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을 어루만질 이름 석 자, ‘천상병’을 찾아서, 국내여행,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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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을 어루만질 이름 석 자, ‘천상병’을 찾아서


천상병 시인이라 하면 으레 떠올리게 되는 것들이 있다. 첫째는 귀천(歸天). 그리고 두 번째는 함박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시인의 사진이다. 그의 온 삶을 지탱했던 문학 때문이었을까. 그의 삶이 결코 순탄했다고는 하기 어려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고 하였던 시인의 가장 유명한 시와 이 세상 소풍이 정말로 아름다운 것이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 보이려는 듯 환히 웃는 시인의 미소는 천상병 시인을 행복한 사람이라 기억되게 하고 있다. 오늘은 책의 날이니, 세상에 아름다운 프리즘을 덧입히는 문학의 힘을 들여다보자. 물론 천상병 시인을 통해서 말이다.

                    
                

시인의 삶과 문학 들여다보기

  • 천상병 시인은 우리 문학 역사상 가장 아름답게 기억되는 시인 중 한 명이다.

1930년, 우리나라가 큰 몸살을 앓고 있을 무렵 태어난 천상병 시인. 문학이 그의 삶과 대중들의 사이에 가져다 놓은 프리즘을 제거한다면 시인의 삶을 이런 단어들로 표현할 수 있겠다. 가난, 방탕함, 과음, 고통. 그는 고문의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하였으며, 탁한 빛깔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말씨가 어눌하고, 매우 마른 몸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천상병 시인에게 따라 붙은 수식어는 ‘문단의 마지막 순수시인’, 혹은 ‘문단의 마지막 기인(奇人)’이다. 그가 남긴 시 중에서도 <귀천>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 암송하는 시 중 다섯 번째 순서라고 하니 문학인으로서의 그는 제법, 아니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삶을 두 가지 면으로 나누어 본다면, 그의 현세적 삶과 문학적 삶의 사이에는 제법 큰 간극이 존재한다. ‘천상병’이라는 이름 석 자가 봄날에 어울리는 따뜻한 이름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문학적 삶에서 끊임없이 샘솟는 기쁨으로 현세적 삶에 닥친 고통으로 인해 비워진 부분들을 채워갔기 때문이었을 것.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그의 시를 읽고, 또 그의 삶을 들여다본다. 티 없이 맑게만 보이는 그의 작품들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고통스러운 삶을 노래로 바꾸어 내는 천진함이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하지만 미메시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카타르시스이니, 삶과 이야기는 책장 위에 실려 돌고 돈다. 삶에 지친 현대인들이 천상병 시인을, 문학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천상병 시인의 흔적을 찾아서

천상병 시인은 1993년에 타계하였으나, 우리나라 곳곳에는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들이 남아 있으니 천상병 시인의 시집 한 권을 챙겼다면 이곳들로 떠나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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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천', 그리고 천상병 시인의 흔적을 찾아 올 여행자들을 기다리는 달큰한 차들.

우선은 천상병 시인이 남긴 가장 유명한 작품의 제목을 딴 이름을 가진 곳이자 봄을 닮은 따스한 분위기로 사랑받는 인사동의 찻집인 ‘귀천’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겠다. ‘歸天 아름다운 이 세상’이라 적힌 깔끔하고도 작은 간판이 매력적인 이 가게는 본래 천상병 시인의 배우자인 목순옥 여사가 운영하던 곳이다. 목순옥 여사의 타계 이후에는 본점 대신 목 여사의 조카가 운영하는 2호점이 여행자들을 반기게 되었으니 이 점을 참고 해 두자. 

