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제는 농업 신인 신농과 후직에게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다. 선농제는 제왕의 왕도정치를 실천적인 권농책으로 강조해 일찍이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다. 예전에는 음력 1월인 맹춘에 지냈다고 했는데 지금은 너무 추워 파종을 못하기 때문에 개구리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 뒤의 좋은 날을 골라 시행하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경칩이 지나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임금님께서 곧 친경(임금님이 직접 참여하는 행사)하시는 날이 가까워졌다는 이야기다. 올해는 음력 2월 9일 춘분에 맞춰 친경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어 궁궐에서는 임금님 행차에 앞서 이것저것 준비에 바쁘다.
임금님께서는 지난해 춘경을 하시며 상언과 격쟁을 열어 이야기를 직접 들으셔 백성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상언은 일반 백성들이 왕에게 직접 억울함을 글로 호소하는 것이고, 격쟁은 임금의 행차 중에 징이나 꽹과리를 쳐서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는 것인데 임금님께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문제 해결을 지시하기도 했다.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가뭄과 홍수를 겪고 있어 백성은 백성대로 굶주리고, 임금은 임금님은 그 모든 것이 자신의 부덕 때문이라며 눈물을 보이시는 날이 많다. 그럴 때마다 임금께서는 신하들에게 거리낌 없이 말하라며 직언을 요청하는 한편, 자신이 직접 민생을 살피기 위해 궁을 나서기도 하신다고 한다.
드디어 선농제의 날이 다가왔고 임금께서는 선농단이 있는 제기동으로 행차 하셨다. 올해도 가뭄이 심했다. 임금께서 하문하시길 “가뭄이 너무 심하다. 소나기가 내렸지만 안개가 끼고 흙비가 왔을 뿐이다. 기후가 이렇듯 순조롭지 못하니 벼농사 형편이 걱정되는구나.”라 셨다.
청계천을 따라 행차가 이어지고 동대문을 지나심에 들녘을 돌아본 뒤 말문이 막히신 듯. “날이 가물어 지력이 약해진 것을 보니 눈물이 날 지경이다. 원래 이 땅은 비옥한 편인가, 메마른 편인가?”라면 대언에게 물었다. “원래 이 땅은 메마른데다가 가물어서, 작년 홍수로 농사가 잘 안됐습니다.” 그러나 대언을 거짓을 고한 것이다. 원래 비옥한 땅인데 침통한 임금님의 용안을 본 그가 거짓을 아뢴 것이다.
선농단에 도착하신 임금님께선 풍요를 비는 선농제를 지내시고 하늘을 우러러 비를 내려 주십사 기우제를 지내셨다. 임금께서는 이농기의 가뭄과 여름철 홍수로 고통 받는 백성들을 생각하시며 눈물을 흘리시며 하늘에게 비를 내려 달라 빌고 또 빌었다. 선농제가 있는 오늘도 봄 가뭄으로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선농제, 기우제가 끝나고 어느덧 많은 시간이 흘러 임금께서 서둘러 환궁해야 할 시간이 됐다. 임금님의 가마가 움직이는 순간, 거짓말처럼 하늘에서는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내 메마른 땅을 적셔주는 굵은 빗방울로 바뀌어 있었다. 모든 백성과 신료들이 뛸 듯이 기뻐하며 너나 할 것 없이 춤추고 흥에 겨웠다. 하지만 많은 비로 땅이 질어져 임금님의 가마를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불상사가 생겼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 환궁하기로 했고 임금님의 수라상을 올릴 시간이 됐다.
하지만 임금님과 대신들 이외에 먹거리가 부족해 군관들이나 궁녀, 의원 등과 같은 궁인들은 먹을 게 없었다. 수라상을 받은 임금께서는 작년 흉년으로 고통받는 백성과 궁인들이 배를 곪고 있는데 어찌 혼자만 수저를 들 수 있느냐며 수라상을 물리라 하셨다. 어의와 대신들은 임금님의 하면을 거둬 달라 간청했다. 임금님께서는 모두가 같이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셨지만 인근 백성들도 배를 곪고 있는 춘궁기로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이때 임금님은 선농제에 풍년을 기원하며 쓴 소를 보시고는 그럼 소를 잡아 물어넣고 끓여 다 같이 허기를 달래자 하셨다. 이윽고 대신과 많은 궁궐 사람들, 굶고 있는 백성들을 대접하기 위하여 쇠뼈와 고기를 삶아낸 국물에 밥을 말아 많은 사람들이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
이 일이 있고 백성들은 임금님에 대한 칭송이 더 높아졌다. 그 후 백성들을 생각하며 선농제를 지내고 경작에 쓰인 소를 잡아 선정을 베푼 임금님의 높은 애민정신을 생각하며 그 음식을 선농탕이라고 불렀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설렁탕이 됐다. 어떤 사람들은 소를 잡아 설렁 설렁 끓여 설렁탕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하지만 설렁탕은 끓는 물에 뼈와 고기가 오랫동안 우러나야 진한 맛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설렁탕은 임금님의 백성을 굽어 살피신 마음이 베여있어 더욱 진한 향기가 나는 것일 것이다.