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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의 ‘아픈 손가락’, 덕수궁


여기 이 글을 읽는 트래블피플 중 과연 자신있게 '역사'에 대해 안다고 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학교에서 필수적으로 역사에 대해 공부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우리가 역사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쏟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하물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기본적으로 알아 두어야 할 역사 상식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꽤나 많으니 이는 정말이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한가지, 여러분에게 '덕수궁'은 어떤 의미인가. 아마 별 생각이 없었던 트래블피플이라면 참 아름다운 궁궐이라고만 답할 수 밖에 없없을 것. 그러나 덕수궁, 아름답고도 이국적인 외관과 달리 비운의 슬픔이 서려 있는 곳이다. 

                    
                

덕수궁 석조전에 분수는 없었다 

‘덕수궁’하면 떠오르는 게 뭘까.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미술관, 덕수궁 대한문….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딱 떠오르는 이미지를 꼽으라면 단연 석조전일 것이다. 궁궐 건축물이라고 하기엔 석연찮은 이물감을 주는 건물이 바로 덕수궁 석조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석조전은 1900년에 착공해 1910년에 완공됐다. 말 그대로 20세기에 지어진 ‘신식’ 건물이다. 건축 목적은 명성왕후 시해 사건 후 러시아관으로 피신했던 고종이 환궁해 집무실로 쓰기 위함이었다.

석조전을 방문한 이들은 ‘옛날치곤 신식으로 지었네’, 혹은 ‘옛날에도 분수를 만들었구나’ 하는 식으로 두루뭉술 넘어가기 쉽다. 그러나 정작 석조전 완공 당시에 분수는 없었다. 지금 남아있는 분수는 1938년에 지어졌다고 알려졌을 뿐, 완공 초기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분수의 원리 자체가 당시 우리 조상들의 관념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분수는 바닥에서 위로 솟구치는 것인데, 이는 ‘물은 아래로 흐른다’는 조선 전통 관념에 배치된다, 따라서 제 아무리 신식 왕(즉, 고종)일지라도, 궁궐 안에 분수를 둔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석조전 앞 정원분수는 대한제국 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예부터 조선은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분수는 바닥에서 위로 솟구치는 것인데,
이는 '물은 아래로 흐른다'는 조선 전통 관념에 배치된다.

대한제국의 국운이 결정된 곳, 덕수궁 중명전 

‘재갈 늑(勒)’자를 써서 을사늑약. 일제는 바로 이곳 중명전에서 대한제국 황제 고종을 겁박해 을사늑약을 맺었다. 을사늑약은 알려진 대로 ‘외교권 등을 내주는 데 동의한다’는 조약이다. 이토 히로부미의 계속된 협박에도 고종이 동의를 거부하자, 목표 대상이 바뀌었다. 고종 대신 이른바 ‘을사오적’을 데려온 것이다. 일제는 ‘왕 대신 너희가 서명하라’고 윽박질렀다. 일제의 폭압적 태도에 대신들은 기권했다. 이에 민영환 등 일부 애국 인사들은 수치심을 느껴 자결하기까지 했다. 지금은 평온해 보이기만 하는 이 2층짜리 붉은 벽돌건물에서, 온 국민(물론 매국노를 제외하고)의 가슴을 짓밟은 늑약이 맺어졌다니 생각할수록 슬프다.
 

  • 덕수궁 대한문은 오랜 세월 조선과 대한제국, 그리고 오늘날 대한민국을 굽어봤다

1905년 11월 17일. '재갈 늑(勒)' 자를 쓰는 을사늑약.
온 국민의 가슴을 짓밟은 그날을 어찌 잊으랴.

조선과 대한제국, 그리고 대한민국을 지켜본 ‘대한문’

덕수궁은 서울의 다른 궁과 달리 처음부터 궁궐로 지어진 것이 아니다. 본래 이곳은 조선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사가(私家)였다. 그런데 임진왜란으로 서울의 궁궐이 모두 불타자 선조가 머무를 곳이 없어졌다. 이에 선조는 경복궁과 가까운 월산대군 사가를 임시 거처로 사용했다. 그 뒤 광해군이 이곳을 ‘경운궁’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정식 궁호가 생긴 것이다. 이후 광해군이 창덕궁을 재건하고 그곳을 거처로 정하면서 경운궁은 별궁으로 남았다. 덕수궁이라는 호칭이 생긴 것은 그보다 훨씬 뒤, 대한제국 고종황제 때이다.