찻집 안에 들어서면 달큰하고도 향기로운 냄새가 코를 가득 메운다. 모과차의 향기다. ‘귀천’에 들렀던 사람들 중 상당한 이들이 이곳에서 마시는 모과차의 맛을 ‘천상병 시인의 시와 같은 맛’이라 표현하였다 하니, 시인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들러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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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상병 시인의 고택과 그 앞의 벤치. 벤치에 앉으면 고택을 마주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추천하고 싶은 곳은 충청남도 태안군의 대야도에 위치해 있는 천상병 고택이다. 갈 곳을 잃었던 시인의 유품들을 모아두고 있는 곳이기도 한 천상병 고택은 천상병 문학관을 겸한다. 전시보다는 복원을 목적으로 한 이곳에 ‘볼거리’는 거의 없는 편. 시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과 손때가 가득 묻은 책들, 낡은 장독, 눈이 휘둥그레진 채 이것저것을 구경할 일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시인 천상병을 만난다는데 화려함을 기대했다면 그 또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 아이처럼 입술을 비쭉이고 있는 시인의 사진을 보고 있자면 시인의 고택이 시인을 꼭 닮았음을 알 수 있을 것. 뜨락에 놓인 벤치에 앉아 봄 햇살을 쬐며 책장을 넘기는 사치를 누리는 동안, 태안 앞바다의 파도 소리가 시인의 어눌한 말소리인 양 울려 올 것이다. 

 

기억하기, 그리고 남은 아쉬움

책의 날을 맞아 천상병 시인을 소개한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는데, 매년 4월 28일, 천상병 시인의 기일을 전후하여 천상병 예술제가 열리는 것이다. 의정부 예술의 전당과 천상병 시인 기념 사업회에서 주관하는 이 축제는 오로지 천상병 시인을 기리기 위해 개최된다. 시인의 작품과 삶을 테마로 한 콘서트와 무용극 등이 펼쳐지며, 시인처럼 맑은 시를 써 낼 어린 문학인들을 양성하기 위해 천상백일장을 열기도 한다. 시화전과 시 낭송 대회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즐기는 동안 시인에 대한 세상의 기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실감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 천상병 예술제에서는 천상병 시인이 세상에 남긴 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 수 있다. 

천상병 시인을 찾아 떠나는 여행 이야기는 여기까지. 앞으로도 천상병 시인의 작품들을 사랑할 트래블피플에게, 함께 알아주었으면 하는 내용을 덧붙여 전한다. 책의 날을 맞아,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인의 삶을 되밟아 보며 곰곰이 생각해봄직한 내용들이다. 

첫째, 시인의 고택은 본래 의정부에 있었으며 시인이 생전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물렀던 곳 또한 의정부시이다. 하지만 의정부시에 시인의 문학관을 건립하는 일은 무산되고, 창고를 전전하던 시인의 유품들은 시인을 사랑했던 지인에 의해 태안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둘째, ‘종이책’이 사라져 간다. 2011년 아마존의 전자책(e-book) 판매량이 처음으로 종이책을 능가하였다. 읽는 것에 초점을 두어 생각한다면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문학을 소유하느냐 소비하느냐의 문제로 사고를 확장시켜 본다면 문제가 다르다. ‘책의 날’이 ‘책 읽는 것을 독려하는 날’이 아니라 ‘책을 기념하는 날’이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셋째, 연간 베스트셀러에서 순수문학 작품들을 찾는 일이 어렵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는 문학작품보다 교양서적들이 많이 보이곤 하는데, 적은 수의 문학작품 중에서는 또 미디어 콘텐츠를 통한 재생산을 거친 ‘원작’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귀천>은 알지만 <귀천> 이외의 작품들을 꼽아 보라면 손가락 하나를 접기가 어려운 이들이 많아지는 것은 문학에 대한 시야가 얼마나 좁은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날, 문학으로 따스하게 채워진 삶을 보냈던 한 시인의 삶을 돌아보았다. 그의 초라한 삶을 반짝반짝 빛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자 삶의 온갖 면면에서 상처받는 이들의 쉼터가 되어 주는 문학. 오늘자 <트래블투데이>가 책의 날을 보다 의미 깊게 보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본고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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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있어도 막상 책을 읽는 일은 참 어렵기만 한데요. ‘책의 날’을, <트래블투데이>를 계기 삼아 따뜻한 책 한 권을 읽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천상병 시인의 함박웃음처럼, 트래블피플의 일상도 문학으로 아름다워지기를!

트래블투데이 이승혜 취재기자

발행2015년 04월 23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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