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으로 태어나 미국인으로 살다, 서재필 기념공원, 국내여행,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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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보성군 지역호감도

조선인으로 태어나 미국인으로 살다, 서재필 기념공원


보성군과 순천시, 화순군에 걸쳐 있는 거대한 인공호수 주암호. 저수지의 기능을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수변 드라이브코스나 레저타운 등이 여행지로 각광받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편 보성군에 면한 주암호에서는 고즈넉하면서도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서재필 기념공원과 그 인근의 서재필 생가다. 구한말부터 대한민국 성립까지,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한 인간의 뿌리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몰락 양반가의 총명한 소년, 망명에 이르기까지

기념공원에 우뚝 서 전경을 내려다보는 서재필 동상

서재필이 태어난 곳은 전라남도 보성군, 용암리 주변이다. 본디 이 곳은 서재필의 어머니였던 성주 이씨의 친정이었다. 외가에서 태어나 아버지 서광호의 고향인 논산시 부근으로 이주해 어린시절을 보내다가 다시 보성으로 돌아온 것이 그 아버지가 보성군수로 부임했을 시절이다.
 
그러나 보성의 유년시절은 짧았다. 아직은 어린 나이에 7촌 아저씨인 서광하의 양자가 되어 충청남도, 그 이후에는 한성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기 때문. 이후 그는 한성에서 수학하며 박규수나 유대치, 김옥균 등 개화파의 영향을 강하게 받게 된다. 이후 약관이 채 안된 나이에 과거에 합격하면서 그의 출세는 탄탄대로일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 모든 길을 하번에 뒤엎어버린 사건이 있었으니, 개화파들이 주도해 일으켰던 갑신정변이 그것이다. 삼일천하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허망했던 정변 뒤, 개화파들은 목숨을 부지하려 다른 나라로 망명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이 참화는 한성에 있던 집과 논산시의 본가, 그리고 보성군에 있는 외가에까지 미쳤다. 보성군에서 한가닥 하던 외가의 재산도 가족도 뿔뿔히 흩어지게 된 것이다. 이후 미국에서 외가로 서재필이 편지를 부쳐도 혹여 역적으로 몰릴까봐 해방 이후까지도 편지를 태워버리곤 했다니 그 당시의 참화를 짐작하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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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찍한 공간감이 돋보이는 서재필 생가

그 당시 전전긍긍했던 외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서재필 생가는 고요한 분위기 속에 잠겨있다. 한국전쟁 당시 마을 전체가 소실되면서 생가도 함께 사라졌었지만, 다시 초당이며 안채, 장독대 등을 복원했다. 그 당시 부잣집으로 유명했던 서재필의 외갓집이었던 만큼 그 구성도 널찍하게 정돈되어 있는 맛이 있다. 그가 태어나기 전, 외가에 심겨져 있던 뽕나무를 큰 용이 칭칭 감고 올라가 승천했다는 태몽 때문일까. 뽕나무가 심겨져 있던 자리에 또 다른 뽕나무가 심겨져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의사 필립 제이슨, 조선으로 돌아오다

미국에서 의사 학위까지 딴 서재필은 자신을 절대로 서재필이라는 이름으로 지칭하지 않았다. 필립 제이슨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1890년에는 조선인 최초로 미국 시민권을 따는 등 미국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던 그를 조선으로 입국하게 한 것은 김홍집내각이 들어서며 개화파에 대한 시선이 누그러진 것과 함께 갑신정변의 동지였던 박영효의 설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신하가 되는 것은 꿋꿋이 거부했으며 자신은 미국 시민권자라는 이유로 외국인도 할 수 있던 중추원 고문직을 제시받은 다음에야 승낙을 했다.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독립국으로서 일어서야 한다는 의식이 담긴 독립문. 서재필 기념공원에도 재현한 문이 서 있다.

갑신정변 이후로 크게 비틀어진 그의 인생역정 때문일까, 서재필은 항상 조선과 자신을 분리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어만 주로 구사했으며 양아버지를 비롯해 그의 친인척과도 거의 교류를 하지 않았다. 이런 그가 조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이 두가지가 있었으니 하나는 독립신문의 창간이요, 다른 하나는 독립문을 세운 것이다. 그 당시 청나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주독립국으로서의 위상을 세우고 민중을 계몽해야 한다는 것이 그 논조. 특히 독립문은 그 당시 청나라 사신을 맞아들이던 영은문이 있던 자리에 세워져 사대의 예를 유지하던 조선에 큰 충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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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문과 자강문은 지금도 외세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아나가야 하는 자주독립국의 정신을 담고 있다.

주암호 근처에 세워진 서재필 기념공원에서는 이렇게 세워졌던 독립문을 그대로 본따 자리잡은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서재필의 유물이 800여점 가량 전시되어 있는 유물전시관에서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야만 했던 한 지식인의 의의와 한계를 볼 수 있다. 외세에서 벗어나야 한다던 의식을 지녔던 그의 모습은 기념공원의 정문인 ‘개화문’과 서재필의 사당인 송재사의 출입문인 ‘자강문’에서도 드러난다. 대부분의 인생을 미국에서 보냈고 미국인으로 자처했으나, 조선 반도의 자강 자활을 아예 눈감아버릴 수는 없었던 그의 선택이 이 곳에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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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최초로 미국 시민으로 살았던 파란만장한 서재필의 인생을 느끼고 싶다면 주암호 근처의 서재필 기념공원으로 달려가 보아요.

트래블투데이 박선영 취재기자

발행2020년 08월 27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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