 멈춰 서서 오뎅꼬치를 사들었다. 겨울이 쑥스러워 하며 망설이자, 수현이 대뜸 손에 꼬치를 쥐어주었다. 아주 잠깐 둘의 손이 스쳤다. 겨울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수현은 그런 겨울이 귀여운지 싱긋 웃었고, 겨울 역시 그걸 봤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마음을 들키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얼른 먹고 우리 남산 가자.”
사람들이 많은 거리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수현은 더욱 대담하게 겨울을 이끌었다. 겨울은 그런 수현이 결코 싫지 않았다.
옆에 수현이 있어 떨리긴 했지만, 오랜만에 온 명동은 볼거리가 많았다. ‘유커’라 불리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았고, 거리 곳곳의 휘황찬란한 불빛이 시선을 끌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맞게 꾸민 조형물과 조명이 눈을 황홀하게 했다. 가게마다 새어 나오는 캐럴송은 가뜩이나 들뜬 마음을 더욱 설레게 했다.
“많이 먹어. 이따 놀랄 수도 있으니까.”
명동에서도 가장 번화가라고 불리는 제일은행 사거리에서 수현이 대뜸 말했다. 놀랄 수도 있다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하지만 그건 겨울도 마찬가지였다. 겨울 역시 수현이 놀랄 만한 말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말은 겨울의 마음 속에서 이미 수십번도 더 연습된 상태였다.
‘수현오빠, 우리 이제 각자 갈 길을 가요. 전 이제 취업 준비에 집중하려 해요. 오빠도 마찬가지일 테니, 우리 각자 취업이 되면 다시 만나요.’
준비한 말을 다시 한 번 마음 속에서 되뇌자 다시 눈물이 나오려 했다.
“어디 아파?”
겨울의 표정이 폭설에 갇힌 마을처럼 어두워지자 수현이 걱정스레 물었다.
“아니, 그냥. 추워서요.”
겨울이 나지막이 답했다. 문득 정말로 추워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수현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겨울의 볼을 꼬집기라도 할 듯 한 표정으로 싱긋 웃었다. 겨울의 마음이 다시 더욱 아파지기 시작했다.
“남산에 가기 전, 잠시 들를 데가 있어. 가자.”
수현이 겨울을 다시 이끌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손목을 붙잡힌 겨울은 수현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빽빽이 들어찬 사람들 사이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일본어와 중국어 설명이 쓰인 화장품 가게를 지나고, 목도리와 장갑 따위를 늘어놓고 파는 가판대를 지나고,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나는 보세 옷가게를 지났다. 피켓을 들고 단체 관광중인 중국인 관광객 무리를 스치고, 다정한 커플들 사이를 지나, 수현이 멈췄다. 명동 중심가의 트리 밑이었다. 주변에는 구세군 종소리도 울려 퍼졌고, 때마침 트리 주위에서 방송이 나왔다.
ㅡ크리스마스에 명동을 찾아주신 여러분, 모두 소원은 비셨나요?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에 겨우살이 나무 밑에서 키스를 하면, 사랑이 평생 유지된다는 속설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겨우살이 나무는 아니지만, 이곳 명동 트리 아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내보세요.
그러자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들린 건 여자들의 ‘꺅’ 소리였다. 분위기 탓인지 감동을 받은 듯 한 여자들의 즐거운 비명소리가 명동을 메웠다. 드문드문 ‘오오’하는, 중저음의 남자들 목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그때였다.
“겨울아, 내 마음을 받아줄래. 우리, 아직 불안한 청춘이지만, 지금 이 순간 소중한 우리의 20대를 함께 보내자.”
겨울은 자신 앞에 무릎 꿇은 수현을 내려다봤다. 모델처럼 키 큰 수현이, 자신에게 무릎을 꿇은 채 자신의 손등에 입을 맞추고 있었다. 전율이 손등을 타고 온몸에 퍼졌다.
“네 마음은 어떠니?”
수현이 겨울을 올려다 보며 물었다. 겨울과 수현의 눈길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저는... 저는.”
겨울의 입술이 떨렸다. 마음 속에 연습한 말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저는... 저도, 좋아요.”
