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 들어가기 전엔 항상 ‘후’하고 심호흡을 했다. 마치 일련의 의식 같은 느낌이었다. 벌써 몇 달째 같은 병실에 들어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그 앞에 서면 심장이 쿵쿵 뛰었고 손이 떨렸다. 두려움은 언제나 같은 공포를 안겨준다. 익숙해지지 않고 같은 자리에 맴도는 것 같았다.
“예쁜 우리 수진이. 깨어있었네? 엄마가 깜짝 놀래어주려고 했는데. 에이. 실패다!”
“킥킥, 어떻게 놀래 주려고 그랬는데?”
“음. 비밀이야. 다음에 수진이 자고 있을 때 알려줘야겠다. 오늘은 머리 안 아팠어? 속은 안 아파? 토할 것 같으면 엄마한테 말해.”
“엄마가 한꺼번에 물어보니까 어지럽다. 헤헤. 오늘은 의사선생님이 치료 잘 받았다고 칭찬해줘서 별로 안 아픈 것 같아.”
“다행이네. 예쁜 우리 수진이.”
왜 이렇게 예쁘고 착한 아이에게 그런 못된 병이 찾아오는 걸까. 세상에 나쁜 짓 하면서 떵떵 거리고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아무 잘못도 없고 저렇게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왜 이런 병이.
수진이는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 희귀병을 가지고 태어났다. 의사는 태어나도 세 달을 못 넘길 것이라 단정 지었지만 수진이는 어느새 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한다. 다행히 수진이는 잘 버텨주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자꾸만 마음이 약해졌다.
병원에 입원하는 횟수가 잦아졌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다고 칭얼거렸다. 그런 수진이를 볼 때마다 대신 아파줄 수 없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웠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큼 슬펐다.
사람들은 미혼모가 낳은 아이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아픈 아이에게 참 모진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젊은 나이에 미혼모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 나를 걱정하는 말들이었으나 그저 하나의 시끄러운 가십거리로 여기며 떠들어대는 말들도 많았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아이라거나 엄마의 발목을 잡은 귀찮은 존재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처음 수진이의 존재를 알았을 때 두려움이 컸다. 남자친구에게 말해야 할까, 부모님이 아시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점점 배는 불러올 텐데. 아무도 모르게 아이를 지워야 하나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럴 때면 수진이에게 더욱 미안했다. 수진이도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생면부지인 사람들에게 그런 못된 말들을 듣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건강한 몸으로 태어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며칠 뒤면 수진이의 다섯 번째 생일이다. 무슨 선물을 해주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어떤 선물이 받고 싶냐고 하면 자전거라고 할까봐 물어보지 못한 적도 있다. 작년 생일에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아이에게 다섯 살이 되면 사준다고 말해버렸기 때문이다. 수진이는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기 때문에 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
잠에서 깬 수진이의 컨디션이 좋아보였다. 다행이다.
“수진아, 우리 수진이 곧 생일이지? 엄마가 무슨 선물 사줄까? 자전거 빼고.”
“치, 작년에 자전거 사준다고 했으면서. 그런데 나 이제 자전거 안 갖고 싶어. 시시해졌어.”
“그래? 시시해졌어? 그럼?”
“음. 의사선생님한테 나 하루만 나갔다 온다고 허락 맡아줘. 그게 내 소원이고 선물이야.”
“나갔다 오고 싶어? 수진이 많이 답답했구나. 그런데 그건 어려울 것 같은데. 아직은 많이 움직이면 위험하니까.”
“어려울 것 같으니까 소원이라고 이야기 하지. 엄마도 참, 의사선생님한테 부탁해봐. 응?”
차라리 자전거를 사달라고 조르지. 어디를 가려고 그러는 것일까?
“알겠어, 엄마가 한 번 말해볼게. 그런데 의사선생님이 안된다고 하면 엄마도 몰라!”
“치. 알겠어.”
결국 의사선생님께 허락을 받은 건 수진이었다. 아직은 안 된다고 하는 선생님을 조르고 졸라 받은 일종의 휴가였다. 우리가 떠난 곳은 아주 커다란 우체통이 있는 곳이었다. 수진이는 편지를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것도 비밀편지였다. 누구한테 쓰는지 뭐라고 썼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오랜만에 수진이는 활짝 웃었다. 편지가 언제 도착할지 궁금하다며 기대에 부푼 표정을 보였다.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아이에겐 큰 희망인 듯했다.
수진이는 생일 이틀 뒤 하늘나라로 떠났다. 사랑스럽던 아이가 엄마보다 더 어른스러웠던 아이가 이제는 아프지 않은 곳에서 엄마를 지켜주겠다며 먼저 떠났다. 병실에서 수진이의 물건을 챙기고 나서는데 한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꼬박 시간이 지났다. 어느 날 수진이가 입원했었던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모르는 주소로 편지가 도착했다는 것이다. 편지?
병원에서 보니 수진이가 우체통에 넣은 편지였다.
‘엄마, 생일 축하드려요! 엄마랑 나랑 생일 똑같은 거 사실 나 알고 있었어. 엄마는 나 챙겨주느라 아무에게도 축하받지 못했지? 엄마랑 여기 오니까 너무 좋다. 이 편지가 내가 엄마한테 주는 선물이야. 어때? 좋아?
엄마, 내가 얼른 씩씩해져서 엄마가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퇴원하면 소풍도 가고 싶어. 내가 좋아하는 솜사탕도 사줘야 해! 이 편지가 언제 도착할까? 궁금하다. 사랑하는 엄마, 다시 한 번 생일축하해요. 엄마랑 똑 닮은 예쁜 수진이가.‘
천사 같은 수진이에게 편지가 왔다. 눈에서는 눈물이 한 없이 흘렀지만 더 이상 슬프지는 않았다. 수진이에게 답장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