덕수궁이 되기 전의 경운궁은 현재 덕수궁 크기의 3배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고종이 승하하자 일제가 기다렸다는 듯 중명전 등 일대를 매각했고, 그 후 1930년대에는 궁 안의 전각들도 다수 철거했다.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은 바로 큰길가를 향해 나 있다. 무심결에 지나가면 그게 덕수궁 문인지도 모를 정도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서 보면 ‘대한문’이라 쓰인 한자 현판이 보인다. 대한문은 서울광장을 바로 마주보고 있기도 하다. 지난 2002년 월드컵 광장 때 응원 장소로 쓰이기 시작해, 지금까지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곳 말이다. 광장으로 조성된 이후 이곳은 주말이면 각종 집회 등 행사장소로 쓰이고 있으며,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조성된다. 이 모든 것을 말없이 굽어본 것이 바로 대한문이다. 문에 영혼이 있을 리 없지만, 대한문은 예외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그 옛날 종로 육의전으로 향하는 조선 보부상부터, 행차하는 임금과 신하의 행렬, 총칼을 차고 들이닥친 일제의 군인들, ‘고요한 아침의 나라(조선)’에 찾아와 호시탐탐 이용 기회를 엿본 서양 제국 세력들, 그리고 21C 대한민국의 평범한 시민들까지. 비록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문의 위치는 현재 위치와 조금씩 달라지기도 했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한국의 과거와 오늘을 지켜본 것이 바로 대한문이다.
 

  • 한국 근현대사의 무대가 된 덕수궁. 대한제국 당시 석조전이 신축되면서 
    ‘신식 건물’로 통했을 덕수궁은, 이제 더 세련된 도심 빌딩 사이에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서
한국의 과거와 오늘을 지켜본 것이 바로 대한문이다.
문에 영혼이 있을 리 없지만,
대한문은 예외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대한제국역사관으로 다시 태어난 덕수궁 석조전

다시 석조전 이야기를 해야겠다. 한때 덕수궁미술관, 국립박물관 등 여러 용도도 쓰였던 석조전이 지난 2014년, 약 100년 만에 ‘대한제국역사관’으로 리모델링돼 재 개관했다. 내부는 문헌 고증을 철저히 따랐다. 심지어 역사관 안에 배치한 가구들도, 대한제국 당시 가구를 공급한 영국 가구회사의 고가구들로 채웠을 정도다. 

정부는 과연 석조전이라는 공간에 대한제국의 역사를 잘 재현했을까. 관람객이자 국민인 우리들 역시, 가서 그저 구경만 하다 올 일이 아니다. 얼마나 철저히 고증했는지, 그 공간을 통해 어떤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는지, 비평가의 눈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기본적 소양 이상의 역사지식은 필수다. 결국 이야기는 청소년 국사 교육의 필요성으로 귀결된다.

석조전 내부는 서양과 동양의 멋이 공존한다. 화려함 속의 우아함이라고나 할까. 이를테면 황제가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인접견실에는 서양적인 분위기의 가구와 함께 황가의 상징으로 대변되는 오얏꽃 무늬가 곳곳에 새겨져 있어 나름의 운치를 자아낸다. 침실과 서재도 마찬가지. 서양적이면서도 동양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인테리어가 돋보이기 때문. 이에 그 아름다움에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도 한편으로는 이곳에 얽힌 고종의 비극적 운명과 우리의 아픈 역사에 금세 마음이 숙연해진다. 

우리 역사상 또 하나의 ‘아픈 손가락’인 덕수궁,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한번 찾아가보자. 그리고 기왕 가려거든, 덕수궁에 얽힌 옛 비화 몇 가지쯤은 알고 가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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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대한제국의 경계 속에서 역사적 사건의 주요 무대가 되었던 덕수궁. 모진 역사의 소용돌이를 지나왔지만 여전히 기품과 위용을 뽐내며 자랑스런 관광명소입니다. 때로는 이곳에 서린 역사적 아픔들을 떠올리며 그 의미를 되새겼으면 좋겠습니다. 

트래블투데이 편집국

발행2016년 06월 10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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