겨울은 연습한 말 대신, 마음이 시키는 말을 하고 말았다. 그러자 수현이 겨울에게 다가와 입을 맞췄다. 두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눈꽃처럼 번졌다. 크리스마스에, 겨울과 수현은 마주보고 웃었다. 크리스마스에 겨우살이 나무 밑에서 입맞춤을 하면 영원한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머릿속에 오래오래 떠올랐다. 수현과 겨울은 남산타워로 말없이 걸었다. 그리고 사랑의 자물쇠를 채우며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였다.
크리스마스가 되자 남자와 여자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함께 맞는 크리스마스가 처음은 아니지만, 그래서 더욱 떨리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둘은 처음보다 서로에게 더욱 소중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송이 나오자 남자와 여자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다시 한 번 함께 보낼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며 설레는 데이트를 꿈꾸기 시작했다.
“삼청동 어때? 삼청동은 언제 가도 마음이 편안한 것 같아.”
여자가 남자에게 먼저 제안했다. 크리스마스 당일이었다. 남자는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볼을 꼬집어주고 싶어졌다.
“삼청동은 걸으면서 구경할 때 제일 재밌대.”
남자가 여자에게 말하자 여자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마스 당일 해질녘, 남자와 여자는 삼청동으로 갔다. 삼청동은 ‘차 없는 길’인 감고당길 등에서 시작해 좁은 길과 큰길가를 번갈아 걸으며 구경하는 방법이 있다. 풍문여고에서 시작해 돌담길로 된 감고당길을 걷다 보면 정독도서관 사거리가 나온다. 정독도서관을 지나쳐 더 좁은 안쪽길로 걷다 보면 떡꼬치와 식혜를 먹을 수 있는 풍년방앗간과 기타 크고작은 로드숍을 볼 수 있다. 삼청동은 사람들 사이에‘핫 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유명 외국 화장품 가게 등이 입점하기도 했는데, 그렇다 해도 삼청동의 묘미는 묵묵히, 그러나 아기자기한 매력을 풍기며 영업 중인 크고 작은 가게들일 것이다. 이곳을 걸으며 남자와 여자도 그런 생각을 했다.
“저것 좀 봐. 크리스마스 장식을 팔고 있어.”
둘 다 똑같은 생각을 했던 걸까. 한 로드숍은 관광객을 겨냥한 크리스마스 소품을 거리에 내놓고 팔고 있었다. 신이 난 여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가게로 가자, 남자도 덩달아 환한 얼굴이 돼 함께 구경했다. 오랜만에 본 겨울 소품이 마음에 든 여자는 딱히 살 마음은 없었지만 오랫동안 요모조모 살펴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삼청동에는 식당이 곳곳에 많은데, 맛집도 많대. 청와대 방면으로 우리 걸어볼까?”
해가 져 어두워지자 남자가 먼저 말했다. 비록 데이트지만 행여나 여자가 추울까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남자는 여자를 앞으로 이끌었고, 여자도 설레는 마음으로 남자의 뒤를 따랐다. 만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서로를 향한 둘의 마음은 이럴 때 더욱 깊어지는 것 같았다.
“전구를 보니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아.”
밤이 되자 삼청동 거리에는 겨울 전구들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고, 따뜻한 전구를 보자 남자와 여자의 마음도 한결 더 포근해지는 기분이었다. 불켜진 전구 덕분에 삼청동 거리는 온통 노랗게 빛났고, 여자와 남자의 마음에도 노란 희망이 비치는 기분이었다. 그 희망은 바로, 서로 믿고 의지한 지금까지의 시간이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믿음과 기대에서 비롯된 거라고 둘은 생각했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식당이 있을 거야. 그곳에서 우리 크리스마스 만찬을 즐기자.”
남자의 말에 여자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조금 추위가 느껴지려 했다. 아침부터 무척 추운 날이라고 누군가 그랬는데, 하루종일 밖에 있어도 춥지 않았던 건 옆에 있는 남자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야. 들어가자.”
남자가 여자를 식당으로 이끌었다. 레스토랑의 매니저로 보이는 준수한 남자가‘예약하셨나요?’라고 물었고 남자는 정돈된 말투로 ‘네’라고 했다. 여자는 그런 남자가 더욱 든든하게 느껴졌고 믿음직스러웠다. 이윽고 둘만의 식사가 시작됐다.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은 아마 ‘더욱 깊어진 사랑’이 아닐까, 하고 여자와 남자는 생각했다.
