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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 그 날의 아픔이 오늘에 남긴 것들


시간이 지난다고 아프지 않은 것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어두운 역사를 곱씹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다. 잠시 가슴은 뜨거워질 테지만 곧 오늘은 새로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서울 서대문구 안산 곁에 위치한 서대문형무소는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이 그대로 스며있는 건축물로 지금은 서대문독립공원 내 역사관으로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나라의 독립을 위해 순국한 애국지사부터,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민주지사들의 가슴 아픈 흔적이 남아 있는 곳. 지금은 과거가 된 역사의 아픔을 돌아보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이곳을 찾아보면 좋겠다. 

                    
                

독립운동의 아픈 역사가 담긴 곳

  • 서대문 형무소 망루가 그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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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사 실내, 당시의 분위기가 여전히 감도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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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형무소 망루가 그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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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사 실내, 당시의 분위기가 여전히 감도는 듯 하다.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현재 서대문형무소를 비롯한 서대문독립공원이 있는 이곳은 조선 시대 사람들의 왕래가 잦고 중국과의 외교를 상징했던 무악재 아래, 또 그곳을 도성과 잇는 의주로의 자리다. 이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분단 이후 끊어져 버린 의주로이지만, 당시에는 한반도가 대륙으로 이어진 그 길을 따라 무악재를 넘으면 단숨에 중국까지 닿을 수 있었다. 중국 사신을 맞던 모화관(慕華館) 자리에 1908년 일본이 ‘경성감옥’을 세운 것은, 대한민국 자주권에 자행한 억압과 침탈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예이기 때문이다. 500명을 수용할 규모로 지어진 ‘경성감옥’이 지금의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되기까지 그 붉은 건물의 명칭은 수없이 바뀌었다.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억압에 항거하는 애국 운동가들이 점점 늘어나자, 일제는 이를 ‘서대문감옥’으로 바꾸고 마포구에 새 ‘경성감옥’을 지었다. 또 3.1운동 이후에는 최대 3,000명을 가둘 수 있는 대규모 건물로 확장 신축하고 ‘서대문형무소’로 개명하였다. 그 사이에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애국선열들이 옥고를 치르고 순국했다. 현재 서울 시내에 남아있는 일제 강점기 건물 중 가장 큰 서대문형무소를 둘러보면, 그 날의 고통과 울분에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한편으론 일제가 그들의 세력이 아닌 감옥을 키웠다는 것은 곧 민족의 저항이 사그라지지 않고 꿋꿋이 나라를 지켰다는 것을 의미하니, 텅 빈 옥사가 넓어 보일수록 가슴이 벅차기도 할 것이다.

 

민주 항쟁을 기억하다

  • 무악재 아래 서대문 형무소, '통곡의 미루나무'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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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당시의 옥사를 실감나게 재현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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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악재 아래 서대문 형무소, '통곡의 미루나무'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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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당시의 옥사를 실감나게 재현해놓았다.

마침내 일제로부터 1945년 해방을 이룩한 후에도 서대문형무소는 감옥의 기능을 유지하며 서울형무소로, 제도의 변경에 따라 서울교도소, 이어 1967년에는 서울구치소로 거듭 개칭됐다. 이 시기에는 군부독재 정권에 맞선 민주화 운동가들이 수감되며 또 한 번 대한민국 격변기의 고난이 그대로 남았다.

춘삼월 호시절/ 비 내리는 소리/ 초립동이들 몰켜 다시/ 만세 부르다 끌려와 철문 앞에 내려/ 내리는 소리 만세소리/ 대한독립만세 부르는 소리/ 비 내리는 소리/ 기미년에 내리던 그 비/ 지금 여기 다시 내리는 소리/ 끝없이 끝없이 만세 부르다/ 줄지어 끌려와 철문 앞에 내려/ 내려/ 모화관 옛터/ 밤비 내리는 소리/ 쇠창살에 갇힌 내 가슴속/ 탄식처럼 깊이 외치는 소리/ 대한독립만세 소리. (김지하 '모화관 옛터' 중)

1970년대 후반에 수감되었던 민주화 시인 김지하의 시 <모화관 옛터>는 일제와 독재 정권의 거듭된 탄압과 싸워야 했던 우리의 치열한 근현대사를 잘 담아낸다. 역사관 뒷담장 아래는 사형장 앞에도 당시 사형수들이 붙잡고 울었던 ‘통곡의 미루나무’가 굳건히 서서 그 처절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 날의 아픔이 오늘에 남긴 것들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뻗은 길에는 서재필 동상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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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대문독립공원에 마련된 현충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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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뻗은 길에는 서재필 동상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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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독립공원에 마련된 현충사 전경.

이후 서울 도시 개발에 따라 구치소는 의왕시로 옮겨가며 1992년, 서대문독립공원이 조성됐다. 서대문형무소가 지금의 역사관으로 개조된 것은 1998년이다. 보존가치가 있는 당시의 옥사, 중앙관 등을 그대로 복원하고, 독립 운동가들의 유품을 전시하는 장소를 마련해 지난날의 아픔을 잊지 않고 오래도록 교훈 삼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경건하고 뭉클한 가슴으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한 바퀴 돌아 독립공원의 쭉 뻗은 길로 접어든다. 독립문으로 이르는 도중에 독립관과 서재필 선생의 동상을 만나다 보니 푸욱 큰 숨이 쉬어진다. 안산 숲 자락에서 내려온 공기가 가득 돌아 나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선대의 아픔이 또렷이 서려 있는 곳에서 우리는 오늘을 살아갈 안정을 찾는다. 결코 가벼울 수는 없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뜻깊게 돌아볼 수 있는 그 날의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에 우리를 향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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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유를 위해 몸과 마음을 불사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그들이 그토록 열망했던 자주독립과 민주주의에 대한 꿈은 결국 현실이 되었습니다. 아마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우리도 없었겠죠. 서대문형무소에서 그들의 희생과 열정에 경의를 표해보는 건 어떨까요. 

트래블투데이 홍성규 취재기자

발행2018년 08월 15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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