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롭고 안락한 고장, 순천 낙안읍성

낙안읍성은 동북쪽에 동헌과 내아, 객사가 있고 남서쪽에 민가가 몰려 있다. 성 관아는 대개 정남향으로 짓는데 낙안읍성은 동북쪽에서 남서쪽을 바라보고 지었다. 관아 뒤에 있는 금전산 때문이다. 읍성 주위를 산들이 빙 둘렀는데 그중에서 가장 높고 굳센 금전산을 진산으로 삼았다.

금전산은 한자로 쇠 금(金), 돈 전(錢) 자를 쓴다. 우리말로 돈산인데 내아 옆에 산을 바라보고 부자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터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남녀노소 다 부자 되는 걸 좋아하니 읍성 사람들에게 금전산은 무척 중요한 산이다. 금전산에다 동헌과 동헌 내삼문을 넣으면 쇠 금(金)자를 이룬다. 풍수에서는 낙안읍성 주위 지형을 옥녀산발형 또는 옥녀단장형이라고 한단다. 여자가 머리를 빗는 모양이란 뜻이다. 앞산 옥산이 빗이고 금정산 줄기가 흘러내린 머리카락이다. 

벽 위를 한바퀴 도는데 쉬엄쉬엄 걸어도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성안에는 고을 사또와 이방 등 관리와 관청 일을 하는 이들이 주로 모여 살았다. 그러다 왜구가 왔다는 급보를 받으면 동헌 앞 낙민루 큰 북을 둥둥 울려서 성밖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사람들이 성안으로 피신하면 문을 걸어 잠그고 지켰다.  

성안 마을 구석구석 돌아보는 것도 재미다. 판소리 동편제 명창 송만갑 생가와 가야금 병창의 명인 오태석 생가가 있고 대장간이나 술도가, 물레방아와 옛 감옥 등도 복원해두었다. 옛 모습 그대로 지키거나 재현하려고 애를 썼는데 덕분에 이곳에서 드라마나 영화도 많이 촬영하였다. 드라마 「대장금」「허준」「불멸의 이순신」 등이 이곳에서 촬영하였고 그래서 난전이라 부르는 시장거리 국밥집에 배우들 사인이 남아 있다.

실제로 읍성 안 초가집 100여호에 사람이 살고 있다. 그러니 대문이 열려 있다고 함부로 들어가면 안된다. 주민들은 대대로 내려온 집에서 전통을 지키며 살아간다.

낙안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풍요롭고 안락한 고장이다. 970년 태조 왕건 23년에 이곳을 낙안국이라고 불렀다. 물론 그 이전에도 사람이 살았다. 삼국시대 이전에는 마한 땅이었고 부족국가 이전에도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인돌이 남아 있는 게 증거다. 

바다가 가깝고 천이 흐르고 들이 넓은 데다 산도 있으니 옛사람들이 살기에 이만큼 좋은 터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수시로 들이닥치는 왜구의 노략질이 우환거리였다. 왜구 토벌로 공명을 쌓은 조선 태조는 낙안 태생 김빈길 장군이 토성을 쌓았고 세조 때 석성으로 고쳐 지었다. 그 해가 1424년 대략 6백년 전이다.

성벽 계단에 앉아 낙안읍성을 바라보다 6백년이라는 세월을 더듬어봤다. 그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나 후손을 남기고 떠났다. 사람 사는 동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이 낙안읍성에서도 일어났을 것이다. 

낙안읍성은 구석구석 의외로 할 게 많다. 짚물공예나 대장간체험 같이 옛물건 만들기도 있고 옥에 갇혀보거나 곤장 맞아보기 같은 이색체험도 재밌다. 제기차기, 투전놀이, 그네 등 놀이거리도 한 번씩 하다보면 하루도 짧다. 읍성 마을에 민박집도 많다. 여정을 넉넉히 잡고 하룻밤 묵으며 초가 위에 뜬 달 구경을 해봐야 낙안읍성을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