마을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마을 어귀에서부터 들려왔습니다. 오늘은 정월 초사흗날로 마을의 큰 행사가 있는 날이지요. 매년 이맘때가 되면 마을에는 큰 풍어제가 열립니다. 부안의 이 마을은 고슴도치를 닮은 섬으로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물고기도 잡는답니다. 그래서 고기도 많이 잡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고 용왕님을 즐겁게 해주는 굿을 하지요.
징과 꽹과리 소리가 크게 들리고 제사에 쓰일 음식과 물건들을 원당에 준비하느라 아침부터 마을이 시끌벅적합니다. 그런데 유독 민수네 집만 조용합니다. 민수는 아픈 어머니 옆에서 물수건을 적셔 어머니를 간호하고 있고, 민수 아버지 홀로 풍어제를 조용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곧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야 할 텐데 어머니는 풍어제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사실 이 마을의 풍어제는 마을 이름을 딴 위도 띠뱃놀이로 이 마을 굿은 여성들이 적극 참여하여 무녀와 함께 한복을 입고 고깔을 쓰며 신명 나게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합니다. 민수의 어머니는 혹시나 자신이 참석하지 않아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아픈 몸을 하고도 노심초사하였습니다. 민수의 아버지는 아내를 안심시키고 본격적으로 열리는 띠뱃놀이에 참석하러 발길을 재촉하였습니다.
단장한 무녀가 등장하고 차례대로 아홉 가지의 굿이 펼쳐졌습니다. 민수도 아버지의 뒤에서 고개만 내밀고 굿을 구경했지요. 드디어 용왕굿이 시작되고 마을의 부녀자들이 고깔을 쓰고 풍물패를 이루며 흥겹게 반주를 하였습니다. 부녀자들은 고수레용 밥을 만들어 바다 곳곳에 뿌렸고 마지막으로 짚으로 만든 띠배에 액운을 담은 짚으로 만든 인형을 태워 띠배를 띄워 보냈습니다.
그렇게 마을 굿이 끝나고 얼마의 시간이 흘러 민수의 아버지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배를 타러 바다에 나가는 날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풍어제를 제대로 지내지 못한 마음에 눈물을 보였고 민수의 아버지는 애써 위로하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마을 사람들이 탄 배가 도착하기로 예정된 날이 밝았습니다. 그런데 아침부터 심상치 않은 먹구름이 부둣가를 짙게 드리웠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 파도는 금방 사납게 철썩대었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민수의 아버지가 탄 배는 소식이 없었습니다. 민수의 손을 잡은 어머니의 손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그리고는 하루 이틀, 그렇게 배의 소식이 끊어진 지 만 사흘이 꼬박 지나도록 어머니는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였지요. 그리고는 자신이 굿에 참석하지 않아 용왕신이 노한 탓이라고 하였습니다.
민수는 소식이 끊긴 아버지도 걱정되고 다시 몸져누우신 어머니를 위해 작은 띠뱃놀이를 하여 용왕님의 화를 풀어드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굿을 구경해 둔 덕분이었지요. 작은 고사리 손으로 종이배를 만들었고 소의 여물로 주려고 남겨놓은 지푸라기를 가져다가 종이배에 칭칭 감았습니다. 그렇게 만든 작은 띠배에 용왕님께 드릴 선물로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장난감 인형과 딱지를 넣고 용왕님께 직접 쓴 편지도 넣었지요. 그리고는 아버지가 타고 간 바다를 향해 작은 띠배를 띄워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두 손을 꼭 잡고 기도를 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일기예보에서는 앞으로 닷새 동안은 태풍이 계속되어 밖으로의 외출을 삼가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일기예보를 보시고는 한숨을 내쉬고 다시 자리에 누우셨지요. 민수는 아직 편지가 용왕님께 도착하지 않았나 보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날이 밝고 민수는 눈을 뜨자마자 밖으로 나가보았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하늘은 구름이 싹 걷히고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하였습니다. 아이의 순박한 마음과 간절함이 용왕님께 정말 전달되었던 것일까요?
저 멀리 만선을 뜻하는 깃발을 드높이 올린 배 한 척이 보였습니다. 아버지는 물고기가 많이 잡혀 하루만 더 기다렸다 돌아오려고 하였는데 풍랑이 심하여 돌아오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아이의 착한 마음으로 다시 행복을 찾은 위도에는 지금도 아이가 떠내려 보낸 종이 띠배가 바다를 맴돌고 있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고 전해진답니다.
회사를 나가지 않는 날임에도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눈이 떠졌다. 평소였으면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소리에도 밍기적거리며 이불속으로 몸을 숨겼을 그녀다.
