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시대 두 연인의 사랑이야기, 부사칠석놀이
많은 사람들이 '칠석'하면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떠올린다. 소를 끌어 농사를 짓는 견우와 베를 짜 옷을 짓는 직녀가 칠석에만 까마귀와 까치가 놓아 준 오작교 위에서 만난다는 그 이야기 말이다. 대전 중구 부사동 일대에서 열리는 ‘부사 칠석놀이’도 그 이름 때문에 견우와 직녀와 관련된 행사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실상은 백제시대 두 연인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부용과 사득의 가슴 아픈 사랑
부사칠석놀이는 대전 중구 부사동에 전해 내려오는 민속놀이다. 백제시대부터 전승되어 온 두 연인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에서 유래한 놀이로, 이제는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놀이로 자리매김 했다. 때는 바야흐로 백제시대. 지금의 부사동 일대에는 가운데 놓인 우물을 두고 늘 다투던 두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윗마을에 살던 부용이라는 이름의 처녀와 아랫마을에 살던 사득이라는 총각이 이 우물로 물을 길러 다니다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이후 백제와 신라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사득은 전장에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이에 상심한 부용도 마을 뒷산에서 몸을 던진다.
기이한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부용마저 목숨을 잃은 뒤, 두 마을 촌장들의 꿈에 그들이 자꾸 나타났던 것. 그리하여 사이가 좋지 않았던 마을의 촌장들이 합심하여 두 사람의 영혼 결혼식을 올려주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막혀 있던 우물에서 물이 펑펑 솟아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후부터 두 마을 사람들은 부용과 사득의 이름 첫머리를 따 우물을 '부사샘'이라 불렀고, 마을의 이름도 '부사동'이 되었다고 한다. 부사칠석놀이는 이러한 지명 설화에서 유래되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올 한 해도 평안케 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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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칠석놀이는 선바위 치성과 합궁놀이, 부사샘 치기 놀이 등 모두 일곱 마당으로 구성돼 있다. 부사동 주민 약 150여 명이 참여하며, 총 30여 분 간 진행된다.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는 전국 각지에 많지만, 부사칠석놀이는 좀 더 특별한 데가 있다. 첫째로 우리나라 민속놀이 가운데 '여름'에 행하는 놀이가 적다는 점이 그렇고, 둘째로 농경사회에서 중요했던 물을 중심으로 하는 놀이라는 점이 그렇다. 부사칠석놀이의 첫 관문은 두 마을 아낙들이 정성스럽게 마련한 제수음식을 가지고 선바위에 오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손빔을 한 뒤, 부용신을 위한 소지를 올리고 나면, 각 가정마다 소원을 담은 소지를 차례로 올린다. 본격적인 놀이는 다음 관문인 길놀이부터 시작된다. 길놀이는 마을을 상징하는 깃발, 용기, 영기, 나팔수, 풍물패, 촌장, 마을 사람들 순으로 움직여 종내는 두 마을이 합쳐지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윽고 두 마을의 길놀이패가 한 곳에서 만나면, 각 마을의 촌장들이 놀이 진행에 관한 논의를 한다. 다음으로는 두 마을의 용기가 나와 인사굿에 맞춰 맞절을 한다. 맞절이 끝난 뒤에는 함께 어우러져 부사샘으로 향한다. 마을 사람들은 샘 앞에 제물과 절을 올린 뒤, 샘물을 퍼올린다. 이때 샘가에 서 있는 사람들은 '샘치기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일련의 과정이 끝나면 샘에 금줄을 두르고 멍석으로 덮는다. 이렇게 샘에 대한 고사가 끝나고 나면, 다음으로는 부용과 사득을 위한 영혼 혼례가 치뤄진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축하하면서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한다. 부사칠석놀이는 과거에는 음력 7월 7일에 열렸으나, 최근에는 효문화 뿌리축제 등 지역의 축제와 민속행사와 함께 열리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