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주산지, 국내여행,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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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주산지


2003년, 김기덕 감독이 주산지를 말했다. 물론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말하는 것이다. 산사의 아이는 노승과 함께 나룻배를 저어 왕버들 언저리를 맴돈다. 그들의 작은 거처인 물 위에 뜬 산사. 나이를 먹게 되며 아이는 산사를 떠나지만, 몇 번이고 다시 주산지 위의 산사를 찾아온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찾아오듯 말이다. 노인이 된 산사의 아이가 또 다른 산사의 아이를 바라보게 될 때까지 계절은 주산지 곁에서 돌고, 또 돈다. 영화 속 주산지의 모습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나 다 아름답다. 사계절마다 다른 매력을 뽐내는 그곳, 주산지로 떠나 보자. 

                    
                

영화 속 그곳, 주산지

청송을 대표하는 명경을 지닌 곳, 주산지. 인적 없는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이 호수에 닿는다. 기암들을 올려다보며 걷는 숲길에서의 감상도 특별하겠지만, 주산지에 닿으면 숲길에 대한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 것.
 

왕버들이 있는 주산지의 풍경은 여행자들을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들여보낸다.

주산지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수면을 뚫고 솟아오른 왕버들로부터 시작된다. 잔잔한 수면에 비친 또 한 그루의 왕버들은 마치 물 아래에도 별세계가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주곤 하는데, 김기덕 감독이 이 호수를 영화의 배경으로 택한 것 또한 이 왕버들 때문일 것이다. 호수 아래로 뿌리를 감춘 고목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풍경’이라는 말이 꼭 알맞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 물에 비친 봄 풍경이 왕버들을 감싸고 있기 때문일까. 영화 속의 산사처럼, 주산지의 왕버들 또한 물 위에 고립된 채 서 있지만, 그 모습이 쓸쓸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이 호수, 주산지는 축조된 이래로 한 번도 물이 마르지 않았다 하니, 이 왕버들 또한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뿌리를 감추고 있었으리라. 촬영 때 세워졌던 호수 위의 산사는 철거되었다 하나, 따사로운 햇살 아래 가만히 눈을 감으면 호수 아래의 모습이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자연스레 떠오른다. 굽은 고목의 뿌리 사이로는 잉어가 헤엄칠 것이고, 숲 덤불 어딘가에서는 노루나 수달 같은 것들이 낯선 이의 모습을 엿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산사의 아이가 된 기분으로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드니 어느새 입가에 웃음이 오른다. 이 풍경을 앞에 두고 누군들 상상을 멈출 수 있으랴. 봄처럼 아름다운 때를 보내면 여름처럼 무더운 때도, 가을처럼 쓸쓸한 때도, 작별한지 얼마 되지 않은 계절인 겨울처럼 칼바람이 매섭게 뺨을 할퀴는 때도 찾아오게 마련이다. 주산지의 사계절은 계속 이어지지만, 그 속의 풍경은 늘 새롭고 늘 특별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왕버들을 가운데에 두고, 주산지의 사계절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쉼 없이 흐른다. 그래서 수많은 이들이 계절마다 찾아와 주산지의 사계를 기록하니, 그 모습을 함께 엿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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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여름, 주산지의 푸른 빛이 점차 짙어지는 계절이다.

봄. 왕버들에 여린 잎이 오른다. 어찌 물속에 반신을 담가 두고 있는지, 어찌 매해 연녹색으로 생명을 틔워 올리는지, 그 속을 이해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일, 고목의 가지는 낡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을 새겨 두고 있지만, 그 가지에 돋은 잎사귀는 여전히 꽃잎처럼 여리다. 

여름. 신록의 계절, 물그림자가 선명해지는 계절이면 주산지도 푸른 옷을 입는다. 거울처럼 맑은 물 위로 녹색 세상이 비쳐나니, 자신이 지금 디디고 서 있는 곳이 수면인지, 땅인지를 구분하기가 어려워지고 만다. 왕버들에 돋아난 잎사귀 또한 한 계절을 지나며 제법 단단해진 모양새이니, 멈춘 것처럼 보이는 주산지의 시간도 흐르고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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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겨울, 주산지는 다시 찾아올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가을, 물안개가 아름다운 계절이니 되도록 이른 시간에 주산지를 찾아가 보는 것이 좋겠다. 조금씩 차가워지는 바람을 느꼈는지, 왕버들도 봄부터 단장해 왔던 녹색을 조금씩 지워낸다. 주산지의 곳곳에도 단풍이 드니, 점차 선명해져 가는 붉은빛과 물안개의 조화 또한 그냥 보아 넘기기에는 아쉬운 풍경일 수밖에 없다.

겨울, 내내 풍경을 비추어 주던 호수가 잠시 쉬어 가는 계절. 주산지의 어떤 것도 바람에 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니 다행인 일이다. 눈보라를 둘러 입은 왕버들은 포근한 이불을 덮어쓴 듯 편안한 모습으로 봄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봄, 주산지

봄. 다시 봄이 찾아오면 주산지를 둘러싼 숲 덤불들에 꽃망울이 터질 것이다. 왕버들에는 꽃이 피지 않으나, 물에 비친 주산지의 봄 풍경 가득히 꽃이 피어날 것이니, 왕버들의 늙은 가지는 수면을 통해 꽃을 입게 될 것이다. 바람에 일렁이는 꽃 물결을 말이다. 다른 모든 계절보다도 봄이 아름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름과 가을, 겨울을 지내고 다시 봄이 오듯, 여행자들은 주산지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주산지를 떠나기 전, 영화의 제목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사계가 주산지를 가운데 두고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주산지에 닿았던 여행자들은 언젠가 이곳을 다시 찾게 된다. 반칠환 시인은 <주산지 왕버들>에 주산지의 봄을 담았다. 시간이 멈추고, 또 흐르는 곳인 주산지. 시의 일부를 인용하는 것이 주산지를 목표한 청송 여행길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또 왕버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짧은 기대를 해 본다.

‘…이곳에도 봄이 오면 나는 꽃을 피우고/물새들이 내 어깨에 날아와 앉습니다/이제 피안을 지척에 두고도 오르지 않는 것은/나의 슬픔이 나의 꽃인 걸 어렴풋이/알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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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투데이 박선영 취재기자

발행2019년 01월 15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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