그녀는 사뿐히 몸을 일으키고 머리를 질끈 묶으며 커튼을 걷었다. 아침햇살이 눈부셔 살짝 미간을 찌푸렸으나 금세 환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상쾌한 아침이다.
아침을 먹기 위해 찬장에서 우연히 인스턴트 미역국을 집어 들었다. 그때 울리는 문자소리. 휴대전화를 열어본 그녀는 오늘이 자신의 생일임을 알았다. 모 카드사에서 온 고객축하 문자다.
수지님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참 친절하게도 모르는 이의 생일을 축하해준다. 그녀는 생각했다. 때로는 가족이 카드사보다 못하다는 걸.
우연히 집어든 인스턴트 미역국을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윙하며 돌아가는 늠름한 전자레인지를 뒤로하고 그녀는 잠시 골똘히 생각을 했다. 생일엔 왜 미역국을 먹을까. 우리 엄마도 나를 낳고 미역국을 먹었을까. 그녀는 웬일인지 엄마 생각을 했다.
그녀는 엄마와 마지막으로 연락한 적이 언제인지 떠올린다.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마 떠오른다고 해도 악을 쓰며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소리 소리를 질렀을 때가 아니었을까.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가 미웠고 이후 가족과 등을 지며 살았지만 그녀라고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은 적이 없었을까.
온몸이 부서지게 아플 때 엄마가 끓여준 따뜻한 미역국에 밥 한 그릇 말아 후루룩 말아 먹으면 금세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아쉬운 대로 끓여먹은 것이 이 인스턴트 미역국이었다.
전자레인지가 임무를 마쳤다는 소리를 낸지도 모른 채 그녀는 식탁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애꿎은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렸고 혹시나 연락이 온 곳이 없나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지만 없다. 그녀는 다시금 창밖을 내다보았다. 얇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먼저 연락해볼까 생각했다.
멋쩍은 듯 연락을 하면 뭐라고 할까. 엄마도 나를 보고 싶었다고 할까.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어쩌나.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먼저 손 내미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하긴 그게 쉬웠다면 우리나라도 진즉에 통일을 하더라도 열두 번은 더 했겠지.
잊고 있던 미역국이 생각나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전자레인지를 열어 미역국을 꺼냈을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녀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혹시나 엄마일까?
아니어도 상관없다며 마음을 다독이고 문자를 확인했다.
엄마다.
생일축하한다우리딸
미역국은먹었니 인스턴트미역국먹지말고 집으로와
미역국끓여놨어
이게 뭐야. 띄어쓰기도 하나도 안 하고. 무심하게.
하지만 그녀도 안다. 엄마가 문자를 보내기 전 몇 번이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을 것을.
그동안의 앙금과 미안함과 서운함이 섞인 눈물이 흘렀다. 이렇게 말 한마디면 될 것을. 서로 그리워했다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는 걸 표현만 해도 이렇게 쉽게 풀어질 것을.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것을,
그녀는 황급히 옷을 갈아입었다. 벌써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조개를 넣고 끓여 비릿한 미역국.
그러면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이렇게 말할 것이다.
조개 말고 쇠고기 넣은 미역국이 더 좋댔잖아!
그리고는 말없이 서로의 손을 꼭 잡을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서늘한 가을바람이 옷깃을 스치는 가을이건만 남자는 한여름처럼 땀을 뻘뻘 흘렸다. 너무 오래 걸어온 탓일까 걷는 것도 사는 것도 힘에 부치다고 느껴지는 하루였다. 남자의 머릿속엔 오직 하나.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남자에게 유일한 피붙이라고는 남동생 하나였다. 동생을 공부시키기 위해 어릴 때부터 안해본거라곤 결혼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형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의 동생은 남자의 구속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더욱 엇나가기 일쑤였다. 남자의 동생은 12살 무렵 소년원에 들어갔다 나온 전적이 있다. 남자는 그런 동생을 때려도 보고 협박도 하고 회유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남자는 그저 동생이 눈앞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남자의 직업은 정원관리사였다. 말이 좋아서 정원관리사였지 남의 집에서 청소, 빨래 등의 허드렛일과 함께 곁다리로 정원까지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집주인은 남자의 일하는 방식과 일처리의 결과에 만족하였다. 청소를 하라고 하면 청소를 하였고 정원관리를 하라면 정원관리를 했다.
