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는 공주, 부여의 백제유적과 함께 백제역사유적지구라는 이름으로 2015년 7월 8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 등재 주제어는 ‘백제왕도’다. 다시 말하면 백제왕도와 관련된 왕궁과 사찰, 방어시설인 성곽, 왕릉 등 8개 유적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왕궁리유적은 백제 왕궁으로서는 처음이자 유일하게 확인되었기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백제시대의 왕궁은 어떠한 모습이었을지, 왕궁 안에서는 어떤 물건을 사용했으며 현재 우리가 사는 모습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줄 열쇠가 바로 왕궁리유적전시관에 있다.
왕궁리유적 제대로 관람하기
왕궁리유적에 가보면 국보 제289호 왕궁리 5층석탑을 비롯한 유적지 일대와 왕궁리유적전시관을 만날 수 있다. 외부 유적지로 먼저 발길을 옮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대로 된 관람을 위해서는 전시관을 먼저 돌아보고 유적지를 둘러보는 것이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된다.
전시관 안에는 상설전시관과 기획전시실로 나뉘어 왕궁리유적, 왕궁리유적의 백제건물, 왕궁의 생활, 왕궁에서 사찰로의 변화, 백제왕궁 등 5개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발굴조사 과정의 사진과 함께 100분의1로 축소된 유적 모형, 출토유물, 유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각종 보조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전시관 내에서 유적에 대한 이해를 하고 외부 관람을 통해 백제의 숨결을 느껴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백제 무왕, 정말 익산으로 천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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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접하는 곳에 왕궁리유적의 1/100 축소 모형과 함께 주변에 서동과 무왕, 관세음응험기에 대한 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서동, 즉 무왕이 익산으로 천도하게 된 배경과 관세음응험기의 기록을 이해하고 왕궁리유적 발굴조사 결과 확인된 왕궁으로서의 특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삼국유사나 익산군지 등의 기록에 의하면 서동은 익산에서 태어나 오금산에서 마를 캐며 살아가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공주 선화와 혼인했다. 후에 오금산에서 금덩이를 얻은 후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고 인심을 얻어 백제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왕위에 오른 후 그가 태어난 익산으로 천도하였다는 사실은 관세음응험기에 기록되었다.
관세음응험기는 국내 기록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일부에서 신빙성을 의심하는 경우가 있지만 주요 내용인 제석사 화재 사실과 목탑 아래에 발견된 사리장엄을 보관하기 위해 새로 절을 지었다는 것이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됨으로서 기록의 정확성이 상당부분 입증이 되었으며 이를 통해 백제무왕의 익산 천도설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유적으로 보는 백제 왕궁
왕궁리유적의 발굴조사 결과 왕궁리유적은 백제 무왕의 왕궁과 후대의 사찰유적이 같은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왕궁의 외곽은 폭 3m의 담장이 장방형으로 돌려졌는데, 규모는 약 12만㎡이다. 남측 절반은 왕이 정사를 돌보거나 의례, 생활과 관련된 건물이 배치되었고, 북측 절반은 정원과 후원 그리고 금과 유리를 생산하던 공방으로 활용되었다.
또한 남측은 4단의 동서석축을 쌓아 남측에서부터 정전(正殿), 편전(便殿), 침전(寢殿) 등의 건물을 배치하고 외곽 담장에는 총 7개의 문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같이 왕궁리유적의 백제왕궁은 규모나 공간 활용 방법에 있어서 일반 가정과는 확연히 구분할 수 있고 중국이나 일본의 왕궁과 유사한 배치를 하고 있어서 왕궁과 같은 특수한 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고려사나 세종실록지리지 등에서는 왕궁리유적이 마한의 왕궁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발굴조사 과정에서 대부분이 마한의 유물이 아닌 백제 후기 유물이 출토되어 마한보다는 백제 무왕의 왕궁으로 보고 있다.
유물로 보는 백제 왕궁
왕궁리유적이 백제 왕궁의 흔적이라면 왕궁리유적전시관에 전시된 유물은 백제시대 일반인 보다는 최고 신분계층에서만 사용하던 귀중품으로 백제 왕궁이라는 사실을 입증 할 수 있는 유물이어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유물로는 수부(首府)라고 도장이 찍힌 기와, 금제품, 유리제품, 중국청자, 전달린토기, 뚜껑이 있는 그릇(완), 대형항아리, 벼루, 변기형토기, 연가 등 이다.
수부(首府)는 한 나라의 수도 또는 서울을 의미 하며, 금과 유리는 백제 최고 신분계층에서만 사용하던 최고 귀중품이다.
중국청자는 백제를 대표해서 중국과 교류 사실을 말해주고 있으며, 전달린 토기와 뚜껑이 있는 그릇은 백제에서 가장 좋은 기술과 흙으로 만들어졌다.
벼루는 왕궁 내에서 이루어지는 일의 기록과 관련이 있으며, 변기형 토기 역시 백제 최고 신분계층에서만 사용 하던 것으로서 백제 왕궁의 흔적이라는 증거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고요한 침묵으로 다가와 예술적인 감성과 놀라운 과학으로 감동을 주는 익산 왕궁리유적. 일반인은 물론 역사, 공예, 건축, 토목, 문학 등을 배우는 학생들과 연구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유적전시관은 2008년 개관 이래로 유적 발굴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문화교육장으로 널리 활용이 되고 있다. 또한 출토된 백제기와 만져보기, 관세음응험기 목판찍기, 유물 이미지 스탬프 찍기 등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도 구성이 되어 있어 아이들에게 즐거운 추억을 선사한다.
옛 역사를 알 수 있다는 것은 참 값진 일인 것 같아요. 기록이 없었다면 없던 일이 될 수도 있던 것을, 유물이나 유적, 보존되어 내려온 관련 기록을 통해 분명히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까요. 그 옛날 백제 왕궁에 대해 알고 싶다면 왕궁리 유적 전시관으로 놀러가는 것 어떠세요?
글 트래블투데이 문찬미 취재기자
발행2019년 06월 17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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