“내가 이래서 자네를 믿어. 청소를 하라면 하면 그만이고 빨래를 하라고 하면 빨래를 하는 게 그게 어려운가? 지금까지의 사람들은 그게 참 안됐는데. 자네만 된단 말이지. 암. 그래서 좋아.”
남자는 집주인 남자의 말에 달리 어떤 대꾸를 해야 할지 몰라 정원을 정리하다 떨어진 나뭇잎들만 쓸어 모았다. 집주인의 말을 보면 남자는 지극히 단순한 일차원적인 일을 하였다. 명령이 떨어지면 그 명령대로 수행했다. 컴퓨터에 0이라는 숫자를 입력하면 0의 결과값을 나타내는 식이었다. 말하자면 집주인은 남자의 노예근성이 마음에 든 것이다.
남자는 처음 이 집에서 정원관리사로 일할 때 월급의 반을 줄이는 대신 남자의 동생과 함께 지낼 방 하나만 비워달라는 것이었다. 집주인은 그러마했으나 실제로 남자의 동생이 집에 들어온 것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주인은 남자의 월급의 반을 올려주지 않았다. 남자가 달리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달에 한번 남자를 곤욕스럽게 했다. 밤늦게 친구들을 데려오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남자는 조용히 집을 나온다. 하룻밤을 떠돌아 다녀야했다. 남자의 방에서 보란 듯이 자신의 친구들을 재우고 밤새도록 술을 퍼마셨다. 남자는 그래도 아무런 말대꾸를 하지 않았다. 방을 우리에게 내어준 전제로 월급의 반을 깎지 않았냐고 한번은 따져물을 법도 하건만 남자는 그러지 못했다. 남자의 동생이 언제 들어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남자에게서 동생의 전화가 왔다. 받아보았더니 경찰서로 와달란 전화였다. 동생이 또 무슨 짓을 저지른 모양이다. 그저 그 죄질이 가볍기를. 오늘 안으로 합의해서 나올 수 있기를 이러한 말만 수없이 되뇌며 도착한 경찰서 안은 공간이 주는 압박만큼이나 무거웠다. 남자는 분위기만으로도 동생의 죄질이 가볍지 않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동생이 이번에는 살인을 저질렀다는 말을 담당 형사로부터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방화가 일어난 곳에 남자의 동생과 그 무리들이 있었는데 남자의 동생이 그동안 저질러온 전적이 화려하여 피의자로 추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남자는 형사에게 달리 할 말이 없었다. 형사도 그런 남자에게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그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불리한 진술에 거부할 수 있다는 말뿐이었다.
남자는 동생을 바라보았고 동생은 고개를 숙였다. 남자는 한숨을 쉬며 형사에게 물었다.
“만약 지금 들어간다면 언제 나올 수 있나요?”
형사는 적잖이 놀란 눈치로 아직 혐의가 인정된 것이 아니고 범인이라고 자백한 상태도 아니기 때문에 형이 얼마나 될지는 모른다고 했다.
형사의 말에 개의치 않은 남자는 한 번 더 물었다.
“죄질이 무거운 만큼 오래 있다 나오게 되겠지요? 그렇담. 저는 이제 좀 쉬어도 되는 건가요?”
형사는 남자가 꽤나 충격을 받아서 실언을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물 한잔을 권했다.
남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그저 한가로이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 예쁘게 꾸며놓은 정원을 바라보며 한가로이 산책을 하는 것. 남자는 집주인을 떠올렸다.
아직까지 남자가 들어오지 않은 것을 알면 집주인이 화를 낼 것이 분명했다. 남자는 형사에게 집에 좀 다녀오겠다고 했다. 언제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지 않은 채.
아내와 나는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이유로 며칠 째 냉전 중이다. 주말 오후가 다 가도록 밀린 빨래를 하던 아내가 느닷없이 폭발한 것이었다.
“결혼 하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 준다며! 어떻게 결혼하고 지금까지 자기 손으로 양말 빨래 하나를 안 해 볼 수가 있어? 내가 식모야? 가정부로 이 집에 들어왔느냐고!”
물론 빨래를 한 적이 없기는 하지만, 나는 어째 좀 억울한 기분이었다. 맞벌이를 하기는 하지만, 학원 강사로 일하는 아내는 나보다 일하는 시간이 훨씬 적다. 평일에야 끝이 없는 야근 때문에 집에 들어오면 바로 쓰러져 잠들기 일쑤지만, 주말에는 함께 청소도 하고 가끔은 아침밥도 내가 차린다. 그런데 그제, 아내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체 어딜 갔었던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왠지 쪼잔한 남편이 되는 것 같은 기분에 그만두었다. 내게 아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보이듯이 아내에게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남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바람을 피운다거나 하는 의심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홧김에라도 바람의 ‘바’ 자만 꺼내도 우리 집은 풍비박산이 나고 말 것이다.
그래도 아직 어딜 나가면 아가씨 소리를 듣는 내 아내가 외박을 하고 들어왔다는데, 신경이 쓰이지 않는 남편이 어디 있겠는가. 초조해하는 내 모습을 보고 고소해하는 걸 보니, 아내도 내 심정이 어떤지를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괘씸한 마음에 나도 확 외박이나 해 버릴까 하다가도, 잠도 못 자고 울며 기다릴 아내의 모습이 상상 되어 그만두었다. 아마 세상 천지에 나만 한 남편도 없겠다 싶었다.
“이번 주말에 바다나 보러 가자.”
먼저 말을 걸어 볼까 수십 번을 망설였는데, 아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담담해 보이는 그 모습을 보자, 이번에도 내가 지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술 더 떠서, 아내는 요 며칠 동안 한 번도 부린 적이 없는 애교까지 부리며 내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도대체가 몇 번을 싸워도, 아내만은 이길 수가 없다.
아내가 이끄는 대로 운전해 온 곳은 부산이었다. 당연히 광안리나 해운대 해수욕장에 갈 줄 알았는데, 아내가 가리킨 곳은 조금 다른 방향이다. 바닷가는 이쪽으로 가야 나온다고 말하자, 아내는 바다 보러 가자고 했지, 바다에 가자고 하지는 않았다고 대꾸해왔다. 그건 또 그렇다. 묵묵히 아내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가니 황령산이 나왔다. 광안대교에라도 갈 생각인가 했는데, 바다를 보러 가는데 웬 산이란 말인가. 또 딴죽을 걸었다가는 다시 싸움이 벌어질 것 같아 고분고분 아내를 따라 차에서 내려 걸었다.
이제 막 해가 저물어가는 부산의 모습은 그다지 특별하달 게 없었는데도 아내는 봉수대에 서서 말없이 부산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틈을 타서 어딜 갔었는지 슬쩍 물어야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아내가 또 선수를 쳤다.
“그제 친구랑 여기 왔었어. 결혼 전에는 매일 저기 보이는 해수욕장에서만 놀았는데, 이제는 그렇게 시끄러운 것도 별로고 해서.”
아내는 여기서 야경을 보고 있자니, 그 시끄러운 해변이 참 조용하더라고 말했다. 시끄러운 곳을 피해 이곳으로 와서 도시를 내려다보았더니, 반짝이는 불빛만 가득한 것이 참 예쁜 곳이었다고 말이다. 조금만 물러서서 보아도 보이는 게 확 다르더란다. 집으로 돌아와 내 모습을 보니, 요 며칠 셔츠 안 다려주고 밥 안 차려줬다고 웬 꾀죄죄하게 생긴 남자 하나가 있더란다. 그래서 내게 먼저 화해를 청할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내의 말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내가 말한 대로 펼쳐지고 있는 부산의 야경이었다. 밤의 부산은 그야말로 빛의 도시였다. 노을도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 했더니, 해는 빠른 속도로 저물었다. 그리고, 불이 켜지기 전에는 아파트 단지 같은 회색의 고층 건물들만 가득하여 눈길이 가지 않던 부산 시내가 어느 새 반딧불 수억 마리가 한 번에 날아오른 것처럼 하얗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바다를 길게 가로지른 광안대교의 오색 불빛도 한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해가 저물수록 점점 더 아름다워지는 야경을 보다가, 이 말만은 먼저 해야겠다 싶어서 재빨리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아내가 말없이 웃으며 내 어깨에 머리를 슬쩍 기대 왔다. 도무지 떨어질 것 같지 않던 한 발짝이었는데, 물러 서 보니 참 좋았다.
내 옷깃을 단단히 여며 주시는 할머니의 눈가가 젖어 있었다. 어제의 낙산사에 이어 오늘은 보문사였다. 내일은 또 보리암에 간다고 하셨다. 전국의 유명한 절이란 절은 다 돌아보실 것이라고 하셨다.
엄마는 오랫동안 앓다가 얼마 전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할머니는 엄마가 자꾸 꿈에 나온다며, 얼마나 아프고 얼마나 서러웠으면 그러겠냐며 자꾸만 우셨다. 할머니는 오늘 기도를 하시며 또 우실 것이다.
할머니가 절을 하시는 동안 나는 몰래 기도하는 곳을 빠져나왔다. 엄마는 재미없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다. 그러니까 할머니가 기도하며 우시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실 것이다.
할머니는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나를 데리고 절에 가셨다.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가 보았을 때에는 다들 재미있게 웃고 떠들고 있었는데, 절에 오면 너무 조용해서 무서웠다. 할머니는 슬픈 일이 있을 때에만 절에 가셨기 때문에, 내가 조금만 장난을 쳐도 혼을 내셨다. 그래서 나는 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절은 우울한 사람들이 오는 곳일 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엄마가 몸이 아프기 전에, 엄마는 딱 한 번 나를 데리고 가까운 절에 가셨다.
“싫어. 절에 가면 재미 하나도 없단 말이야. 말도 안하고 계속 인사만 하잖아.”
나는 가지 않겠다고 한참을 버텼지만, 엄마의 애교에는 이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엄마는 절에 도착해서도 기도하러 부처님 앞에 가지 않으셨다. 그냥 마당에 앉아 강아지랑 놀거나 연못을 구경하거나, 나랑 같이 사진을 찍으면서 시간을 보내셨다. 스님이 사탕이랑 과자도 잔뜩 가져다 주셔서 그때는 정말 신이 났었다.
그 때처럼 재미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하고 돌아다니는 중에, 나는 수백 개나 되는 불상이 앉아 있는 곳을 발견했다. 어른들이 그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소원을 빌고 있었다. 할머니처럼 모두 슬픈 표정을 하고 있을 것 같아서 선뜻 가까이 가지 않았는데, 다들 웃고 있었다. 대체 불상이 뭐가 재미있어서 웃는 것일까. 자세히 보니 불상들도 웃고 있었다. 머리카락이랑 입술에 알록달록한 색이 칠해진 불상들이 재미있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바로 옆에 있는 건물에서 나오는 사람들도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옆에 있는 건물로 달려가 보니, 이번에는 우리 반 교실만큼 커다란 부처님이 옆으로 누워서 자고 계셨다. 지금까지 내가 본 부처님들은 전부 교장선생님 같은 얼굴을 하고 계셨는데 말이다. 쌓여 있는 기와 위에도 작은 부처님들이 앉아 계시고, 여기저기에는 사람들이 만든 돌탑이 있었다.
나는 어느 새 사람들의 소원이 적힌 예쁜 종이가 들어 있는 병들이 매달려 있는 곳에 도착했다. 나보다 조금 더 어린 것 같은 여자애 하나가 아빠 손을 잡고 소원을 병 속에 집어넣고 있었다. 여자애가 웃으며 아빠를 올려다보자, 아빠가 그 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두 사람이 가 버린 뒤에 가까이 가서 병 속을 들여다보았다. 사랑한다는 말도 적혀 있고, 보고 싶다는 말도 적혀 있고, 그리고 좋은 곳으로 가라는 말도 적혀 있었다. 아마 나처럼 엄마가 돌아가신 모양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다. 아프지 않으실 때에도, 그리고 아프실 때에도 웃고 계셨다. 할머니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가 불쌍하다고 하셨지만, 내 생각에 나는 불쌍한 아이가 아닌 것 같다. 엄마는 항상 웃고 계셨으니까 아마 하늘나라에 가서도 웃고 계실 것이다. 엄마가 슬프지 않으면 나도 슬프지 않다.
할머니가 나를 찾느라 두리번거리고 계셨다. 할머니는 또 많이 우신 모양이었다. 나뭇가지처럼 까맣고 가느다란 할머니의 몸이 겨울바람에 날려 갈 것 같이 약해 보였다. 할머니가 나를 끌어안으며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우리 손주, 우리 가엾은 현우 불쌍해서 어쩌누. 대체 어쩌누.”
나는 오늘에야말로 할머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할머니, 울지 마. 웃어야 엄마가 기뻐해.”
할머니의 등 뒤로 아까 보았던 누워 있는 부처님이 슬쩍 보였다. 부처님의 입꼬리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